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제의 속성을 정확히 파악해야 한다. 화려한 레토릭에 현혹되면 안 된다. 쩍벌남이 되지 않아야 하는 지극히 당연한 과제도 이러한 근육의 속성을 이해해야 실효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금융지주사에 이어 KT도 대표이사 선임을 앞두고 관치 논란이 뜨겁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월 말 금융위원회 업무보고에서 “공정하고 투명한 지배구조 구성을 위한 정부의 관심이 관치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복현 금융감독원 원장도 “공공재 측면이 있는 은행의 지배구조가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될 수 있도록 이사회 기능 제고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름다운 말들이다. 필자도 기회가 되면 했던 말들이다. 그러나 개운치 않고 공허하다. 이유는 뭘까. 문제의 속성을 외면한 채 피상적 해결책만 화려한 언어로 포장하기 때문이다.
기업 지배구조 문제의 핵심은 이해관계자들 사이 견제 시스템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다. 위험을 감수하면서 투자했는데 대주주의 독단적인 회사 운영을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라면 누가 투자하겠는가.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고 열과 성을 다해 회사이익을 늘렸는데 대주주가 자식 회사에 이익을 유출하면 어느 노동자가 열심히 일하겠는가.
자본주의는 빵집 주인의 자비심 대신 빵집 주인의 이기심에 기대서 운영하는 시스템이다. 각자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 자동으로 사회 전체의 이익이 증대된다는 경제 분석이 시스템의 타당성을 뒷받침한다. 자본주의의 꽃인 주식회사도 마찬가지다. 이해관계 주체들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면 자동으로 회사의 이익이 증대될 수 있도록 견제와 균형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그렇지 않고 낙후됐다. 낙후된 형태는 대주주가 있는 재벌기업과 대주주가 없는 소유분산기업이 서로 다르다. 전자인 재벌기업들은 총수 일가에 일방적으로 유리한 구조로 쏠려 있는 것이 지배구조 문제의 핵심 속성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소액주주와 노동자, 하청기업 쪽으로 균형점을 옮겨야 한다.
후자인 대주주가 없는 금융지주사와 KT, 포스코 등 민영화된 기업들은 지배구조 문제의 속성이 다르다. 이들 기업들은 CEO들이 대주주가 없는 점을 악용해서 회사의 광범위한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이사회에 자신들의 참호를 구축하면서 경쟁을 배제한 채 우호세력끼리 돌아가며 연임하는 것이 핵심 문제점이다. 즉 한 번 참호를 만들면 난공불락 참호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참호를 만들지 못하도록 하거나 설사 만들더라도 언제든지 허물어질 수 있는 지배구조를 만드는 게 우선돼야 한다. 그러나 금융지주사에 이어 KT를 둘러싼 최근 분위기는 그렇지 않다.
정부는 참호의 문제점만 주로 지적하면서 제도적 해결 방법 논의는 굼뜨다. 더구나 “제가 집권하면 그냥 놓겠다” “공공기관 낙하산을 원천 차단하겠다”고 공약하던 윤석열 후보가 막상 대통령으로 취임하자, 온갖 자리에 다종다양한 낙하산을 무더기로 투하하면서 언행이 불일치하는 모습을 최근까지 생생하게 보여줬다.
그렇다면 기존의 참호는 해체하고 자신들만의 새로운 난공불락 참호를 만들려는 시도라고 의심하는 것이 합리적 추론이다. 왜냐하면 문제점은 누구보다 속시원하게 지적하면서 막판에 해결법을 틀어버리는 경우들을 수없이 보았기 때문이다. 올 3월 주총을 앞두고 5대 금융지주사 사외이사의 4분의 3, KT는 절반이 임기 만료다. 필자의 추론이 기우이길 바란다.
이상훈 변호사(금융경제연구소장)는 기업 지배구조 발전을 위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서울대 경제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법과 대학원을 수료했으며, 사법연수원(27기) 수료 후 변호사로 활동(1998년)하고 있다. 현재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실행위원으로서도 힘을 보태고 있다. 그는 ‘상장기업법(2021)’ 공동저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이상훈 변호사(금융경제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