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하니 선수 시절 경쟁 스트레스서 해방…최고 동료는 일본서 함께했던 엔도”
홍콩 리만 FC에서 선수생활을 마무리하고 국내에서 지내고 있는 김승용은 최근 축구 팟캐스트 방송에서 활약 중이다. 그는 "학창시절 포함 30년 가까이 축구를 했지만 여전히 축구를 보고 축구 이야기를 하는 것이 즐겁다"며 "선수시절부터 나와 관련이 적은 다른 경기를 보는 것도 좋아했다. 과거에는 잠을 자야 하니까 결과를 알고 다시보기로 경기를 봤는데 이제는 라이브로 볼 수 있어 더 재밌다"고 설명했다.
은퇴 선수로서 지켜본 월드컵은 그에게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조별예선부터 결승전까지 전 경기를 빠짐없이 챙겨봤다. 그는 "아르헨티나의 우승이 멋지지 않았나. 개인적으로는 수비 장면에서 리오넬 메시를 제외하고 조직을 만든 것이 주효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가장 인상적인 팀으로는 일본을 꼽았다. 그는 "주도권을 내주는 경기 운영을 하면서도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하더라. 그러다가도 완벽한 계산 하에 역습으로 골을 넣고 승리를 만든다. 정말 대단하다고 느껴졌다"고 했다.
자신을 '전 축구선수'라고 소개한 그는 은퇴선수로서 삶은 선수시절과 완전히 다르다고 말한다. 가장 큰 차이점으로 스트레스를 꼽았다.
"선수시절에는 일정 이상 스트레스가 항상 있었다. 매일이 경쟁 아닌가. 상대팀과 경쟁을 해야 하고 팀 안에서도 주전 경쟁을 해야 한다. 경기는 일 주일에 한 번이지만 그 일 주일을 스트레스로 살아간다. 이제는 그런 것들에서 해방이 됐다. 지금 시기는 매번 전지훈련을 떠나 있을 시간인데 처음으로 아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라운드를 떠난 지 1년이 채 지나지 않았지만 몸도 달라졌다. 그는 "관리를 열심히 하는 편이라 선수시절 체지방 9%를 넘긴 적이 없다. 체중도 1kg 안에서 조절했다. 그런데 이제는 체중도 늘고 체지방이 20%가 넘더라. 최근 다시 관리를 시작했다"며 웃었다.
김승용은 고교 졸업 직후 프로 무대에 뛰어들어 19년간 6개국, 13개 팀에서 활약했다. '저니맨'이라는 수식어를 거부하지 않았다. 그는 "주변 환경 탓에 팀을 옮겨 다니기도 했지만 내 선택도 있었다"며 "덕분에 정말 다양한 경험도 하고 추억도 많이 쌓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선수생활 중 하이라이트를 2008 베이징 올림픽과 울산 현대(2012~2013년) 시절로 꼽았다. 올림픽은 또래 선수들 쌓은 즐거운 추억이다. 그는 "청소년 대표 시절부터 관심을 많이 받았던 팀이다. '슈퍼스타' 박주영이 있었고 백지훈, 김진규 등도 주목을 받았다. 나도 조금은 힘을 보탰다고 생각한다(웃음). 기성용, 이청용도 합류했다"며 "기대를 많이 받았는데 대회에서 잘 풀리지 않아 토너먼트 진출에 실패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그는 2012년 울산의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멤버로 활약을 펼쳤다. 당시 울산은 한 대회를 패배 없이 우승했다. 결승전에서도 3-0 승리로 일방적인 경기를 펼쳤다. 김승용은 "지금 돌아봐도 선수단 면면이 막강한 팀이었다. 공격에 김신욱, 이근호, 수비에 곽태휘, 이용이 있었다. 그때 김영광 형은 내가 경험한 최고의 골키퍼"라며 "김호곤 감독님의 결단도 결정적이었다. 시즌 도중 '리그와 챔피언스리그를 둘 다 잡기는 어렵다'며 우리 선수들에게 선택권을 주셨다. 우리가 이야기를 나눈 결과는 챔피언스리그였다. 결국 무패우승이라는 좋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아시아를 평정한 당시 울산은 이듬해 리그에서 좋은 성적으로 준우승을 차지했다. 선수로서 전성기를 누리던 김승용의 활약도 이어졌다. 하지만 이후 그는 '변방'으로 평가받는 호주리그로 향했다.
"나는 선수생활 중 정말 행운이 많이 따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때가 몇 안 되는 불운한 상황이었다. 2013시즌 마치고 연장 계약 옵션이 있었고 조건이 좋았다. 나도 울산 생활에 만족하고 있었기에 당연히 재계약을 맺으려 했다. 그런데 당시 코칭스태프가 교체되면서 나에게 '함께할 수 없다'는 뜻을 전하더라. 당연히 기분이 나빴고 바로 라커룸에서 짐을 쌌다. 이적 시장이 한창 진행된 시점이었고 급하게 호주로 향했다."
그렇게 입단한 센트럴 코스트에서 활약한 기간을 김승용은 선수생활 중 가장 힘들었던 시기라고 말했다. 그는 "지금은 어느 정도 영어로 소통이 가능하지만 그땐 언어가 통하지 않아 힘들었다. 선수들과 어울리지도 못했다. 한쪽 구석에서 핸드폰만 쳐다봤다"고 회상했다. 다만 경기장 위에서는 그에게 편안한 환경이 조성됐다. "중앙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됐는데 공을 잘 연결만 해주면 내가 도드라질 수 있는 역할이었다. 결국 1년 만에 중국리그의 제의를 받고 떠났다"고 했다.
그가 활약한 13개 구단 중 즐거웠던 때는 강원 FC 시절(2017~2018년)로 꼽는다. 김승용은 "호주, 중국 2부리그, 태국 등에서 뛰면서 국내에선 '김승용 한물 갔다'고 평가했다. 그러던 중 강원이 손을 내밀었다. 강원에 고마운 마음도 있었고 다시 내 능력을 증명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했다. 당시 강원은 1부리그로 승격해 베테랑 선수들을 잇달아 영입했다. 그는 "고등학교 동기 이근호, 백종환이 있었고 정조국, 오범석, 황진성 등 또래 동료들이 많았다. 경기장 안팎에서 서로 마음이 잘 맞았고 팀 분위기도 좋았다"며 "휴식 시간에는 동료들과 같이 PC 게임을 많이 즐겼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게임을 했던 때다(웃음). 그 후 인천 유나이티드로 이적했는데, 또래 선수가 없어 자연스레 게임을 끊게 되더라"라고 말했다.
인천에 1년간 몸담았던 그는 홍콩으로 무대를 옮겨 다시 해외 생활을 했다. 이 같은 다양한 경험은 선수생활 이후를 지내는 그에게 자양분이 되고 있다. "일본, 호주, 중국, 홍콩 등 여러 국가에서 뛰며 만난 사람들과 지금도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며 "그런 부분들이 지금 축구 방송을 하는 데 도움이 되더라. 외국인 선수나 팀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다. 나만 경험한 것을 방송에서 풀어놓기도 한다"고 했다.
그는 최근 월드컵을 보며 전 동료의 활약에 놀라기도 했다. 그는 "튀니지 상대로 골 넣은 호주 공격수 미첼 듀크가 센트럴 코스트 시절 함께 뛴 선수다. 그땐 나이도 어렸을 뿐더러 지금처럼 기량이 성숙하지 못했다. 체격만 크지 센스도 부족하고 투박했는데 많이 성장했더라. 함께 뛸 때는 그 친구가 월드컵에서 득점을 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며 웃었다.
선수생활 중 경험한 최고의 선수로 일본 감바 오사카에서 함께했던 미드필더 엔도 야스히토를 첫 손에 꼽았다. 김승용은 "누구나 인정하는 대단한 선수지만 같은 팀에서 함께 뛰면 또 다르다"며 "미드필드에서 공격수로 향하는 패스의 질이 다른 차원이다. J리그는 잔디 상태도 좋지 않나. 패스가 공격수 입맛이 딱 맞게 들어온다. 정말 예술적이다"라고 했다.
현재는 팟캐스트 방송 외에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있지만 김승용은 축구 지도자를 꿈꾸고 있다. 그는 "선수시절부터 지도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감사하게도 지난해 은퇴 선언 이후 불러주시는 분들이 계셨는데 아직 라이선스가 없어 죄송하단 말씀 드렸다. 현재 고교팀까지 코칭할 수 있는 B급 라이선스까지는 따놓은 상태"라고 설명했다.
그는 자신의 방향성에 대해 '소통하는 지도자'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는 선수단에 비해 코칭스태프 숫자가 적은 것이 현실이다. 해외에는 한 팀에 지도자 숫자가 더 많다. 그렇기에 우리나라는 지도자가 선수들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지도자가 어떤 이야기를 해주느냐에 따라 선수가 경기장 위에서 펼치는 경기력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어떤 팀에서 어떤 역할이 주어질지 모르지만 전술을 만들고 훈련만 시키는 것 외에 선수들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지도자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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