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태 조카와 수행비서가 대표 맡아 ‘스마트팜 지원’ 연관성 의심…쌍방울 “계열사 전반 조사 중이라 확인 어렵다”
김성태 전 회장의 농업회사에 대해선 추가 수사가 필요해 보인다. 대북사업을 대가로 쌍방울그룹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기소된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재판에서 검찰과 이 전 부지사 측은 스마트팜 비용 대납 여부를 두고 여러 차례 공방을 벌였다. 하지만 2월 14일까지 열린 13차례의 공판, 30명에 가까운 증인신문 과정에서 김 전 회장의 농업회사는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았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2018년 12월 5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설립된 농업회사법인 착한농산 주식회사는 김 전 회장이 실소유한 법인으로 추정된다. 착한농산은 2019년 1월 22일 주식회사 쌍방울 신당동 사옥 2층으로 이전했다. 설립 당시 대표이사 오 아무개 씨는 김 전 회장 조카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 최측근으로 수행비서 역할을 한 쌍방울그룹 이사 박 아무개 씨는 사내이사로 이름을 올렸다. 박 씨는 2021년 5월 21일부터 오 씨 뒤를 이어 대표이사를 맡았다.
김 전 회장은 주변에 자신을 '김착한'이라고 부르게 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회장이 착한농산보다 두 달가량 앞서 2018년 9월 19일 설립한 다른 법인 이름에도 '착한'이 들어갔다. 쌍방울그룹 수상한 자금 흐름 중심에 있는 '착한이인베스트'다. 착한이인베스트는 설립 2개월 만인 2018년 11월 쌍방울이 발행한 100억 원어치 전환사채를 사들였다. 착한이인베스트 역시 주소가 쌍방울 신당동 사옥 2층이다. 김 전 회장 수행비서 박 씨는 2021년 11월부터 착한이인베스트 대표이사를 맡았다.
착한농산은 쌍방울그룹 자금도 지원받았다. 쌍방울그룹 계열사 광림은 2018년 12월 13일 이사회에서 착한농산에 금전을 대여하는 안건을 통과시켰다. 착한농산이 설립된 지 8일 만이었다. 구체적인 대여 금액은 공개되지 않았다.
김 전 회장은 착한농산을 설립했던 2018년 12월 전후로 대북사업을 지칭한 이른바 'N 프로젝트'에 공을 들였다. 직접 중국으로 여러 차례 출국해 북한 측 인사를 만나기도 했다. 쌍방울 내의를 북한에 기부할 생각도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 북미정상회담 결렬로 남북관계가 얼어붙으면서 대북사업 추진은 어려워졌다. 그래서인지 착한농산은 2023년 2월 현재까지 특별한 사업을 벌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김 전 회장은 남북관계가 경색되자 주변에 "답답하다"고 털어놓고 "(남북관계가) 언제 풀리나" 물었다고 한다.
착한농산의 자본금이 1000만 원에 불과한 점도 수상쩍다. 보통 농업회사법인은 자본금을 1억 원 이상 출자한다. 정부에서 농업법인에 대한 지원조건으로 자본금 1억 원 이상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농림축산식품부가 2022년 2월 발표한 농업법인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말 기준 농업회사법인 평균 자본금은 3억 2713만 원이었다.
대표이사를 맡았던 오 씨는 농업과는 무관해 보이는 인물이다. 과거 오 씨는 노래방 등 유흥업소에서 주로 일했다. 다른 직원이 술 취한 손님 테이블에 빈 술병을 올리는 등 방식으로 덤터기를 씌우다가 걸리면 오 씨가 손님에게 위압감을 행사하는 역할을 맡았다. 그 과정에서 폭력을 행사해 여러 번 입건됐다. 오 씨는 폭력 등 범죄로 집행유예를 네 번 선고받았다. 착한농산 설립 여섯 달 전인 2018년 6월에도 폭행, 재물손괴, 주거침입 등 혐의로 집행유예 판결을 받았다.
착한농산은 2021년 2월 경기도 화성시에 창고시설 조성사업 허가를 신청한 적은 있다. 하지만 일요신문이 2월 15일 찾은 해당 부지는 허허벌판이었다. 땅을 팠던 흔적만 있었다. 2021년 11월 땅 주인이 바뀐 것이 영향을 끼쳤을 가능성은 있다.
그래도 의문은 남는다. 쌍방울그룹 계열사 간 토지 거래였기 때문이다. 착한농산이 창고를 지으려던 부지는 쌍방울그룹 계열사 미래산업 소유였다. 미래산업은 2021년 11월 계열사 나노스(현 SBW생명과학)에 땅을 팔았다. 나노스는 해당 부지 취득 목적을 "바이오 관련 보관시설 및 업무시설 확보"라고 공시했다.
착한농산과 관련해 쌍방울그룹 관계자는 "계열사 전반적으로 조사 받는 인원이 많다 보니 확인이 어려운 점 이해 부탁드린다"고만 답했다. 농림축산식품부 관계자는 "개별 농업회사법인에 대한 정보 공개는 어렵다"고 밝혔다.
쌍방울그룹 각종 비리 의혹을 수사 중인 검찰은 김 전 회장이 경기도의 북한 스마트팜 사업 지원비를 대신 내주기 위해 2019년 1월과 4월 총 500만 달러를 북한 측에 건넸다고 의심하고 있다. 김성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실장이 2018년 12월 29일 중국 단둥에서 김 전 회장과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 등을 만나 "이화영 선생(당시 경기도 평화부지사)은 우리 조국에 실수한 게 있다"고 화를 내면서 "스마트팜 사업으로 50억 원 정도가 든다"고 말했고, 김 전 회장이 "비용을 대신 내주겠다"고 답했다는 것이다. 검찰이 의심하는 것처럼 500만 달러 대북송금이 사실이라면 착한농산은 대북송금 직전에 설립(2018년 12월)된 셈이다.
당시 상황에 대한 증언은 엇갈리고 있다. 안 회장은 법정증언을 통해 "(김 전 회장이) 술김에 그런 것"이라며 "술에 많이 취해서 횡설수설하고 그랬다"고 말했다. 안 회장 증언에 따르면 쌍방울 측과 북한 측이 만난 자리에서 스마트팜 이야기가 나온 건 이날이 처음이었다.
하지만 동석했던 당시 쌍방울그룹 CFO(최고재무책임자)는 "술을 많이 마시는 상황이었다"면서도 "화기애애한 자리였다"고 말했다. 또한 "중국에 가져간 자료에 쌍방울이 할 수 있는 지원 사업 중 하나로 협동농장에 관한 내용이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 전 회장 등 쌍방울그룹 고위 관계자들이 북한 측과 협동농장 사업에 대해 이미 논의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 전 부지사는 스마트팜 비용 대납 의혹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이 전 부지사 측은 공판에서 "이 전 부지사는 2018년 10월 방북했다. 두 달 만에 약속을 어겼다고 말하는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전임 남경필 경기도지사 때부터 북한과의 스마트팜 협력 모델을 추진했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경기도 전 평화협력국장 신 아무개 씨는 북한 스마트팜 지원 사업과 관련해 "2019년 1월에도 어떤 규모로 어떤 방식으로 할지 진행된 논의가 전혀 없었다"며 "그런 상황에서 사업 진행이 안 됐으니까 돈을 내라는 건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신 씨는 쌍방울과 경기도의 유착 의혹에 관해선 "말도 안 되는 주장"이라며 "쌍방울이 경기도를 이용해서 이익을 보려고 한 것 아니냐"고 주장했다.
남경식 기자 ngs@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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