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타임 내내 뒤통수를 얼얼하게 하는 반전의 연속…욕망을 향한 ‘폭주기관차’들의 이야기
3월 1일 개봉하는 영화 '대외비'는 돈, 권력, 명예, 각자의 욕망을 위해 위험한 거래를 시작하는 세 남자의 배신과 음모를 그린 작품이다. 1992년 부산을 배경으로 만년 국회의원 후보인 해웅(조진웅 분)과 정치판의 숨은 실세 순태(이성민 분), 행동파 조폭 필도(김무열 분)가 대한민국을 뒤흔들 비밀 문서를 손에 쥐고 판을 뒤집기 위해 벌이는 치열한 쟁탈전이 영화의 토대를 이룬다.
"몰랐나? 원래 세상은 더럽고, 인생은 서럽다." 밑빠진 독에 물을 부어가며 선 정치판에서 늘 고배를 마셔야 했던 해웅은 마지막 희망인 국회의원 선거에서마저 자신의 정치 스승 순태의 계략으로 또 다시 지역구 공천에 탈락하고 만다. 순태가 짠 선거판을 뒤집기 위해 부산 지역 재개발 계획이 담긴 대외비 문서를 입수한 뒤 사채일을 하는 조폭 두목 필도의 힘까지 빌려 무소속 후보로 돌풍을 일으키며 상대편 후보를 압박하지만 순태의 공격에 다시 막다른 길에 몰리게 된다. 벼랑 끝에 매달려서도 기어코 기어올라오려는 남자와 그를 짓밟으려는 남자, 그리고 어느 쪽에서든 어부지리를 챙기려는 남자의 동상이몽은 관객들로 하여금 이 세 남자 모두를 마지막까지 의심하게 만든다.
어느 한 쪽에 승기가 올라가는가 싶은 타이밍에 곧바로 다른 쪽의 깃발이 휘날리고, 서로 다정하게 휴전을 말하는 척 하지만 허리 뒤로는 칼날을 숨기고 있다. 앞날을 종잡을 수 없는 세 남자가 선택한 각자의 길과 더불어 이야기가 끝난 뒤의 진정한 승자를 상상하게 만드는 결말도 '대외비'를 관람한 뒤 오래도록 곱씹어 볼만한 지점이다.
출연하는 배우들은 모두 연기력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을 만큼 이미 정평이 난 이들이지만, 자신이 처한 현실의 처지와 감정 변화에서 가장 급격한 굴곡을 그리는 조진웅의 해웅은 특별히 눈여겨 볼 만하다. 선거판에서 몇 번의 고배 끝에 겨우 잡은 동앗줄은 권력의 숨은 실세 순태의 눈 밖에 났다는 이유로 끊어져 버리고, 사채업자와 건달들의 손까지 잡아가며 다시 일어선 벼랑 끝에서조차 재차 권력의 힘에 밀려 떨어진다. 그렇게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일념 하나만 가졌던, 소박하다면 소박한 '보통 사람'이 진정한 욕망에 눈을 뜨면서 끝내 제 손과 남의 연장에 피를 묻혀야만 한다는 잔인한 현실을 깨닫게 되는 게 해웅의 서사다.
조진웅은 단순한 욕망이 어떤 저열함과 잔인함을 만나야 인간을 괴물로 변모시킬 수 있는지 그 과정을 흔들림없이 그려내고 있다. 자신을 팽한 상대에 대한 복수로 시작한 해웅의 반격은 '악마'와 재회하면서 무참한 참격으로 진화한다. 넘어설 수 없는 상대에 대한 경외와 공포, 그럼에도 그를 닮아가는 선택을 하기까지 해웅이 보여주는 심경의 변화는 다소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는 결말부에도 어느 정도 타당성을 쥐어주기도 한다.
급격한 굴곡으로 러닝타임 내내 변해가는 해웅과 달리 이성민의 순태는 줄곧 수면 아래 잔잔한 물결로 존재하다 중반부에서야 폭발하는 저력을 보여준다. 해웅이 먼저 치고 나가는 이야기의 초반에서는 계속해서 '잽'을 맞으며 한 발씩 늦는 모습을 보이지만, 그가 전면에 나서기 시작하면서 해웅과 순태의 두뇌 싸움은 더욱 치열하고 잔인해진다. 서로가 서로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있다고 여기는 이들의 전쟁은 두 '연기 천재' 배우의 열연으로 한층 더 치밀한 긴장감을 관객들에게 안기고 있다.
20일 오후 서울 메가박스 코엑스점에서 열린 영화 '대외비' 기자간담회에 참석한 조진웅은 극중 순태와 대립하는 해웅에 대해 "게임이 안 되는 게임인데 '왜 계속 시키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중간쯤 '전 여기서 '기브 업'해도 될 것 같은데요 감독님?'하고 여쭤보기도 했다"라며 "권력이라는 게 이 인간이 품고 있는 한낱 야망, 욕심인데 그것 때문에 영혼까지 팔고 붙어 먹는 인간이다. 어떻게 보면 저도 저렇게 됐을 땐 (대립하지 않고)큰 그늘인 순태 안에 들어가는 게 좀 따사롭지 않을까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이원태 감독은 변모하는 해웅에 대해 "해웅은 직업이 정치인일 뿐 보통의 40대 남자였으나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인생의 위기로 한 발 잘못 내디뎌 생존의 위기가 됐다"라며 "어떻게든 이를 모면하기 위해 나쁜 짓을 하게 된다. 그게 해웅 캐릭터의 가장 중요한 특징이고 마지막에는 기성 권력의 편에 서게 되는 인간적인 모습, 변해가는 모습, 변한 후의 모습을 다 보여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권력을 쥐려면 영혼을 팔아야 한다"는 극중 순태의 대사처럼 욕망이 유혹과 맞부딪치면서 마치 악마에 홀린 것 같은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되는 인간의 모습을 해웅에 비춰 보여준 셈이다.
끝을 알 수 없을 정도로 비정하고 냉혹한 순태를 연기한 이성민은 전사를 알 수 없어 더욱 미스터리한 그의 모습을 직접 만들어갔다고 설명했다. 이성민은 "정체를 모르는 인물이니 실체를 알 수 없는 것 자체를 외형으로 삼으려 했다.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모습의 이미지를 감독님께 설명드렸고, 상의하면서 만들어갔다"고 말했다. 삭발에 가까운 짧은 머리와 콧수염, 구부정한 어깨와 다리를 저는 모습은 모두 이성민의 아이디어였던 것. 이원태 감독 역시 "순태는 의도적으로 덜 보여줘야하겠다고 생각했다. 사회에서 인식하지 못하지만 사회를 움직이는 사람이 있다고 상정하고 캐릭터를 잡은 뒤 공간도 차갑게 디자인했다"라며 "순태는 (관객들로 하여금) 상상을 할 수 있게 하는 캐릭터다. '직업이 뭐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게 영화를 잘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권력을 두고 전쟁을 벌이는 두 남자 사이에서 돈에 대한 원초적인 욕망을 좇는 필도 역의 김무열은 이 연기를 위해 12~13kg 가량 증량하고 이전에 보여준 적 없는 파격적인 숏컷 헤어스타일을 선보여 대중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이날 기자간담회에 함께 참석한 그는 "헤어스타일을 바꾼 뒤 거울을 볼 때마다 낯설었다"라며 "그 모습을 한 채로 미술 주간 홍보대사를 하러 갔는데 스타일리스트가 맞는 옷이 없다고 큰 정장을 가져왔다. 찍힌 사진을 보니 미술관에 조폭이 서 있는 것 같았다"라며 웃지 못할 에피소드를 전했다.
한편 영화 '대외비'는 3월 1일 개봉한다. 116분, 15세 이상 관람가.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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