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차 정상회담 명단서 빠진 후 문 정부와 별개 채널 추진 가능성…민주당 ‘검찰발 허위 날조’ 규정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을 둘러싼 대질신문 절차 이후 스포트라이트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향하고 있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이 같은 맥락으로 진술하는 가운데, 이 전 부지사는 대북송금과 관련해 모른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정치권에선 김 전 회장과 안 회장 진술이 구체화할수록 대북송금 의혹과 경기도 사이 연결고리가 선명해질 가능성이 제기된다.
일요신문 취재에 따르면 경기도와 북한 간 교류를 위한 물밑작업이 시작된 시점은 2018년 9~10월경이다. 2018년 7월 평화부지사로 부임한 이화영 전 부지사는 제3차 남북정상회담 이후 따로 방북, 경기도가 주체가 되는 남북교류 물꼬를 텄다. 국제대회 북한 대표단 초청, 북한 스마트팜 사업, 옥류관 국내 분점 유치 등 사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이 전 부지사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방북 성과에 대한 이야기를 공개하기도 했다.
2018년 10월 11일 이 전 부지사는 TBS ‘장윤선의 이슈파이터’에 출연했다. ‘옥류관 분점이 어디에 생기냐’는 질문에 이 전 부지사는 “옥류관에 이렇게 관심이 집중될까봐 좀 뒷수순에 발표했는데, 북측과 논의 중에 우리가 주목할 만한 건 황해도에 시범농장건설사업 같은 것이 있다”고 했다. 이 전 부지사는 “북에서는 농업 생산성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높다”면서 “(시범농장건설사업은) 소위 스마트팜 개념”이라고 했다.
2018년 11월엔 경기도와 아태협이 공동개최한 ‘2018 아시아태평양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국제대회)’가 경기도 고양에서 개최됐고, 조선아시아태평양위원회(조선아태위) 핵심 관계자들이 북한 대표단으로 한국을 방문했다. 이 국제대회에선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리용호 조선아태위 부위원장이 주고받은 대화가 눈길을 끌기도 했다.
2018년 11월 16일 국제대회 행사 백브리핑에 등장한 이화영 전 부지사는 둘 사이 대화 내용을 소개했다. 당시 이 전 부지사 인터뷰 내용에 따르면 북측에서 여러 차례 이 대표에 대한 초청 의사를 밝혔고, 이 대표는 “육로를 통해 평양에 가고 싶다”는 의사를 전달했다. 리 부위원장은 “그렇게(육로로 이동하는 게) 되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겠느냐”면서 “다른 경로로 좀 더 일찍 오는 게 좋겠다”고 답했다.
이 전 부지사는 “구체적인 일을 갖고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시기를 특정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 방북 일정과 관련해 시기를 특정하기에 앞서 협력 내용을 구체화할 필요성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됐다.
한국을 방문했던 북한 대표단은 3일에 걸친 일정을 알차게 채웠다. 국제대회 본행사 전날인 11월 15일엔 판교 테크노밸리와 화성시 소재 경기도 농업기술원을 방문했다. 이 중 경기도 농업기술원은 최근 검찰 압수수색 대상이 됐던 곳이다. 경기도가 자체적으로 첨단 농업 기술을 개발하는 싱크탱크다. 스마트팜 기술 개발 및 인재 양성에도 공력을 쏟고 있는 기관이다.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은 검찰 조사에서 “북한 스마트팜 사업비용 취지 500만 달러와 이재명 대표 방북 비용 취지 300만 달러 등을 북한에 건넸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회장이 언급한 취지와 2018년 국제대회 당시 북한 대표단 측 발언 및 동선이 묘하게 맞물리고 있는 양상이다.
경기도와 아태협이 주최했던 국제대회는 문재인 정부와 별개 채널로 추진된 남북협력 작업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대북 소식통은 “9·19 공동선언이 있었던 2018년 제3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방문자 명단을 보면 경기도가 독자적 남북협력 채널을 구성하려 했던 이유를 어느 정도 추정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평양에서 열린 제3차 남북정상회담 당시 청와대는 정치인·경제인·학계·노동계·청년·시민사회·종교·문화·예술·체육 등 다양한 분야의 특별수행단을 대동했다. 여기에 포함된 정치인은 6명이었다. 5명 중 3명은 당시 초청에 응한 원내정당 대표들이었다. 이해찬 전 민주당 대표, 정동영 전 민주평화당 대표, 이정미 전 정의당 대표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당시 민주평화당 의원 신분으로 자문단 및 학계 쪽 명단에 포함돼 초청받았다.
2명은 재직 중이던 지자체장이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전국시·도지사협의회장 자격으로 명단에 포함됐다. 최문순 전 강원도지사는 접경지역을 대표해 초청받았다. 경기도지사 재직 중이던 이재명 대표 이름은 없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당시는 민주당 내에선 차기 대선주자 레이스를 둘러싼 경쟁 구도가 형성되고 있을 무렵”이라면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이재명 대표 등을 중심으로 차기 구도가 거론될 때였다”고 했다.
이 관계자는 “그간 진보 진영 내부에선 남북평화 관련 비전을 제시하는 정치인이 내부 지지층을 결집시키는 효과를 봤다”면서 “진보정당 출신 대통령들은 모두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하며 평화무드를 조성해 국민적 관심을 받았다”고 했다. 그는 “경기도가 2018년 독자적 채널을 구축해 남북교류 비전을 제시한 것은 제3차 남북정상회담 초청을 받지 못했던 이재명 대표가 개인적 대북협력 역량을 부각시키려는 의도가 담겨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2018년 11월 1회 국제대회를 성황리에 개최한 경기도와 아태협은 2019년 7월 필리핀 마닐라에서 2회 국제대회를 개최했다. 1회 국제대회와 2회 국제대회 사이엔 대북협력 관련 대내외적 환경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됐다. 2019년 6월 30일 판문점 남북미 정상회동 이후 남북관계는 본격적으로 교착상태에 접어들었다.
그러나 경기도와 아태협이 별도 채널로 추진한 국제대회엔 북한 대표단이 다시 참석했다. 2019년 7월 24일 새벽 리종혁 조선아태위 부위원장을 필두로 한 북한 대표단 6명이 마닐라에 도착했다.
리 부위원장이 입국장으로 나오는 순간 양옆을 지키고 있던 인물은 안부수 아태협 회장과 양선길 전 쌍방울 회장이었다. 양 전 회장은 2022년 1월 김성태 전 회장과 함께 태국에서 체포된 인물이다.
결과적으로 제2회 국제대회는 경기도와 북한이 공식적으로 접촉한 마지막 행사가 됐다. 김성태 전 회장 진술에 따르면 대북송금은 제2회 국제대회를 전후로 약 3차례에 걸쳐 이뤄진 것으로 전해진다. 법조계에 따르면 김 전 회장은 2019년 11월 이재명 대표 방북비용 300만 달러를 전달했다고 진술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는 “남북관계가 교착을 넘어서 경색 국면으로 접어들던 시기에 북한 대표단은 필리핀 마닐라에서 열린 제2회 국제대회에 정상적으로 참석했다”면서 이렇게 주장했다.
“조선아태위는 자금 공작이 최우선순위인 조직이다. 제2회 국제대회 대표단 파견은 행사 이전 받았던 돈에 대한 보답 형식을 취하면서 동시에 추가 수금에 돌입할 여지가 남았던 것으로도 판단할 수 있다. 김성태 전 회장이 2019년 11월에도 송금을 했다고 진술했다. 남북관계 경색되는 상황에서도 북한 대표단이 ‘경기도 주최 행사’에 참여한 배경을 추정할 수 있는 앞뒤 정황이다.”
2019년 7월 제2회 국제대회가 마무리됐다. 2019년 10월 북한은 ‘남한 접촉 금지령’을 내렸다. 2019년 11월엔 김 전 회장이 북한에 마지막 대북송금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같은 시기 경기도는 지자체 중 처음으로 통일부 대북지원사업자로 선정됐다.
검찰은 경기도·쌍방울·아태협 등 ‘남북교류 별동대’ 격 연합체가 구성된 배경을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과정에서 경기도가 남북협력 사업에 적극적으로 임했던 배경을 추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검찰독재정치탄압대책위원회는 1월 31일 입장문을 통해 스마트팜, 방북 관련 내용에 대한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위원회는 “경기도가 스마트팜 지원 사업을 추진한 것은 사실이나, 현금 지원은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현물 지원 방안이 있을지 북측과 협의하며 검토 중이었다”고 했다. 아울러 “2019년 하반기 남북관계가 경색되던 시점 대한민국 정부와 미국 정부마저 북측과 대화를 진전할 수 없던 상황에서 경기도지사가 방북을 한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했다. 위원회는 김 전 회장 대북송금 관련 진술 보도 내용 등을 ‘검찰발 허위 날조 기사’로 규정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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