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총선 당선을 먼저 축하한다. 지역구(전북 진안·무주·장수·임실)를 포기하고 서울 종로에 출마해 당선되었는데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종로는 1998년 노무현 전 대통령의 보궐선거 승리를 제외하면 한 번도 민주당이 이기지 못했던 곳이다. 책임감을 아주 크게 느끼고 있고 동시에 매우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총선 다음 날 김종인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을 만나러 가던 길에 우연히 차를 타고 당선 인사를 다니는 모습을 보았었다.
▲선거 운동하며 내내 타고 다니던 차인데 그 차가 상당히 인기가 있었다. 전에는 당선자들이 인사를 잘 안했던 모양인지 인사를 다니니까 다들 좋아하시더라. 선거운동 하러 다닐 때는 ‘주인’들이 이놈을 쓸까 말까 검증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선거 끝나고 난 뒤에는 이제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따뜻한 느낌을 받았다. 선택받기 전과 후는 완전히 다르다. 잘 부려먹으시려고 주인들이 잘 해주시는 것 같다(웃음).
―인터뷰 다음 날인 4일 민주통합당의 원내대표 경선이 열렸다. 이번 원내대표 당선자는 전당대회 때까지 비상대책위원장을 겸해 당을 이끌어가야 하기 때문에 그 책임과 영향력이 상당하다. 하지만 이해찬 상임고문과 박지원 최고위원이 각각 당대표와 원내대표에 출마하기로 담합했다는 이른바 ‘이-박 연대론’이 불거지며 후폭풍이 거셌던 상황. 원내대표 후보로 나선 전병헌 유인태 이낙연 의원은 이에 대해 강하게 비판하며 경선 1차 투표에서 질 경우 한 후보를 밀어주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으나, 결국 박지원 최고위원이 ‘계파 보스 나눠먹기식 담합’이라는 비판에도 2차 투표에서 유인태 의원을 누르고 당선됐다. 경선 결과를 지켜본 이후 기자와 전화인터뷰를 나눈 정세균 상임고문은 “이변이 있기를 기대했는데 아쉬움이 남는다”고 전하기도 했다.
▲ 정세균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만나 총선 승리 소감과 야권 대권구도에 대한 의견을 들어보았다. |
―사전에 ‘이-박 연대’에 관해 전해들은 바는 없었나.
▲들은 바 전혀 없었다.
―‘이-박 연대’가 이해찬 상임고문이 기획한 것이라고 전해졌는데.
▲누구 의견이었던 간에 두 분은 모두 정치 고수들 아닌가. 그런데 어떻게 그런 합의가 나왔을지 의아했다.
―지난달 30일 한명숙 전 대표·박지원 최고위원과의 만남이 이목을 끌었다. 당시 오간 얘기들이 공개되지 않았는데.
▲이해찬-박지원 합의가 나오기 이전에 서로 정권교체를 하기 위해서 잘 협력하자는 차원에서 점심 한번 하자고 마련된 자리였다. 미리 약속한 뒤 그런 상황이 벌어져서 오비이락 비슷하게 된 것이다. 총선 결과에 대한 얘기를 주로 하고 앞으로 함께 노력하자는 얘기를 하다가 마지막 부분에 지나가는 말로 이번 선거(원내대표 경선) 얘기를 잠깐 했다.
―박지원 최고위원이 당시 ‘좀 도와 달라’고 했다던데.
▲진지하게 한 말이 아니라 그냥 체면치레로 한 소리다. 또 후보가 도와달라는 소리 안하면 그것도 오만한 것 아니겠나. 내가 ‘뻔히 내 사정 알면서 그러냐’고 답했다. 서로 장군, 멍군 한 거지 뭐, 허허.
―박지원 최고위원이 ‘문재인 상임고문이 (자신에게) 원내대표 출마를 제안했다’고 말해 논란이 일기도 했다.
▲문재인 상임고문이 직접적으로 제안을 했는지는 내가 알 수 없지만 문 고문은 자신의 이해관계 때문에 그러진 않았을 것이다. 어떤 발언이든 순수하게 선의로 얘기했을 것으로 본다.
▲ 정세균 당선자가 4월 12일 서울 종로 일대를 다니며 당선 인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
―박지원 원내대표의 당선으로 이해찬 고문이 전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고 보나.
▲꼭 그렇진 않을 것이다. 이-박 합의에 대한 분위기가 싸늘하기 때문에 각본대로 되도록 용인하지 않을 수도 있다. 조직적으로는 유리할 수도 있지만 역풍이 불 가능성도 있다.
야권의 대선주자들과 민주통합당의 대선 전략에 관한 그의 구상은 무엇인지도 궁금했다.
―문재인 상임고문이 총선 이후 오히려 대선주자로서 입지가 약해진 상황인데.
▲내가 지역주의를 깨야 한다는 ‘남부민주벨트론’을 주장했었는데, PK 지역에서 두 자리 수 의석을 확보하기를 진심으로 바라면서 했던 말이다. 그런데 결과가 좋지 않아서 그에 대한 실망감이나 서운함이 문재인 고문에게도 영향을 미친 것 같다.
―민주통합당으로선 경쟁력 있는 대선 주자를 키우거나 영입해야 할 필요성이 더 절실해졌다.
▲가능하면 당내에서 주자를 키우는 것이 좋다. 전부터 내가 ‘스타 프로젝트’를 이야기해 왔는데 5~7명 정도의 ‘대선후보군’이 나와서 치열하게 경쟁을 하고 그 과정에서 국민들과 소통하고 검증을 받으면 그 중에서 누군가 승자가 나올 것 아닌가. 그러면 그 주자가 ‘스타’가 될 수 있고 여권주자와 일대일 구도를 만들면 우리가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우리가 졌지만 총득표수와 정당지지율은 진보진영이 더 높았다. 그렇기 때문에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본다.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민주통합당 입당을 권유하고 있는 이유도 그런 차원인가.
▲정당 기반 없이 대통령에 당선되기는 어려운 일 아닌가. 통합절차도 어렵고 시간이 얼마 안 남았는데 안 원장이 정당을 만들고 민주통합당 주자와 단일화 하는 이런 방식은 어렵다. 또 안 원장이 만약 들어온다고 한다면 민주당 역시 불이익이 없도록 제도적인 뒷받침을 해줘야 할 것이다. 그냥 후발주자로 손해를 감수하고 무조건 들어오라고 하는 건 비현실적인 이야기다.
―안철수 원장이 기존 정당에 속해있지 않기 때문에 지지율이 높다는 분석도 있다.
▲국회의원이나 단체장 같은 경우는 무소속으로 가능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이나 김두관 경남지사도 무소속으로 당선돼 민주통합당에 입당한 분들 아닌가. 하지만 대통령은 다르다. 대통령에 비해 서울시장이나 도지사의 영향력 차이는 계량적으로 비교한다면 100분의 1, 1000분의 1 정도 차이다. 국민들이 그만큼 신중하게 뽑는다는 이야기다. 유력 정당의 배경 없이 지사나 시장이 되었다고 해서 대통령도 될 수 있지 않느냐는 이야기는 그런 점을 간과한 것이다.
―김두관 지사 역시 대선 출마를 준비 중인 것으로 전해지는데.
▲김 지사는 불모지에서 민선지사로 당선된 저력이 있지 않나. 나이도 젊고 국민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고 본다.
정세균 고문 또한 현재 싱크탱크인 ‘국민시대’의 조직을 재정비 하는 등 대선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대선주자 정세균’의 강점은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정세균 상임고문의 방에는 김대중, 노무현 두 전직 대통령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나는 우리 진영에서 가장 정통성 있는 후보다. 김대중 대통령의 영입으로 정치활동을 시작했고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 장관을 했다. 나는 그 두 분을 모시고 일하면서 한 번도 두 분을 부정한 적이 없다. 또 당대표로서 2010년 6·2 지방선거를 승리했고, 나 개인으로서도 이번 선거에서 호남에서의 기득권을 버리고 불모지인 종로에서 당선된 것 아닌가. 이번 총선에서 지역구를 옮긴 정동영 천정배 정균환 김부겸 등 여러 호남 중진 중에서 유일하게 나만 생존했다. 참 괜찮은 후보인데 그동안 나는 ‘저평가 우량주’였던 것 같다.”(웃음)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이미지가 밋밋? 인생은 드라마틱
1. 검정고시 공고 거쳐 대학 입학
“너무 밋밋하다, 무난하다, 관리형 대표다, 그런 말 자주 듣긴 한다. 나도 참 답답한데…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쩌나, 허허. 하지만 알고 보면 그런 사람만은 아니다.”
정세균 고문의 다소 밋밋해 보이는 이미지와는 달리 그의 인생은 드라마틱한 대목이 적지 않았다. 중학교를 못 나와서 검정고시로 졸업하고 고등학교는 공고를 갔다고 한다. 전주공고를 다니다 대학진학 꿈을 이루기 위해 인문계 전주신흥고를 거쳐 고려대 법대에 들어갔고 고대에서 총학생회장까지 했던 것. 정 고문은 “이렇게 밋밋한 이미지가 언젠가는 빛 볼 날도 있지 않겠나”라고 웃으며 덧붙였다.
2. ‘세균’의 심오한 뜻
“한학을 하신 할아버님이 지어주신 이름이다. 세상 세(世)에 고를 균(均), 세상을 고르게 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성씨인 고무래 정(丁)에도 의미가 담겨 있다. 고무래가 곡식을 고르게 펼 때 쓰는 기구를 뜻한다. 이름 그대로가 정치를 하라는 뜻 아닌가.(웃음)”
3. 박근혜 대선서 맞붙자!
정세균 고문은 지난 총선에서 종로지역에 거물급이 출마하기를 바란다며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과 붙으면 멋진 한판 승부가 될 것이다”라고 박 위원장을 꼭 집어 거론한 바 있다. 대선주자로 나설 경우에도 새누리당 주자인 박근혜 위원장과의 경쟁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 박근혜 위원장의 ‘단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물어봤다.
“박근혜 위원장은 경험이 부족하지 않나. 선거 경험만 있지 다른 행정 경험은 없지 않나. 그리고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 서민 중산층과 잘 소통이 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