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은 많지만 스승은 없다는 말 속에 들어있는 건 학교에서 인격의 감동을 받아본 일이 없다는 뜻일 것이다. ‘인격함양’이라는 멋진 말이 구태의연한, 죽은 말이 된 것도 다 우리 선생들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참 멋진 선생님 얘기를 들었다. 진도에서 배를 타고 한 시간 들어가면 작은 섬 조도가 있단다. 거기 고등학교의 조현주 선생님은 매일 전교생의 저녁상을 준비한단다. 전교생이라 봐야 22명이지만 아이들이 밥을 먹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음식을 만드는 멋진 선생님! 야식비가 책정된 것도 아니어서 십시일반으로 돈을 거둬 먹거리를 사고, 창고를 개조하여 식당을 만들었단다.
누가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는 선생님, 그런 밥상을 받은 학생들은 그 자체로 사랑을 배우고 믿음을 배우게 되는 것이 아닐까. 진짜 스승이었다.
내게도 그렇게 ‘스승’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스승이 있다. 철학자 정대현 교수다. 누구나 그 앞에 가면 인격으로 대접받는다는 것이 이런 것임을 느끼게 만드는 선생님이다. 얼마 전에 선생님의 여동생을 만났는데 “역시 선생님!”이지 싶은 얘기를 들었다. 사모님이 어린 손자를 돌보기 위해 미국으로 떠나면서 여동생의 집을 오가는 도우미 아주머니의 손길을 요청했다. 일주일에 한번 선생님 댁에 방문하는 아주머니는 20여 년간 도우미로 일을 해온 베테랑이었다. 그 아주머니가 선생님 여동생을 만나 토해낸 말, “세상에, 그런 분은 처음 만났다”는 것이었단다.
그 아주머니에게는 진지하게 이름을 물어보는 첫 대면부터 낯설었다. “우리 교회에서는 남자는 형제, 여자는 자매라고 해요. 그러니 저는 선생님을 ○○○자매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커피 한 잔 하시고 천천히 도와주시지요.” 그리고는 선생님께서 요즘 빠지신 고급 원두커피를 내려 한 잔을 권했다는 것이었다. 오실 때마다 백발의 노신사는 커피를 내려주는 일을 빼먹지 않았다.
여동생은 언니 없이 나이든 오빠가 혼자 있는 것이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전화를 해서 안부를 챙겼는데, 그 여동생을 향해 선생님이 던진 말은 이것이었다. ○○○ 자매 덕택에 불편한 게 없어! 동생이 물었단다. ○○○ 자매가 누구죠?
자기 집과 이웃집에서 10년 넘게 일하면서도 남의 집에 와서는 커피 한 잔 마시는 법이 없던 ‘은영이 엄마’의 이름을 찾아주고 남의 집에서 커피를 마시며 편안하게 일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바로 그 사람이 우리 선생님이다.
나는 그런 선생님의 제자인 것이 좋다. 사실 제자라고 아무 것도 해드린 게 없이 늘 받기만 했는데, 이번 스승의 날엔 마음을 담은 편지 한 장이라도 써야겠다고 마음을 먹는다. 스승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선생님을 가진 사람은 그 자체로 복 많은 사람이다.
수원대 교수 이주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