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9년 김현희가 일본인 납북 피해자 다구치 야에코 씨의 오빠인 이즈카 시게오 씨와 아들 이즈카 고이치로 씨를 만나는 자리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하치야 신이치와 하치야 마유미는 공작원으로 상당 기간 동반자로 활동을 했다. 동유럽이나 중국에 이르렀을 때는 부녀지간으로 위장하여 한 방을 사용했다. 수사관들은 그 점에 대해서 많은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김현희는 바레인 경찰의 신문에서도 그렇게 진술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도 좀 더 과학적인 조사를 해야 했으나 그녀의 자백을 그대로 믿었다.다시 목욕을 하던 그날로 돌아간다. 목욕을 시키면서 그녀의 어깨를 살피자 흉터 하나가 눈에 띄었다. 3~4㎝ 정도 크기에 피부가 울룩불룩 튀어 올라와 있어 보기에도 매우 흉했다. 내 눈에는 수술자국 같았다. 나는 이 사실도 주무 수사관에게 보고했다.
“어깨의 흉터는 어떻게 하다가 생긴 거야?”
주무수사관이 마유미에게 물었다.
“중국에 갔을 때 불량배를 만났는데 그들에게 찔렸어요.”
그녀가 흠칫하면서 대답했다.
“뭐에 찔렸어?”
“칼에 찔렸어요.”
그녀는 당시 상황을 손짓까지 해가면서 설명했다. 그러나 공작원들이 불량배들을 만나 칼에 찔리는 것은 드문 일이다. 미심쩍었으나 그녀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도무지 칼에 찔린 상처로 보이지 않았다. 그녀의 체격은 좋은 편이었다. 특히 어깨가 발달되어 있었고 허리는 잘록했지만 허벅지는 근육으로 탄탄했고 종아리는 알이 배어 튼튼해 보였다. 상당 기간 동안 훈련을 받은 몸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얼굴의 양 볼 주변은 눈에 띄게 기미가 끼어 있었고 손톱에는 건강이 안 좋으면 생긴다는 흰 줄이 있었다. 북한에 있을 때부터 그런 건지, 독약 앰플을 깨물고 바레인 병원에 있으면서 생긴 건지는 알 수 없었다.
“얘가 병이 있나? 손톱에 흰 줄이 있네.”
나는 그녀의 손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러자 그녀도 슬며시 자기의 손을 들여다보았다.
마유미는 북한 공작원이 확실했다. 우리는 그러한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으나 그녀가 어떤 질문에도 대답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난감했다. 수사관들이 다른 사건보다 3배나 배치되고 수사관 회의가 자주 열렸다. 어떻게 하든지 그녀의 입을 열어야 했다.
처음 마유미를 심문할 때 KAL기가 폭파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일부러 하지 않았다. 혹시 그녀가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입을 다물거나 자해를 할지도 모른다는 염려에서였다.
“어느 나라 사람이야?”
마유미에 대하여 본격적인 심문을 하기 시작했다. 심문은 그녀의 신상에 대한 것부터 시작되었다.
“중국.”
마유미는 바레인에서 가짜 여권을 가진 것이 탄로나 더 이상 일본인으로 행세하기 어려웠다고 느껴 자신을 중국인으로 진술했다. 바레인에서 체포된 후 바레인 수사기관에서 진술한 것과 크게 차이가 없는 진술이었다.
“나이는?”
“1962년생이에요.”
“일본 여권에는 60년생이라고 되어 있는데?”
“정확하게 말하면 64년생이에요.”
“왜 진술이 엇갈리는 거야? 자꾸 이렇게 거짓말을 하면 어떻게 해?”
심문을 하는 수사관과 그녀 사이에 줄다리기가 시작되었다. 위조 여권에는 1960년 1월 27일생으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62년생이라고도 했다가 64년생이라고도 하는 등 수사관들을 혼란에 빠지게 만들었다.
“누가 거짓말을 해요?”
“나이를 거짓으로 말하고 있잖아? 이렇게 자꾸 거짓말을 하면 너를 상대할 수 없어.”
수사관이 화를 벌컥 내면서 그녀를 다그쳤다.
“그럼 나를 죽여요.”
마유미가 갑자기 앙칼지게 소리를 질렀다. 수사관이 놀라서 그녀를 쳐다보았다. 심문이 중단되고 잠시 무거운 정적이 흘렀다. 마유미의 반발에 나도 놀랐다.
“네가 솔직히 말해야만 우리도 너를 도울 수 있다.”
수사관이 언성을 낮추고 설득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그녀는 62년생이라고 말했다. 수사관들은 그것으로 결론을 내렸다.
▲ KAL기 폭파사건을 다룬 영화 <마유미> 스틸 사진. |
“선배, 쟤가 하는 일본어가 일본 사람들하고는 다른 것 같지 않아?”
일본어를 잘하는 채명희 수사관이 나에게 물었다.
“일본말이 유창하지만 악센트는 좀 다른 것 같아.”
“내가 들으면 북한 악센트인 것 같아.”
마유미는 일본어가 유창했지만 억양은 아무리 들어도 북한의 억양이 배어 있었다. 그녀는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에서 자랐다고 말했다. 물론 그것은 위장 진술이었다.
식사는 주로 밥이었다. 처음 그녀는 식사를 조금밖에 안했는데 그나마 김치는 맵다고, 된장은 냄새 난다고 하면서 잘 먹지 않았다. 구운 김을 보고는 종이를 태운 것 같다고 투덜거렸다. 일본에서 생활했다면서 일본사람들이 그렇게 좋아하는 김을 모른단 말이야? 우리는 의아해했지만 심문이 계속될수록 이런 일은 점점 늘어났다.
“일본 수상이 누구야?”
“나카소네.”
우리는 일본에서 살았다는 그녀의 말에 따라 일본에서의 생활을 자세히 물었다. 그런데 당시 일본 수상은 다케시타였는데 그녀는 전 수상인 나카소네라고 대답하는 등 진술에 신뢰성을 보여주지 않았다.
“일본의 자동차 핸들은 어느 쪽에 있지?”
“왼쪽에요.”
마유미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그러나 일본의 자동차 핸들은 오른쪽에 있었다.
“일본에서 무슨 텔레비전을 보았어? 텔레비전 이름이 뭐야?”
“즈쯔시.”
그녀가 즈쯔시라고 하는 바람에 채명희 수사관의 눈이 커졌다. 즈쯔시는 일본 말로 진달래라는 뜻인데 북한에서 생산하는 텔레비전 상표가 진달래였다.
“즈쯔시는 진달래란 말이지?”
채명희 수사관이 기회를 포착하고 물었다.
“잘 기억나지 않아요. 소니인 것 같기도 하고 후지인 것 같기도 해요.”
“즈쯔시라고 했잖아?”
그녀는 당황하여 얼버무리면서 말했다. 그리고는 피곤하다면서 입을 다물어 버렸다. 언제나 이런 식이었다. 그녀는 심문을 받다가도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이 나오면 말을 멈추고 피곤하다면서 심문에 응하지 않았다. 그러면 수사관들도 쉴 수밖에 없었다. 수사관들은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날짜는 하루하루 지나가고 상부에서는 빠른 심문을 재촉했다.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그녀를 강압할 수 없었다. 우리는 그녀가 일본에서 훈련을 받은 것이 아닐까 하여 그녀가 살던 집까지 그리게 했다. 정확한 주소도 말하라고 했으나 응하지 않았다. 그것은 지루한 줄다리기였다.
“중국에 있을 때 한국 노래를 아는 게 있어?”
“아리랑과 고향의 봄을 조금 알아요.”
“한번 불러봐.”
그녀는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아리랑을 불렀다. 고향의 봄을 부르라고 하자 역시 발음이 정확하지 않았다. 수사관들이 그녀가 부르는 고향의 봄을 따라 불러주었다. 그녀는 더욱 흥이 나서 고향의 봄을 불렀다.
“이 노래들을 어떻게 알지?”
“흑룡강성에서 조선족이 부르는 것을 들은 일이 있어요.”
심문은 지지부진했다. 12월 22일 오후, 수사관들은 그녀에게 서울 구경을 시켜주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녀를 거리로 데리고 나가는 것은 경호 문제로 신경을 바짝 써야 했다. 그러나 남파 간첩이나 귀순자들에게 대한민국의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수사의 과정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그런 방법이 효과를 거두기도 했다.
상부의 허락이 떨어지자 수사관들이 구두회의를 하여 일단 차 안에서 거리 모습만 보여주기로 했다. 며칠 동안 하루종일 조사실에서 살아야 하는 그녀에 대한 배려라기보다 심경의 변화를 일으켜 심문에 응하기를 바라는 고육책이었다. 그녀가 북한 공작원이라면 발전된 서울의 모습을 보고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동차를 타고 남대문, 시청, 여의도와 잠실, 압구정동을 돌았다.
“여기가 남대문이야. 대한민국 국보 1호지.”
나는 물론 그녀와 동행하여 차창으로 지나가는 건물을 설명했다. 그녀에게는 처음 보는 서울 풍경이니만큼 충격이 컸을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눈치를 살폈다.
“저기는 서울시청이야.”
마유미는 내가 손가락질을 하면 쳐다보기는 했으나 대꾸는 하지 않았다.
“여긴 압구정이야. 70년대까지는 명동이 최고로 번화했지만 이제는 부자들이 압구정동에 많이 살아.”
나는 서울에 아파트 붐이 일어난 것을 설명하려다가 그만두었다. 북한에서 훈련을 받은 마유미에게 설명을 하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이 더욱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고도의 훈련을 받은 그녀는 크게 놀란 모습이 아니었다.
김현희는 훗날 자신이 북한 공작원이라는 사실을 자백한 후에 이때 한국의 발전한 모습에 놀랐지만 그것은 미 제국주의의 식민지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니 부러워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으며 상점의 광고판도 영어로 되어 있어 더욱 그런 생각을 했다고 진술했다.
정리=이수광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