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새라 마샬 잊기>에선 남자 주인공의 성기가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
“에이, 뭐야.” 그러나 영화 시작한 지 5분 만에 탄식이 나왔다. 뱀처럼 뒤엉키며 서로를 탐하는 남녀의 가슴과 엉덩이는 지겨울 정도로 보여주는데, 사타구니 쪽으로 갈 때마다 돌연 화면이 전환되는 것이었다. 영화의 시작과 끝은 금발 남녀의 허연 알몸으로 치달았지만, 그들의 성기는 기어이 드러나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 10대 초반의 필자가 본 영화는 그냥 ‘에로’였다. 지금에야 남녀의 성기가 종종 드러나지만,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 ‘성기’는 금기의 영토였다.
한국과 달리 서구에서는 성기 노출에 관한 유구한 역사를 자랑한다. 1896년 프랑스 감독 유진 피오루가 연출한 영화 <LE Coucher de La Mariee>는 러닝타임이 약 3분에 불과하지만 노출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 젊은 남녀가 호텔 방에서 슬슬 옷을 벗다 침실로 들어가는데 신부의 젖가슴은 물론이고 체모가 훤히 보인다. 영화라는 매체의 등장만으로 충격적이었던 시대였다. 파리의 한 카페에 앉아 영화를 보던 프랑스인들은 입을 다물지 못 했다.
▲ 이완 맥그리거가 출연한 영화 <트레인스포팅>. |
영화 <새라 마샬 잊기>(forgetting sarah-mar shall)에서 남자 주인공 제이슨 시걸은 여자친구인 새라에게 버림 받을 때마다 완전한 나체로 등장한다. 세 번이나 성기를 보이는데, 6피트 2인치의 거구에 걸맞게 물건이 방망이만 하다. 이 영화의 제작자 겸 감독인 저드 에파토는 영화 속에서 남성의 성기를 등장시키는 것으로 악명 높은데, 한국에서는 불법 다운로드가 아니면 구할 수 없는 작품이 다수다.
연기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벗는 건 명배우의 숙명일 것이다. 할리우드의 전설적 배우 말런 브랜도는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51)의 남자 주인공으로 분해 당대의 섹스심벌로 등극하고 <대부>(1972)에서는 이탈리아계 미국 마피아 두목으로 출현해 신들린 듯한 연기를 선보인다. 그렇지만 충격으로 말하자면 <파리에서의 마지막 탱고>(1972)가 최고다. 중년의 고독한 남성으로 나온 브랜도는 결혼을 앞둔 젊은 여성과 가학적 정사를 즐긴다. 두 배우의 성기 노출은 물론이거니와 항문 섹스를 벌이기도 한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를 논할 때 빠짐없이 등장하는 영화지만, 중년의 권태와 허무 등을 매우 극적으로 그린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한국에서는 무분별한 노출과 노골적 정사신 때문에 개봉이 미루어지다 90년대 중반에 일부 삭제된 채 개봉되었다.
▲ 톰 크루즈와 니콜 키드먼이 부부였을 당시 출연했던 영화 <아이즈 와이드 셧>. |
아무리 연기라고 한들, 성기 노출은 파격인 건 변함이 없다. 영국의 경우 성기 노출이 포함된 영화는 성인 관람만을 허용하는 ‘18’ 등급을 받는다. 그밖에 유아의 관람을 허용한 ‘U’ 등급과 15세 이상만 관람이 가능한 ‘15’ 등등이 있다. ‘15’ 등급의 영화는 여성의 가슴과 엉덩이 노출이 종종 포함되지만, 격렬한 정사신이 담긴 장면은 어김없이 ‘18’을 받는다. 청소년에게는 이런 점이 불만인 듯하다. 지난 5월 10일 낮 런던 남동부에서 만난 서니(가명·15)는 “솔직히 열 살만 넘으면 어차피 다 알 만큼 알지 않는가”라며 “굳이 성기가 나왔다고 청소년의 관람을 허용하지 않는 건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영화 등급은 한국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성기 노출만으로 문제작이 되지 않는다. 최근 영국에서 가장 뜨거운 논란을 부른 영화는 20대 남녀의 사랑을 담은 <나인송즈>(2005)다. 영화는 아예 경계를 넘어 포르노의 영역에 뛰어든다. 오럴 성교 중에 남성의 정액이 버젓이 나오는가 하면 삽입하는 장면이 클로즈업된다. 신음 소리는 리얼리즘 그 자체다. 예술인가 외설인가를 넘어 연기인가 실제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2005년 <나인송즈>는 서울 유럽 영화제에서 상영되기도 했지만, 한국 극장에서 정식으로 개봉되기는 당분간 힘들 듯하다. 영화 <은교>의 남녀 배우가 성기 노출을 했다는 사실이 언론에 도배되는 걸 보면 그렇다.
이승환 영국통신원 world@ilyo.co.kr
박찬욱 명성에 ‘무삭제’ 화답
1년 뒤 영화 등급을 심사하는 공연윤리위원회는 또 한 번 사고를 친다. 미국 영화 <크라잉 게임>(1992)에서 남성의 성기가 등장한 것이다. 여성인 줄 알았던 배우가 남자로 밝혀지는 장면을 위해 감독은 성기를 노출시키는데, 윤리위원회에서 ‘칼질’을 하지 않은 것이다. 규제를 일삼던 시대에서 ‘성기 노출’이 통과되었다는 건 가히 기적이라 할 만하다.
2000년 이후 성기 노출에 대한 규제도 완화된다. 그러나 예술성이 뛰어난 <죽어도 좋아>(2002) 같은 작품이 제한상영 판정을 받으며 논란이 일었다. 제한 상영이란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이 가능하다는 얘기인데, 제한상영관이란 사실상 ‘성인영화관’으로 통하기 때문이다.
일반 극장에서 성기를 볼 수 있는 건 영화 감독 박찬욱의 공이 크다. 세계적인 명성을 쌓은 박 감독이 2009년 만든 <박쥐>에서 배우 송강호의 성기가 드러난다. 작품적으로 훌륭하긴 했지만, 박 감독의 명성에 영화등급위원회가 한발 물러섰다는 얘기가 많다.
하지만 최근 한국 영화 <줄탁동시>는 성기 노출 등을 이유로 제한 상영 판정을 받았다. 런던 남동부에 사는 데이비드 커밍(25)은 “성기가 노출된다고 흥분되지는 않는다. 배우들의 연기에 따라 더 야하게 느껴지는 게 아닌가”라며 “성기 노출만으로 논란이 되는 한국 사회를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