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매수에서 가장 중요한 조건은 여유 자금이다. 동원 가능한 자금 없이 매수 타이밍을 논하는 것은 환상에 불과하다. 타이밍은 현금을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는 사람들만의 영역이다. 저점에 집을 매수하기 위해서는 예·적금 같은 현금성 자산이나 현금을 쥐고 있어야 가능하다. 환매가 불가능하거나 환매가 가능하더라도 큰 손실이 뒤따르는 금융상품은 현금성 자산에 포함시키기 어렵다. 이러다 보니 큰 위기로 급락 장세가 오더라도 실제로 급매물을 살 수 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살 때라는 것을 알지만 막상 행동을 뒷받침할 돈이 없는 것이다. 이런데도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현금 부자인 것처럼 수시로 매매 타이밍을 잰다.
만약 전세금이 전 재산인 세입자라면 위기 때 집 사기는 더욱 어렵다. 집주인에게 전세보증금을 되돌려 받아야 하는데,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세입자가 아닌 한 계약만기 이전에 보증금을 내주는 집주인은 드물다. 위기 때는 취약한 사금융인 전세가격이 매매가격보다 더 떨어지고 역전세난이 함께 일어난다. 보증금을 되돌려 받기 힘든 상황에서 매수 타이밍을 재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만약 폭락이 왔을 때 집을 사려면 전세로 살기보다 보증금은 은행에 예치하고 월세로 살아야 가능하다. 만약 집값이 급락할 것이라고 믿는다면 말로만 떠들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조용히 실탄(자금)을 만들어라. “호랑이는 스스로 호랑이임을 밝히지 않는다. 다만 덮칠 뿐"이라는 아프리카 작가 월레 소잉카(Wole Soyinka)의 말을 가슴에 담을 필요가 있다. 결정적인 순간에 실행을 하려면 그만큼 평소에 착실하게 자금을 준비해야 한다는 뜻이다.
둘째, 거래가 빈번해야 매도자든 매수자든 타이밍을 잴 수 있다. 거래가 빈번하다는 것은 부동산시장에 참여하고 있는 매수자와 매도자가 많다는 뜻이다. 먼저 매도자 입장에서 생각해보자. 거래가 거의 없는 시골 땅은 길게는 2~3년에 한 번 매수자가 나타난다. 매수자가 있을 때가 최상의 매도 적기인지도 모른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팔 기회가 오랫동안 오지 않을 수 있다.
주택도 거래가 빈번하지 않으면 매도 타이밍을 재는 일이 무의미하다. 나 홀로 아파트 단지뿐 아니라 대규모 단지라도 대형 평형 아파트나 빌라, 다세대주택 등은 거래가 뜸하다. 거래가 빈번하지 않은 시장에서 매도자는 교섭력을 발휘하기가 어려워 더욱 불리하다. 매수자는 매도자보다 느긋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거래가 끊긴 시장에서 매도자가 시기를 따진다는 것은 백일몽에 가깝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꼴이다. 부동산 상품 중에서 그나마 대규모 단지의 소형 아파트는 매도 타이밍을 잴 수 있다. 하지만 지금처럼 거래가 뜸한 침체기라면 이 역시 어려운 일이다.
거래가 잦지 않은 시장에서는 매수자도 조심해야 할 게 적지 않다. 이런 시장은 주로 표준화되지 않은 상품으로 구성돼 있는 경우가 많다. 가령 구획이 정리되지 않은 토지, 단독주택, 상가 등이 여기에 해당되는 상품이다. 비표준화된 부동산은 표준화된 아파트보다 타이밍을 재기 어렵다. 거래량이 많지 않으니 내가 원하는 매물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비표준화 부동산을 사기 위해서는 타이밍 못지않게 다리품을 많이 팔아야 한다. 물건에 따라 가치가 크게 다르므로 가치를 평가할 수 있는 안목 역시 중요하다. 요컨대 매수·매도 타이밍은 무조건 재지 말고 자신의 처지나 상품의 특성별로 달리 접근해야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자.
박원갑 박사는 국내 대표적인 부동산 전문가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부동산학 석사, 강원대 부동산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경제TV의 ‘올해의 부동산 전문가 대상’(2007), 한경닷컴의 ‘올해의 칼럼리스트’(2011)를 수상했다. 현재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책 자문위원이다. 저서로는 ‘부동산 미래쇼크’,‘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등이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