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엽관제도라도 미국에선 매우 건전하게 운영되고 있다. 대통령의 고향친구들이 정부 요직을 독점하는 점에서는 엽관이지만 임명과정에 비리의 소지가 없고 자질과 능력을 갖춘 인선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대통령의 선택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7대 대통령인 앤드루 잭슨, 29대 워렌 하딩 대통령의 엽관행각은 악명이 높았고, 특히 오하이오 주 출신의 하딩 대통령의 엽관정치는 ‘오하이오 갱’으로 명명될 정도였다. 20세기 들어 갱과 함께 마피아로 불렸는데 카터 대통령의 ‘조지아 마피아’, 클린턴 대통령의 ‘아칸소 마피아’, 부시 대통령의 ‘텍사스 마피아’가 그들이다.
시카고 출신인 현 오바마 대통령의 친구들은 ‘시카고 루프(Loop·고리)’로 불린다. 루프로 불리는 것은 시카고가 알 카포네의 진짜 마피아의 본거지였음을 배려한 때문일 것이다.
우리 대통령이 고향사람을 고위직에 앉히기 시작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 때, 특히 유신 이후 심해졌다. 망국병으로 일컬어지는 지역감정의 뿌리도 따지고 보면 거기서 출발한다.
우리의 엽관행태가 미국과 다른 것은 타 지역에 대한 적대감이나 배척심리를 깔고 있다는 점이다. 영남 정권 시절 호남인사의 요직 발탁은 극히 제한적이었다. 호남정권 시절엔 그 반대의 현상이 당연시됐다.
그것보다 더 다른 점은 공직관이다. 공직에 발탁된 미국 대통령의 친구들은 대통령을 돕고, 나라에 봉사하는 기회로 여기는 데 반해 우리나라에선 팔자를 고치는 기회로 삼으려는 사람이 많다. ‘꿩 먹고 알 먹기’ 식의 공직관을 가진 사람들이 득실대고, 거기에 대통령을 위해서라면 불법도 불사하는 비뚤어진 충성심이 가세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포항 출신이기는 하지만 기업체 사장도, 시장도, 국회의원도 서울에서 했다. 그럼에도 ‘영포(영일 포항의 줄인 말)라인’이라는 비선조직이 등장해 국정을 농단한 사실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그중 ‘왕차관’ ‘왕비서’로 불리며 핵심으로 꼽혔던 박영준 씨가 쇠고랑을 찼다.
자질이나 능력보다 고향, 또 같은 사투리를 충성도의 기준으로 삼는 구시대적 관행이 이 사태의 원인이다. 과거의 정부들은 정적에 대한 탄압과 같은 무리한 정책을 펴는 과정에서 그런 원시적인 인사정책을 썼다. 그 점에서 이명박 정부의 인사정책은 역사의 후퇴다.
PPP 공식이라는 게 있다. 명예(Pride)+재물(Property)=감옥(Prison)이 그것이다. 명예와 재물을 함께 탐했다간 감옥에 간다는 얘기다. 이 공식을 입에 달고 다녔던 사람 중의 하나가 박영준 씨와 같은 혐의로 구속된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이라는 것은 아이러니다.
이 고리를 끊기 위해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자명하다. 재벌은 자식이 원수요, 대통령은 측근이 원수라는 얘기를 새겨야 한다. 사투리를 인사 기준에서 배제하고, 공직을 명예로만 아는 사람을 가려내는 것이다.
한남대 교수 임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