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사비 인상이 분양가 자극…전문가 “신규 주택 공급률 떨어질 수도” 일부 비인기 지역 미분양 우려 확산
#늘어난 공사비로 재건축 사업장마다 분쟁
서울 양천구 신월동 신목동파라곤 아파트는 입주예정일인 3월 1일이 지났지만 단 한 가구도 입주를 하지 못하고 있다. 동양건설산업이 입주를 앞두고 74억 원의 추가 분담금을 요구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유치권을 행사한 탓이다. 강남구 대치동 대치푸르지오써밋도 대우건설이 670억 원의 공사비 증액을 요구하면서 갈등을 빚었고 서초구 반포동 레미안 원베일리도 삼성물산이 설계변경과 시설고급화 등의 이유로 1560억 원의 공사비 증액을 요구해 진통을 겪었다.
공기가 연장되는 사례도 생기고 있다. GS건설은 서초구 신반포4지구(신반포메이플자이) 재건축 조합과 공사비 및 공기 문제를 놓고 수개월째 갈등을 빚다가 공사비를 9300억 원에서 1조 1300억 원으로 늘리고 공사 기간은 8개월 연장하기로 했다. 지방에서는 HDC현대산업개발이 대구 수성구에 있는 범어우방1차아파트 주택재건축정비사업 공사비를 1조 810억 원에서 1조 3846억 원으로 늘리고 공기를 6개월 연장한다고 발표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최근 건축비와 자재비 인상으로 공사비가 오르면서 조합원들의 분담금이 꾸준히 늘고 있다. 최근 시공사를 선정한 상계 주공5단지도 추가 분담금만 7억 원에 달할 거라는 관측이 나오면서 불만이 터져나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건설업계 다른 관계자는 “대조 1구역이나 이문·휘경 쪽 재건축정비사업에서도 추가 분담금이 늘고 있다”며 “분양가는 한 번 정해지면 못 바꾸기 때문에 공사비 증액으로 인한 부담은 오롯이 조합원들이 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집값이 하락세인 점도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이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장은 “주택경기까지 침체된 만큼 분양이 쉽지 않아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아서 손실을 충당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추가분담금뿐만 아니라 입주가 늦어지면서 대출 이자 비용도 늘어났는데 금리까지 오른 만큼 부담이 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분쟁이 잇달아 발생하면서 향후 정비 사업 수주에 차질도 예상된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조합에서는 도급 순위 10위권 내에 있는 건설사들이 기존 재건축 조합과 갈등을 일으킨 사례를 조사해보기 때문에 까다로운 단서를 걸 확률이 높다”며 “그러면 시공사들 입장에서도 기피 사업장으로 규정하고 쉽사리 진입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시공사가 참여를 기피할 경우 입찰 단계에서 계속 유찰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만큼 사업진행이 더딜 수밖에 없다.
최근의 상황은 결국 전체적인 신규 주택 공급 시기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앞서의 김인만 소장은 “작년, 재작년에 분양한 단지들 마무리하기도 벅찬 상황이기 때문에 건설회사들도 올해는 신규 사업을 거의 수주하려고 하지 않고 있다”며 “재건축 규제가 완화됐지만 추세대로 라면 3~4년 후에 신규 주택 공급률이 뚝 떨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분양가 상승 전망, 비인기 지역 미분양 우려
윤석열 정부 들어 물가와 원자재값 인상분을 분양가에 일부 반영할 수 있게 됐고 지난 1·3 대책으로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와 용산구를 제외한 전 지역을 분양가 상한제 적용지역에서 해제됐다. 여기에 재건축 공사비용이 꾸준히 늘면서 향후 분양가는 상승세를 그릴 것으로 전망된다.
주택 시장이 하락세라지만 입지가 좋은 수도권 인기 지역들은 분양가가 높아도 타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무순위 청약의 규제를 상당히 완화한 덕분이다. 무순위 청약은 계약 포기 등으로 잔여 물량이 생겼을 때 추첨을 통해 입주자를 뽑기 위해 받는 추가 청약으로, 정부는 2월 말 주택공급규칙을 개정해 무순위 청약에서의 거주지와 무주택자 요건을 모두 폐지했다.
덕분에 최근 전국구로 무순위 청약을 받은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올림픽파크 포레온) 아파트는 미계약된 899가구에 대해 46.2 대 1의 경쟁률을 기록하며 무순위 청약을 마감하기도 했다. 부동산R114 여경희 수석위원은 “서울을 비롯해 수도권에서도 과천이나 성남 등 입지가 좋은 인기지역들은 분양가가 올라 미달이 발생하더라도 무순위에서 안정적으로 마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부 비인기지역은 악성 미분양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는 관측이 나온다. 경기부동산포털에 따르면 올해 1월 31일 기준으로 경기도 화성, 평택, 양주, 안성 등은 각각 미분양 주택이 1000호가 넘는다. 증가세도 심상치 않다. 올해 1월 수도권의 미분양 아파트 수는 1만 1035호로 지난해 12월에 비해 6.4% 늘었다. 전국 미분양 아파트 수는 6만 8107호로 17.4% 증가했다. 미분양 주택수는 2012년 12월 이후 10년 만의 최대치로 정부가 자체적으로 설정한 ‘위험선’인 6만 2000호를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이와 관련, 앞서의 권일 리서치팀장은 “요즘 소비자 패턴을 보면 철저하게 가격을 따지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분양가가 오르면 서울로 통하는 교통망이 좋지 않은 곳들 중심으로 미분양 리스크가 커질 위험이 있다”고 짚었다. 서진형 공정주택포럼 공동대표(경인여대 교수)는 “향후 가격 상승 여력이 없으면 아무리 개발을 한다고 하더라도 수요는 안 오른다”며 “규제가 완화된다 하더라도 가격 상승 여력이 없는 곳들은 결국 재개발·재건축을 통한 활성화를 기대하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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