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외에선 종이에 베거나 캔음료를 따다가 다친 상처로 인해 급사한 사례가 보고되고 있다. 전영기 기자 yk000@ilyo.co.kr |
지난 5월 1일, 에이미 코플랜드(24)는 친구들과 함께 조지아주 탤러푸사 강에서 밧줄을 타고 계곡을 건너는 ‘짚라인’을 즐기다가 그만 밧줄이 끊어지는 사고를 당하고 말았다. 다행히 강으로 추락해 목숨은 건졌지만 왼쪽 종아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 급히 인근 병원으로 실려가 상처 부위를 22바늘 꿰매는 응급 처치를 받았다.
▲ 다리에 상처를 입었다가 세균에 감염돼 다리를 절단하게 된 에이미 코플랜드. |
코플랜드의 가족들이 의료진으로부터 들은 소식은 그야말로 청천벽력이었다. 코플랜드에게 이름부터 낯선 ‘괴사성근막염’이라는 진단이 내려진 것이다. 강물에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아에로모나스 하이드로필라’라는 세균이 원인이었다. 물속에 추락할 때 상처 부위로 이 세균이 침투해 감염 증상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왼쪽 다리가 짓무르고 썩는 괴저 현상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 괴사성근막염을 일으키는 아에로모나스 하이드로필라 세균을 크게 확대한 사진. 이외에도 포도상구균, 비브리오균 등도 상처 부위를 통해 근육 속으로 파고들어가면 괴저현상을 일으킨다고 한다. |
그렇다면 코플랜드가 앓고 있는 ‘괴사성근막염’은 얼마나 위험하며, 또 살을 괴사시키는 세균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제 강물에 들어가서 마음대로 노는 것은 정말 위험한 일이 된 걸까. 이에 대해 코플랜드의 의료진들은 “코플랜드의 경우는 극히 드문 경우로, 물속에 빠졌다고 모두 다 이 세균에 감염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이 세균은 목숨에 위협을 줄 만큼 위험한 것은 아니며, 감염될 확률도 극히 낮다는 것이다.
미 질병통제예방센터에 의하면 미국의 경우 매년 이 세균에 감염되는 환자는 9000~1만 1500명 정도며, 이 가운데 사망에 이르는 경우는 1000~1800명이라고 말했다.
일례로 코플랜드가 감염된 ‘아에로모나스 하이드로필라’는 개구리나 어패류 등의 병원균으로 강물에서 감염되는 세균이지만, 사람의 피부 표면을 뚫고 들어가진 않기 때문에 몸에 상처만 없다면 감염될 위험이 없다. 단, 코플랜드처럼 피부가 찢어져 상처가 발생한 경우에는 세균이 근육 속으로 파고들어가기 때문에 괴저 현상이 일어나 생명에 위협을 줄 수 있다.
이처럼 ‘괴사성근막염’은 피부와 근육 사이에 위치한 근육의 겉을 싸고 있는 막에 염증이 발생하는 증상으로, 한 번 발생하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는 것이 특징이다. ‘괴사성근막염’을 일으키는 세균으로는 아에로모나스 하이드로필라 외에도 여러 가지 종류가 있다. 식중독을 비롯해 피부의 화농성질환을 일으키는 것으로 알려진 포도상구균, A군 연쇄상구균, 해산물을 날로 먹었을 때 감염되는 비브리오균 등이 그 예며, 모두 상처 부위를 통해 근육 속으로 파고들어갈 경우에 한해서만 괴저 현상을 일으킨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러한 세균들은 흔히 말하듯 실제 살을 파먹는 것은 아니며, 세균에서 분비되는 독성물질로 인해 괴저 증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세균이 파고든 감염 부위는 혈류가 차단돼 혈액순환이 이루어지지 않아 항생제가 작용하지 않으며, 항생제가 듣지 않으므로 치료 또한 거의 불가능해진다.
전이 속도가 빨라 대부분 순식간에 목숨이 위험해지는 치명적인 상태에 이른다는 특징이 있다. 때문에 일단 감염이 되면 즉시 치료를 받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조기에 감염 사실을 발견할 경우 감염 부위만 제거하면 생명에 별다른 지장이 없다. 하지만 문제는 상처 부위가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보일 뿐만 아니라 별다른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에 그냥 방치해둔다는 데 있다. 코플랜드의 경우 역시 3일이 지나서야 감염 사실을 알았다는 점이 문제였다.
밴더빌트의과전문대학의 윌리엄 샤프너 박사는 “처음에는 감염 사실을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세균이 상처 부위의 깊은 층에 잠복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의학전문가들은 종이에 베거나 바늘이나 못에 찔리는 경미한 상처를 통해서도 세균이 침투할 수 있기 때문에 일단 상처가 나면 철저히 소독하고 상처 주위를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실제 영국에서는 지난 2008년 한 60세 남성이 종이에 살짝 팔을 베였다가 일주일 만에 의식을 잃고 쓰러져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당시 이 남성의 상처는 처음에는 1㎝도 채 되지 않았지만 사망 당시에는 5㎝ 정도로 커져 있었으며, 병원에 옮겨졌을 당시 열이 나고 구토 증상을 일으키면서 의식을 잃고 쓰러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2009년에는 69세의 노인이 깡통을 따다가 손가락을 벤 후 불과 일주일 만에 급사한 경우도 있었다. 상처 부위가 2~4㎜ 정도로 경미해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별다른 치료를 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급기야 며칠 후 노인은 열과 함께 극심한 통증을 호소하면서 병원으로 실려 갔고, 병원에 도착했을 당시 노인의 오른쪽 어깨부터 엉덩이까지의 피부는 시퍼런 멍이 든 것처럼 변색되어 있었다. 또한 감염된 피부 위에는 반점과 함께 물집도 발견되었다. 즉시 수술을 했지만 결국 이 노인은 증상을 호소한 지 3일 만에 사망하고 말았다.
이처럼 ‘괴사성근막염’의 증상은 독감 증상과 비슷하게 나타나는 것이 특징이다. 감염 부위가 심한 통증과 함께 붓고 벌겋게 되면서 온몸에 열이 나고 안색이 창백해진다. 또한 드물게는 붉은 발진이 넓게 나타나기도 하며, 피멍이 빠른 속도로 몸에 퍼지면서 오한 및 발열, 구토 증상이 동반되기도 한다. 장기부전이나 쇼크 증상도 흔하게 나타나는 증상이다.
하지만 이렇게 고통을 호소해도 현재로선 딱히 이렇다 할 치료법이 없는 것이 현실이다. 강한 항생제를 투여해 세균 번식을 최대한 막거나 감염 부위의 피부 조직을 제거하는 정도가 전부다. 보다 심각한 경우에는 감염 부위의 사지를 절단해야 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다. 피부 조직을 제거한 후에는 피부이식 등의 추가적 치료도 필요하다.
‘괴사성근막염’에 대한 예방법이라고 하면 ‘평소 청결 상태를 유지하는 것’ 외에는 딱히 이렇다 할 방법이 없다. ‘국립괴사성근막염협회’가 조언하는 예방법으로는 자주 손을 씻을 것, 기침을 할 때에는 손으로 가릴 것, 상처가 발생할 경우 즉시 치료를 할 것(상처 부위를 깨끗이 소독하고 항생연고를 바를 것), 아이들에게 위생교육을 철저히 시킬 것 등이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다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찔리거나 베이거나 살이 찢어진 경우에는 상처 부위의 변화를 예의 주시해야 한다. ‘SUNY 다운스테이트 메디컬센터’의 최고의료책임자인 마이클 루케시 박사는 “상처 부위의 피부가 붉고 열이 나거나 흐물흐물해지거나 또는 통증이 느껴질 경우에는 상태가 매우 심각한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런 경우에는 주저하지 말고 전문적인 치료를 받을 것을 권장했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