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등 면탈자만 108명, 브로커들 수익 추징보전…사회복무 출근 안한 래퍼 나플라는 병무비리 기소
이번 수사는 ‘병역면탈 사건’과 ‘병무비리 사건’으로 나뉘는데 병역면탈 사건의 경우 브로커 2명과 혐의를 적극 부인하는 면탈자 2명 등 4명이 구속 기소됐고, 면탈자 106명과 공범 20명 등 126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또한 병무비리 사건에선 래퍼 나플라(31·본명 최석배)와 공무원 2명을 구속 기소하고 하위직 공무원 3명과 연예기획사 대표 등 4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또한 합동수사팀은 브로커들의 범죄수익 16억 147만 원에 대한 추징보전 조치도 완료했다.
#면탈자 108명 중 전문직 종사자 14명
합동수사팀이 이번 병역면탈 사건에서 면탈자로 기소한 이들은 모두 108명이다. 이 가운데 프로(실업) 운동선수, 연예인, 의사, 의대생 등 전문직 종사자가 14명이며 부장판사 출신 변호사와 한의사의 자녀 등도 있다. 수사 과정에서 이름이 알려진 래퍼 라비(본명 김원식), 프로배구 선수 조재성, 프로축구 선수 김승준, 배우 송덕호(본명 김정현) 씨 등이 대표적이다.
합동수사팀은 면탈자들을 네 가지 기준으로 분류했다. 우선 ‘아직 역처분(판정)을 받지 않은 병역의무자가 최초 병역판정검사 절차에서 뇌전증 환자로 행세하여 병역을 면탈’한 경우가 5명, ‘병역처분을 받은 뒤 입영하기 직전 질병유무 등을 확인하기 위해 실시하는 입영판정검사 절차에서 뇌전증 환자로 행세하여 병역을 면탈’한 경우가 3명이다. 또한 ‘병역처분을 받은 다음 해부터 4년 동안 입영을 하지 않은 경우 실시하는 재병역판정검사 절차에서 뇌전증 환자로 행세하여 병역을 면탈’한 경우가 4명이다.
가장 많은 사례는 ‘현역 또는 보충역(사회복무요원) 병역처분을 받은 뒤 입영을 연기 중인 병역의무자가 병역처분변경 절차에서 뇌전증 환자로 행세하여 병역을 면탈’한 경우로 96명이나 된다.
합동수사팀 관계자는 “대부분 최초 현역(1~3급) 판정을 받았음에도 병역처분변경 절차를 통해 다시 전시근로역(5급, 군복무면제) 판정을 받기 위해 뇌전증을 가장하여 병역면탈을 시도한 사례”라며 “이미 사회복무요원(4급) 판정을 받았음에도 완전한 병역 회피를 위해 병역면탈을 시도한 사례도 있었다”고 밝혔다.
면탈자 108명 가운데 106명은 불구속 기소됐고 2명만 구속 기소됐다. 이에 대해 합동수사팀은 “혐의를 인정하고 반성하는 면탈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불구속 수사 및 기소를 진행했다”면서 “뇌전증을 위장하여 병역을 면탈하였음에도 수사 과정에서 범행 부인으로 일관한 면탈자 2명은 구속 기소했다”고 밝혔다.
#철저한 시나리오와 역할분담
합동수사팀은 이번에 적발된 병역면탈 사건의 범행 방법의 특징을 ‘뇌전증 사각지대를 악용한 철저한 시나리오와 역할분담’라고 밝혔다. 이를 위해 브로커들은 병역의무자 유형에 맞춰 의료기관과 병무청을 속일 수 있는 시나리오를 제공한 뒤 병역의무자 등과 병역판정 전후에 걸쳐 환자와 보호자 등 역할을 분담하여 철저히 범죄를 준비하고 실행했다.
예를 들어 장기간 전자기기를 사용하다 갑자기 발작이 발생한 것으로 꾸민 사례가 많았는데 이는 전자기기 사용 시 광자극이 뇌를 자극해 발작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의료계 전문지식에서 착안한 지능적인 범행 방법이다. 또한 시간적인 여유가 없는 면탈 의뢰인에게는 119 허위신고 후 구급차를 타고 대형병원 응급실로 직행하는 방식을 권유했다. 이렇게 하면 1, 2차 병원을 거치지 않고 바로 3차 대형 병원 의료서비스 이용이 가능해 병역 면탈에 소요되는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합동수사팀 관계자는 “119 및 응급실 이용은 공공재와 응급의료시스템을 사적으로 악용한 사례”라고 지적했다.
119 및 응급실 이용은 병역 면탈이 급한 상황에서 활용됐고 대부분의 경우 ‘장기간의 범행관리’가 특징적이었다. 뇌파검사 등에서 뇌전증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았음에도 4급(보충역)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신체검사일 기준 1년 이상, 5급(전시근로역) 판정을 받기 위해서는 2년 이상의 치료내역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브로커와 면탈자가 1~2년 동안 상담하며 1, 2차 병원부터 3차 대형병원에 이르기까지 진료기록을 관리했다. 또한 최종 약물검사에서 약물 양성 반응이 나오도록 검사 직전에는 실제로 약물을 복용하도록 점검하기도 했다.
#적극 가담 공범들도 함께 기소
이번 병역면탈 사건의 또 다른 특징은 공범의 존재다. 어머니 등 가족이나 친구 등 지인들이 공범으로 함께 기소된 것. 주된 역할은 허위로 꾸며낸 면탈자 뇌전증 증상의 목격자 역할이다. 면탈자가 발작을 일으켰다고 119에 신고한 뒤 함께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을 찾은 뒤 진료 과정에서 평소 경련과 발작 등 뇌전증 증상을 보였다고 얘기한 어머니들이 공범으로 불구속 기소됐다. 목격자 역할을 하진 않았지만 주도적으로 병역 브로커를 만나 돈을 건넨 뒤 시나리오를 받아 면탈자에게 전달한 어머니도 불구속 기소됐다.
합동수사팀 관계자는 “단순 방조를 넘어 병역면탈을 위해 브로커와 직접 계약 체결, 대가 지급, 허위 목격자 행세 등을 통해 사실상 범행을 주도하거나 적극 가담한 자는 병역법 위반 등의 공범(공모공동정범)으로 기소했다”며 “수사 과정에서 전 대형로펌 변호사, 한의사 등의 범행 적극 가담 사실까지 확인돼 공범으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이어 “공정한 병역이행의 정착을 위해서는 병역의무자 본인뿐만 아니라 주변인에 대해서도 엄정한 법집행이 필요했다”면서 “단, 입건과 기소 과정에서 사안의 경중과 사법절차에 임하는 태도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병역면탈 수사의 또 다른 특징은 기존 병역비리 사건과 달리 위계공무집행방해, 공전자기록 등 불실기재·행사 등을 추가 적용했다는 점이다. 이는 철저한 사안의 실체 규명과 범죄수익 환수를 위한 조치로 합동수사팀은 브로커들이 수수한 범죄수익 총 16억 147만 원 전액에 대한 추징보전 조치를 완료했다.
과거처럼 검찰 단독수사가 아닌 병무청과의 합동수사도 이번 수사의 특징 가운데 하나다. 서울남부지검은 수사 초기부터 병무청 특사경과 긴밀히 협력했다. 합동수사팀이 막 구성된 수사 초기에 신속하게 사건 관련자들의 병역면탈 계약 관련 서류, 노트북, 휴대폰 압수수색 및 포렌식, 계좌추적 등을 진행한 덕분에 대규모 병역면탈 혐의를 포착할 수 있었다. 애초 병역 브로커 구 아무개 씨로 시작된 수사는 또 다른 브로커 김 아무개 씨로 범위가 확대됐고 병무비리 사건 수사로도 이어졌다.
#141일 동안 무단결근 공문서 조작
병무비리 사건은 합동수사팀이 병역면탈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사회복무요원 복무관리 담당 공무원들이 조직적으로 특정 요원의 출근부를 조작하고, 이를 근거로 복무부적합 소집해제를 시도한 범행 단서 포착하면서 시작됐다. 그 시작점은 병역면탈 사건으로 최초 구속된 병역브로커 구 아무개 씨였다.
수사 대상 사회복무요원의 병적자료(정상 출근한 것으로 기록)와 포렌식을 통해 확인한 실제 출근 상황(미출근)이 불일치한다는 사실을 파악한 합동수사팀은 서초구청과 서울지방병무청 등 관공서를 신속히 압수수색해 조작된 출근부와 복무부적합 소집해제 신청 자료 등을 확보해 범행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공소사실은 대략 다음과 같다. 2021년 2월부터 2022년 11월까지 연예인 나플라가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악화되지도 않았고 서초구청에 출근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그럼에도 일부 공무원들이 나플라를 소집해제 시켜줄 목적으로 141일 동안 정상출근하며 잦은 지각, 조퇴, 병가 등 복무에 부적합한 것처럼 공문서인 일일복무상황부를 허위로 조작했다. 이를 기초로 복무부적합자 소집해제신청서 및 사실조사 결과보고서 등의 공문서를 허위로 작성해 소집해제 절차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나플라는 141일 동안 무단으로 복무이탈을 했다.
합동수사팀은 병무비리 사건의 범행 방법 특징을 ‘브로커를 통한 우울증 악화 가장과 현장 복무관리를 총괄하는 공무원들의 조직적 서류 조작’라고 밝혔다. 잦은 입영연기로 더 이상 사회복무요원 병역이행 연기가 불가능해진 나플라는 소속기획사 대표 A, 병역브로커 K와 복무부적합 또는 병역처분변경신청을 통한 병역면탈 범행을 계획한 뒤 약 2년 동안 우울증 등이 악화된 것처럼 병원 의사를 속여 약을 처방받았지만 투약은 전혀 하지 않았다. 그리고 허위의 병무용진단서를 발급받아 소집해제와 재신체검사를 수회 시도했다.
또한 서울지방병무청 복무지도관 B(7급)와 서초구청 복무담당 공무원 C(6급) 등은 사회복무요원이던 나플라가 신속하게 복무부적합 소집해제를 받을 수 있도록 복무 부적응 근태자료를 만들기 위해 141일 동안 허위로 출근한 것처럼 출근부를 조작하면서 잦은 지각·조퇴·병가 등으로 복무에 부적합한 것처럼 근무상황까지 조작한 뒤 소집해제 등의 절차를 진행해준 혐의를 받고 있다.
합동수사팀은 나플라와 고위직 공무원 B와 C 등 3명을 구속 기소했고 상급자 지시에 따라 소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하였으나 수사 개시 후 범행을 모두 자백하고 적극적으로 수사에 협조한 하위직 공무원 3명은 불구속 기소했다. 또한 나플라가 소속된 연예기획사 대표 A는 공범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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