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코레일이 물어주면 전기요금·교통비 인상 우려…강제동원 피해자 배상금까지 국내 기업이 지급할 수도
국내 기업 중에는 적자 상태인 한국철도공사(코레일), 한국전력공사(한전)도 포함됐다. 이번 배상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일본 기업을 대신해 배상금을 물어주면 관련 기업들의 재정상태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이는 결국 국민생활과 직결되는 전기요금, 교통비 등의 인상으로 이어져 일본의 책임을 우리 국민들에게 지우는 셈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대법원은 2018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일본 기업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 대해 1인당 1억 원씩 배상하라고 최종 판결했다. 외교부는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받은 국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행정안전부 산하 일제강제동원피해자지원재단(재단)이 판결금을 대신 변제하는 방안을 지난 6일 발표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민간의 자발적 기여 등을 통해 재원을 마련하고, 향후 재단의 목적사업과 관련한 가용 재원을 더욱 확충해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재원 마련은 포스코, 한전, 코레일 등 16개 국내 청구권자금 수혜 기업의 자발적 기부를 통해 우선적으로 추진될 것으로 알려졌다. 1965년 한일청구권 협정 당시 일본이 우리 정부에 5억 달러의 경제협력자금을 줬는데 당시 수혜 기업이 기부금을 내야 한다는 취지다. 일본 전범기업을 대신해 국내 기업들이 피해자들에게 배상을 하는 방식이라 피해자들과 시민단체 등의 반발이 거세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피고 기업인 일본제철과 미쓰비시중공업이 배상을 해야 하지만 일본은 한일청구권협정으로 강제동원 배상 책임이 끝났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유족 4명만 정부 배상안에 동의했으며 대법원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생존 피해자 3명은 ‘제3자 변제’를 반대한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제3자 변제는 피해당사자가 허용하지 않을 때 변제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대법원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는 15명이다. 이들에게 지급해야 할 판결금은 지연이자를 포함해 약 40억 원 규모인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포스코가 40억 원을 재단에 자발적으로 기여하면서 앞으로 있을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배상에 대해서도 국내 기업들이 출연해야 할 가능성이 커졌다. 포스코는 2012년 3월 포스코이사회 의결을 통해 재단에 100억 원을 출연하기로 했고, 앞서 60억 원을 출연한 바 있다. 포스코 측은 “과거 재단에 100억 원을 출연하겠다는 약정서에 근거해 남은 40억 원을 정부의 발표 취지에 맞게 자발적으로 출연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문제는 이번 배상을 시작으로 계속해서 국내 기업들이 강제동원 피해자들의 배상금을 마련해야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재단은 현재 계류 중인 강제징용 관련 여타 소송이 원고 승소로 확정될 경우, 동 판결금 및 지연이자 역시 원고분들께 지급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현재 대법원에 계류된 강제동원 관련 손해배상 청구소송은 총 9건이며 2심은 4건, 1심은 53건이 진행 중이다. 현재까지 정부가 공식 인정한 강제동원 피해자는 21만 8639명이며, 1000명이 넘는 피해자들이 소송에 참여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현재 계류 중인 강제동원 손해배상 소송의 판결금이 총 150억 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2018년 판결을 대법원이 바꾸지 않는 이상 남아 있는 소송에서 피해자들의 승소 가능성이 높다. 이번에 포스코가 출연한 자금으로 대법원 배상 확정판결을 받은 피해자 15명에게 배상을 한다 하더라도 계류 중인 소송에서 일본 기업이 배상하라는 판결이 나왔을 때 이번처럼 국내 기업들이 물어줘야 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는 것이다. 또 소송을 청구하지는 않았지만 강제동원 피해 사실을 인정받은 피해자들에 대해서도 계속 배상이 이뤄져야 하는데, 이 또한 일본에서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면 국내 기업이 부담해야 할 가능성이 있다.
이 기업들에는 코레일, 한전 같은 적자 상태가 지속되는 기업들도 포함된다. 코레일과 한전의 재정 상태는 교통비, 전기요금에 영향을 준다. 이 기업들이 일본을 대신해 강제동원 피해자들에게 지속적으로 배상을 해야 한다면 재정난은 더 심각해질 것이고, 이는 결국 비용 인상으로 이어져 국민들이 배상금을 내는 격이 된다. 김순환 서민민생대책위원회 사무총장은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공기업을 포함해 국내 기업에 배상금을 부담하게 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이는 국민들에게 세금을 가중시키는 일”이라고 말했다.
안진걸 민생경제연구소장은 “수혜기업에 포함되는 KT, 한전, 코레일은 통신비, 전기요금, 교통비로 국민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기업들”이라며 “이 기업들이 적자가 되거나 재무 상태가 더 안 좋아지면 당연히 요금을 올리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 소장은 “일본에 유리한 배상안을 마련한 정부 때문에 우리나라 기업들도 망가지고, 국민들의 생활비 부담으로 이어진다”며 “지금도 적자라고 전기요금 올리겠다고 하는데 여기서 재정 상태가 더 악화되면 결국 국민들 혈세를 뽑아서 일본 가해자들을 도와주는 꼴이 된다”고 지적했다.
정부는 한전의 엄청난 적자 개선을 위해 전기요금을 몇 차례 인상했다. 코레일도 만년 적자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는 하반기에 서울 지하철과 버스요금 인상을 추진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국언 일제강제동원시민모임 이사장은 “국내 기업들이 국민들에게 설명할 수 있는 일에 참여를 해야 하는데 일제 전범기업의 빚을 탕감하는 일에 나서라고 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일본을 돕는 역할을 하라고 하는 것”이라며 “순수하게 강제동원 피해자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기여를 한다면 의미가 있겠지만 이건 일본 기업을 대신해 내는 느낌이라 돈의 규모를 떠나 기업 입장에서는 곤혹스러울 듯하다”라고 말했다. 철도업계 한 관계자는 “당연히 강제 노동 가해자인 일본 전범기업들이 배상을 해야 맞는데 그걸 우리 기업에 배상하게 하는 것은 잘못됐다”며 “특히 공공요금과 국가재정지원으로 운영되는 공기업이 배상해준다는 것은 곧 국민이 배상해준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외교부 한 관계자는 “정부 해법을 발표했을 당시 심규선 재단 이사장이 앞으로 피해자들과 유족들을 한 분 한 분 찾아뵙고 정부 해법을 소상히 설명드리고, 기업들의 자발적인 기여를 받아서 확정 판결을 받으신 피해자나 유가족들의 의사에 따라 변제금과 소송 비용을 지급하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앞으로 있을 배상에 대해서는 재단이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배상안 관련 사안을 잘 아는 당국 관계자는 “자발적 기여의 대상은 16개의 기업에만 국한한 것이 아니라 개인이나 단체 등도 포함된다”며 “기업에 의무적으로 내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어 “포스코가 출연한 40억 원은 1차적으로 대법원 배상 확정 판결 받은 피해자들을 위해서 많이 활용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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