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체 불분명 외국계 홈페이지 통해 홍보도…“둘 다 투약하면 가중 사유로 형량 높아져”
국내 마약 사범 수는 증가 추세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검거된 마약사범은 총 1만 8395명으로 전년(1만 6153명)보다 2242명 늘었다. 적발되지 않은 마약 복용자 수는 수십만 명을 넘어설 것이란 얘기도 있다.
마약 투약 계층도 다양해졌다. 과거 고소득 계층‧해외 유학파 등을 중심으로 퍼졌던 마약이 최근 몇 년 사이 중‧고등학생, 연구원, 가정주부 등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관계자는 “마약은 한 유통경로가 뚫리면 연령‧계층 상관없이 확산세가 심각해진다”며 “SNS의 발전으로 손쉽게 마약을 구매할 수 있게 되면서 마약 유통 환경에 쉽게 노출되다보니 10대, 20대, 가정주부, 교수, 회사원 등 수많은 일반인이 마약 복용자가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요신문i' 취재를 종합하면 피트니스업계에서도 마약 투약 사례가 발생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투약 경로는 다양했다. △스테로이드 구매 과정에서 판매업자를 통해 마약을 함께 구매한 뒤 투약 △스테로이드 구매와 별개로 마약 유통책을 통해 구입‧투약 △피트니스업계 종사자에게 마약을 권유받아 투약 등이다. 특히 피트니스업계 일부에서 벌어지는 스테로이드 불법 유통이 마약 유통으로 번지기 쉽다.
실제 국내의 한 텔레그램 채팅방에선 피트니스업계 종사자를 대상으로 해 다양한 스테로이드가 유통되고 있었다. 해당 채팅방에 접속하기 위해선 QR코드를 통해 본인이 피트니스업계 종사자라는 사실을 텔레그램 운영자에게 확인받아야 한다. 이후 채팅방에 접속하면 파마콤, 제이텍바이오젠 등 국가 허가를 받지 않은 업체들의 스테로이드 주사제와 판매가가 공유된다. 현행 약사법에 따르면 스테로이드 주사제 등 총리령으로 정한 일부 전문의약품은 약사가 아닌 자에게 취득해서는 안 된다. 의약품 구매대행 사업자뿐 아니라 구매자까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당 채팅방에 피트니스업계 종사자들이 접속해 스테로이드를 구매하고 있다.
이 중 일부 피트니스업계 종사자가 마약 투약·유통까지 하는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마약왕’이라고 불린 박왕열이 국내에 공급한 마약의 유통‧판매 총책이었던 ‘바티칸킹덤’ 이 아무개 씨도 스테로이드 불법 구매 과정에서 마약을 접하며 마약 유통책으로 나아간 것으로 전해진다. 이 씨와 과거 연인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진 모델 A 씨에 따르면 피트니스에 관심이 높았던 이 씨는 스테로이드 불법 구매 과정에서 마약을 접한 뒤 박왕열의 국내 마약 유통‧판매 총책으로 활동했다.
실체가 불분명한 외국계 홈페이지를 통해 마약 유통책으로 추정되는 이들은 ‘아나볼릭 스테로이드 구매, 아이스 구매, 떨 구매’ ‘환각제 액상떨 스테로이드 구매’ 등의 문구와 자신들의 텔레그램 아이디를 적어 놓고 스테로이드와 마약 판매를 홍보한다. 아이스는 필로폰을, 떨은 대마를 의미한다. 국내 유명 피트니스대회 수상자 출신 B 씨는 “피트니스대회를 목표로 한 선수들은 몸 관리가 중요해서 마약 투약을 하지 않는다”면서도 “피트니스대회 출전 생각이 없는 종사자들이 스테로이드 구매 과정에서 (마약을) 권유 받아 조금씩 (투약을) 한다”고 털어놨다.
최근 경찰과 검찰의 마약 단속이 강화되면서 스테로이드와 마약 구매를 별도로 진행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국내의 한 격투기 선수 C 씨는 “강남 내 유명 피트니스 선수 몇 분을 아는데 직접 마약 투약 사실을 고백했다”며 “구매 과정이 궁금해 ‘스테로이드랑 같이 사는 거냐’고 물었더니 현재는 (스테로이드와 마약) 각각의 유통책을 통해 구매한다”고 귀띔했다.
일부 피트니스업계 종사자가 합석한 술자리에서 마약이라고 설명하지 않은 채 마약을 권유하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피트니스업계 한 종사자는 기자와 만나 “타 피트니스 종사자 등이 함께 한 술자리에서 ‘기분 좋은 것 줄게. 혀 밑에 놔둬’라고 해서 말해준 대로 했다가 처음 느끼는 기분과 황홀한 감정이 든 적이 있다”며 “알고 보니 LSD였다”고 증언했다. LSD는 혀에 붙이는 종이 형태의 마약류 환각제로 코카인의 100배, 필로폰의 300배에 달하는 환각 효과가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선 일부 피트니스 종사자들의 마약 투약 및 구매, 권유 행위에 대해 형량이 높아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법무법인 호암의 신민영 변호사는 “단순 투약이면 초범인 경우 보통 집행유예지만 더 나아가 판매나 수수행위까지 하면 형량이 높아지고, 적어도 실형 3년 이상 선고된다”며 “스테로이드 구매 자체는 과태료 100만 원 이하”라면서도 “둘 다(스테로이드와 마약) 투약한다면 형량을 정할 때 가중사유가 된다”고 덧붙였다.
마약 재활 분야 전문가들은 물질에 의지하려는 내면을 개선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또 타인이 주는 물질에 대해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관계자는 “마약 유통책은 자신들의 시장을 넓히기 위해 마약을 권유할 때 ‘마약’ ‘불법’이라는 말을 하지 않은 채 ‘좋은 게 있는데 무료로 줄게’라는 식으로 접근한다”며 “술에 취해 있는 등 사고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상황에선 의심 없이 마약을 접하기 쉽다”고 지적했다. 이 관계자는 “마약은 강력한 물질이여서 두 번 이상 투약하면 벗어나기 어렵다”며 “피트니스업계 종사자들이 운동으로 건강한 모습을 보여주려는 만큼 마약이나 스테로이드에 의지하지 말고 스스로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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