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직장인이라면 이런 생각은 한 번쯤 해봤을 터. 요즘 2030 직장인들 사이에서 불고 있는 ‘조용한 사직(Quiet Quitting)’ 열풍 역시 같은 맥락이다. 이는 단어 그대로 보면 ‘조용히 그만둔다’는 의미지만 실제 회사를 그만두는 건 아니다. 퇴사는 하지 않되 정해진 근무 시간 동안 조용히 맡은 일만 하면서 그 이상의 업무에는 관심을 갖지 않겠다는 뜻이다. 일과 삶 사이의 균형을 추구하는 ‘워라밸’에서 더 나아가 ‘조용한 사직’이 유행하고 있는 배경을 독일 시사주간지 ‘포쿠스’가 보도했다. 과연 이런 태도는 게으름일까, 반란일까, 아니면 노동시장의 의미 있는 변화일까.

이는 허슬 문화(개인 생활보다 회사 업무를 중시하면서 열정적으로 임하는 문화)에 대한 회의감이었다. 그는 더 이상 일을 위해 자신을 극단적으로 희생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그는 적어도 서로가 서로를 배려하고, 직원들을 사람처럼 대해주는 업무 환경을 찾아 퇴사를 선택했다.
토마스 B처럼 이런 고민에 빠져 회사를 그만두거나, 혹은 그만두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많다. ‘워라밸’에 이어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풍조인 ‘조용한 사직’을 택한 사람들도 여기에 해당한다. 이에 대해 ‘포쿠스’는 “기존의 노동 구조에 대한 반란은 1950년대 이후 거의 모든 세대가 겪었던 성장통”이라고 지적했다. 이제 2030인 밀레니얼 세대와 Z세대가 그 뒤를 잇고 있을 뿐이다. 조사에 따르면, 주로 1990년대나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사무직 근로자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그렇다면 ‘조용한 사직’은 언제, 어떻게 유행하기 시작했을까. 실제 이 단어가 처음 등장한 건 10년도 더 됐다. 하지만 젊은 세대 사이에서 유행하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였다. 20대의 IT업계 종사자인 자이드 칸(@Zaidleppelin)이 틱톡에 올린 쇼츠 영상이 시작이었다. 이 영상에서 뉴요커인 칸은 대도시의 풍경을 보여주면서 “나는 승진에 대한 욕망, 그리고 야근과 작별한다” “회사가 여러분의 인생은 아니다” “당신의 가치는 당신의 생산성으로 정의되지 않는다” 등의 자막을 보여주면서 과거 회사에 몰두했던 자신의 모습과 작별을 고했다. 그러면서 대신 ‘조용한 사직’을 택했다고 말했다. 칸의 영상은 2022년 7월 공개된 이후 조회수가 50만 회를 넘어섰고, 이에 대한 찬반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조용한 사직’은 전체 노동시장을 변화시킬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을까. 아니면 그저 더 이상 업무에 관심이 없는 게으른 세대의 출현일까.
‘링크드인’에서 근무하다 작가가 되기 위해서 퇴사한 사라 베버(35)는 ‘조용한 사직’이라는 말에 오해의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포쿠스’에 “‘조용한 사직’은 직무에 대한 헌신과 관련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서 직장을 그만두겠다는 뜻이 아니라 단지 회사를 위해 더 이상 자신을 혹사하고 싶지 않다는 의미다. ‘조용한 사직’을 택한 사람들은 야근도, 주말 근무도 반대한다. 베버는 “일은 당신의 삶이 아니며, 인간으로서 당신의 가치를 정의하지 않는다. 이것이 ‘조용한 사직’의 핵심 메시지다”라고 강조했다.

그 결과 노동시장에는 대대적인 변화가 초래됐다. 한꺼번에 35세 이하의 노동자들이 퇴사하면서 숙련 노동자들의 심각한 부족이 초래되고 말았다. 그렇게 노동시장에서 빠져나간 사람들은 이제 생계형 자영업자가 됐다.
이런 현상은 비단 미국이나 유럽에서만 나타나고 있는 건 아니다. 중국에서 ‘탕핑족(lying flat)’들이 늘고 있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탕핑’은 중국어로 ‘평평하다’는 뜻으로, ‘탕핑족’은 바닥에 누워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삶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이들은 특히 아무리 열심히 일하고 노력해도 그만큼 보상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 결혼, 취업, 내 집 마련 등을 포기한 무기력에 빠진 청년들을 일컫는다.
실제 중국 노동자의 임금 상승률이 중국 대도시의 임대료와 부동산 가격의 상승세를 따라잡을 수 없게 된 지는 이미 오래다. 이에 ‘탕핑족’들은 능력주의를 배척하면서 주어진 업무만 처리하는 식으로 일종의 침묵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들은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면 왜 그렇게 노력해야 하는가”라고 묻는다.
독일에서도 이런 직장 트렌드는 점점 가속화하고 있다. ‘포쿠스’는 “이전 세대가 갖고 있던 고전적인 동기 부여, 즉 내 집 마련의 꿈을 갖고 있는 청년들은 이제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집값은 터무니없이 비싸졌는데 급여는 이를 쫓아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주식으로도 더 이상 큰 돈을 벌 수 없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밀레니얼 세대가 2000년대 말 터진 금융위기에 여전히 환멸을 느끼고 있다면 Z세대는 코로나19 팬데믹의 여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더 이상 안전한 것이 없다는 불안감과 싸우고 있다.

그리고 지금 그들은 자신들의 자녀인 밀레니얼 세대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네가 좋아하고, 너에게 딱 맞는 직업을 찾아라”. 하지만 말이 쉽지 훨씬 더 복잡해진 지금 세상에서 그런 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셀프메이드 에너지’의 대표이사인 팀 로젠가르트(37)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대학에서 경제학을 전공한 그는 한때 베를린의 스타트업 회사에 근무하는 직장인이었다. 업무 성과를 올리는 데만 전념했던 그는 기꺼이 주 100시간 넘게 일하면서 회사에 열정을 바쳤다. 엄청난 승진도 기대했지만 결국 그의 이런 열정은 회사에 대한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새로 부임한 사장은 거의 출근도 하지 않았고, 회사에서 그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을 찾지 못했다. 결국 ‘조용한 사직자’가 되기로 결심한 그는 그렇게 맡은 일만 하는 소극적인 자세로 변했고, 결국은 퇴사했다. 이에 그는 “밀레니얼 세대는 더 적게 일하고 싶은 게 아니라, 다르게 일하고 싶을 뿐이다”라고 주장했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생활을 구분하지 않고, 개인 생활과 직장 생활을 구분하지 않는 첫 번째 세대인 Z세대에게는 더욱 그렇다. 이들에게 직장은 더 이상 단순히 열정만 쏟아붓는 곳이 아니다. 요컨대 과거에는 사람들이 그저 직장을 구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했다면 오늘날 Z세대는 직장에서 새로운 자의식을 찾고자 하며, 불만이 있을 때는 당당하게 그것을 드러내고 요구한다. 또한 업무의 유연성과 이동성을 원하며 스스로 회사가 자랑스럽게 느껴지길 원한다. 다시 말해 양심에 거리낌 없이 당당하게 인스타그램과 틱톡에 ‘난 내 일을 사랑해(#lovemyjob)’라는 해시태그를 달 수 있기를 원한다.
이런 태도가 가능해진 이유는 역사적으로 드물게 구직자가 유리한 협상 위치에 놓여 있는 현재 노동시장의 구조 때문이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전례 없는 노동력 부족으로 필사적으로 숙련된 인력을 찾고 있다. 노동시장연구소(IAB)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분기 독일 노동시장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190만 개의 공석이 발생했다. 더욱이 베이비붐 세대가 머지않아 은퇴할 예정이기 때문에 앞으로 이 추세는 지속될 전망이다. 즉, 2035년까지 300만 개 이상의 공석이 추가로 발생할 수 있다는 의미다.

다만 하운쉴트 교수는 숙련된 노동력의 부족으로 노동자들이 유리한 협상 위치에 섰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비판적이다. 이로 인해 고임금 근로자와 저임금 근로자 간의 격차가 더 벌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예를 들어 요식업과 같은 저임금 업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그저 마음 편하게 ‘조용한 사직’을 할 수 없다.
‘조용한 사직’이라는 변화의 물결은 어쩌면 고용주들에게도 기회일 수 있다. 인사컨설팅업체인 ‘탤런트 트리’의 설립자인 율리안 폰 블뤼허(41)는 “직원들의 요구 사항이 더 많아진 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일단 직원들의 기대에 부응해주면 아마도 회사의 목표에 더 잘 부합하는 직원들을 얻게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다만 전제조건이 있다. 고용주는 기꺼이 투명하게 직원들과 의사소통을 해야 하고, 직원들을 신뢰해야 하며, 직원들의 요구에 가능한 한 유연하게 대응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토마스 B는 기존의 금융업계로 돌아갈 생각이 없다. 2017년부터 NGO에서 일하고 있는 그는 역시 IT 부서에서 일하긴 하지만 금융업계와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며 만족해하고 있다. 자신에게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무엇보다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근무 환경이라는 점 때문이다. 비록 돈은 적게 벌지만 업무 스트레스가 줄었다고 말하는 그는 “나에게는 이 점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