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비원들 “관리소장, 부적절 업무 지시했다” 주장
박 씨는 손으로 직접 쓴 호소문을 통해 “나를 죽음으로 끌고 가는 (관리)소장은 정신적·육체적 고통을 책임져야 한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이어 경비대장에 대한 업무배제, 세차 업무, 지하실 작업복 환복 금지 등 동료들에 대한 관리소장의 처우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동료 경비원들도 관리소장이 부적절하게 업무를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동료 경비원 A 씨는 “관리소장이 2022년 12월 9일부터 새로 부임한 이후 경비원들에게 담당 업무가 아닌 것을 시켰다”며 “추운 날씨였던 당시 아침 8시부터 11시까지 야외에서 무전기를 들면서 주차 관리를 했고, 낙엽이 담긴 쓰레기봉투를 차에 싣는 일도 했다”고 말했다. 다른 동료 경비원 B 씨는 “인수인계할 사항은 ‘근무 간 특별한 상황이 있었는지’를 전달하는 것 정도밖에 없는데, 몇 분이면 끝날 일을 20분가량 비효율적으로 대기한다”며 “후임 근무자는 오전 6시 10분까지 출근, 전임 근무자는 6시 30분에 퇴근하는 것을 지켜야 한다”고 밝혔다.
#10여 명 이직…해고된 청소노동자는 심정지로 사망
박 씨의 호소문에는 “남자 미화원 죽음으로 발생한 책임을 져야 한다”, “솔선수범하는 반장을 강제로 직위 해제한 소장, 정신적·육체적 고통 책임져라” 등의 주장도 담겨 있다. 동료 경비원들도 호소문을 통해 “박 씨가 입대의회장(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의 비호 아래 관리소장의 부당한 인사 조처 및 인격적 모멸감을 견디지 못하고 우리 아파트에서 숨졌다”며 “수일 전에는 관리소장이 해고 조치한 청소원 김 아무개 씨가 이를 비관하여 해고 다음 날 사망했고, 지난 2월에는 10여 명의 경비원이 칼춤에 견디지 못하고 사표 후 이직했다”고 주장했다.
박 씨는 일반 경비원으로 2년, 경비반장으로 8년 근무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월까지 경비반장이었던 박 씨는 한 경비원이 화재경보기를 잘못 작동한 것에 책임이 있다는 이유로 일반 경비원으로 전환돼 아파트 초소로 투입됐다. 3월 9일에는 해당 아파트에서 근무하던 70대 청소 노동자 김 씨가 해고 통보를 받은 뒤 다음 날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인근 아파트로 이직한 경비원 C 씨는 “2022년 12월 31일 관리사무소가 경비원 4명을 고용승계 하지 않았는데, 그중에 내가 포함됐다”며 “민원을 받거나 경위서를 쓴 적이 없는데 재계약을 못 한 것이 억울했다”고 전했다.
#반말·욕설·복명복창 지시 주장도 나와
해당 아파트 소속 전·현직 경비원 상당수가 관리소장이 박 씨에게 반말하거나 욕설을 하는 등 인격적으로 모독을 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관리소장이 복명복창을 지시했다는 증언도 나오기도 했다. 경비원 A 씨는 “군대도 아닌데 박 씨에게 ‘지시하면 복명복창해야지’라는 식으로 이야기했다”며 “경비원 중 한 명이 앰프를 잘못 조작했다는 빌미로 박 씨가 모욕적인 발언을 들으면서 일반 경비원으로 강등됐는데, 모멸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직한 경비원 C 씨도 “청소가 잘 안 되어 있다거나 만료가 된 게시판 공고를 정리하지 않았다면 관리소장이 트집을 잡았다”며 “경비반장으로 일했던 박 씨에게 반말하고 욕설하는 등 인격적으로 모독했다”고 주장했다.
#“관리소장 바뀌고 민원 줄어” vs “처우 안 좋았다”
관리소장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의혹에 대해 전면 부인했으며 경비원들에게 반말이나 욕설을 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게다가 박 씨가 자필로 쓴 것으로 알려진 호소문을 다른 사람이 대필했다는 주장까지 했다. 빠른 시간 안에 현수막과 동료 경비원들 호소문이 게시된 상황 등도 의심스럽다는 입장이다.
박 씨가 경비반장에서 일반 경비원으로 전환된 것에 대해서 관리소장은 “최근 박 씨가 경비반장 일을 힘들어했고, 오히려 초소 근무를 원했다”고 해명했다. 관리부장도 “박 씨가 지난 2월 말 나에게 경비반장 직을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를 밝혀서 관리소장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반응은 제각각이다. 입주자대표회의 관계자는 “현 관리소장이 오기 전에는 출퇴근 확인이 제대로 안 되었고 노동자들의 근무 태도가 안 좋았다. 그러나 관리소장이 바뀐 이후 근무 체계가 잘 잡혔고 청소 상태가 좋아지는 등 민원이 줄었다”고 밝혔다. 이어 “경비원의 죽음은 입대의회장, 관리소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현수막에 걸린 내용은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한편 해당 아파트의 한 입주민은 “3년 전까지만 해도 경비원이 오랫동안 근무해 인사를 했는데, 그 이후에는 수시로 바뀌어서 인사하기가 서먹해졌다”며 “얼마나 일하기가 힘들었으면 금방 그만두고, 심지어 사람이 죽는 일이 생기겠나. 숨 쉴 틈을 줘야 하는데, 처우가 안 좋았던 것 같다”며 안타까움을 전했다.
서울 수서경찰서는 박 씨의 사망 원인을 명확히 밝히는 것과 더불어 해당 아파트에서 갑질 여부가 있었는지 등을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사건을 전반적으로 살펴보고 전수 조사해 엄정히 수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남구청 주택과는 사건이 일어난 당일 현장 조사를 했고, 고용노동부 강남지청도 관련 업체들에 대한 사업장 근로감독을 진행한다.
※ 우울감 등 말하기 어려운 고민이 있거나 주변에 이런 어려움을 겪는 가족ㆍ지인이 있을 경우 자살예방 상담전화 ☎1393, 정신건강 상담전화 ☎1577-0199, 희망의 전화 ☎129, 생명의 전화 ☎1588-9191, 청소년 전화 ☎1388, 청소년 모바일 상담 '다 들어줄 개' 어플, 카카오톡 등에서 24시간 전문가의 상담을 받을 수 있습니다.
노영현 기자 nog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