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획된 투자 규모만 수조원, 보유 현금 넉넉한 수준 아냐…여의치 않은 경쟁 상황 속 중국 업체 성장도 부담
LG엔솔은 지난해 1월 기업공개를 통해 약 10조 2000억 원의 투자금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코스피 시장에서 공모 금액이 10조 원을 돌파한 것은 LG엔솔이 처음이다. LG엔솔은 당시 해당 자금으로 글로벌 생산기지 능력을 확대하고, 차세대 전지 연구개발(R&D) 및 신규 사업 투자 등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사업보고서에 따르면 LG엔솔은 지난해 중 신·증설 및 품질 강화에 총 6조 3000억 원을 투자했다. 국내 투자보다 해외 투자에 더 적극적이다. LG엔솔의 국내 비유동자산(유형자산, 무형자산, 투자부동산을 모두 합친 것)은 2020년 말 2조 592억 원에서 지난해 말 2조 4663억 원으로 19.77% 늘었다. 반면 LG엔솔의 해외 비유동자산은 같은 기간 7조 2053억 원에서 9조 2641억 원으로 28.57% 증가했다.
LG엔솔의 해외 투자는 어느 정도 결실을 거뒀다는 평가다. LG엔솔의 매출은 2021년 17조 8519억 원에서 25조 5986억 원으로 43.4% 증가했다. 그런데 LG엔솔의 국내 시장 매출은 같은 기간 2조 2353억 원에서 1조 3499억 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LG엔솔의 해외 시장 매출 증가분이 국내 시장 매출 감소분을 상쇄한 셈이다.
LG엔솔은 앞으로도 해외 투자에 적극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계획된 LG엔솔의 투자만 수조 원에 달한다. LG엔솔은 지난해 3월 이탈리아 스텔란티스와 캐나다에 배터리 합작공장을 설립하는 데 4조 8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발표한 바 있다. 지난해 8월에는 일본 혼다와 합작법인을 설립한 후 5조 1000억 원을 투자해 미국에 배터리 공장을 설립하겠다고 밝혔다. 권영수 LG엔솔 부회장은 “올해도 강한 실행력을 바탕으로 근본적 제품 경쟁력 우위와 차별화된 글로벌 생산 역량을 더욱 강화해 세계 최고의 고객가치를 제공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LG엔솔의 적극적인 투자로 인해 보유 현금은 빠르게 줄어들었다. LG엔솔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지난해 말 별도 기준 4조 8282억 원이다. 기업공개로 확보한 자금의 절반 이상이 사라진 셈이다. 특히 해외 합작법인 등에서 발생하는 이익이 곧바로 본사의 수익성 개선으로 이어지지 않고 있다. LG엔솔의 지난해 연결 기준 매출은 25조 5986억 원이지만 별도 기준으로는 10조 5818억 원으로 크게 줄어든다. 특히 LG엔솔은 연결 기준으로 1조 2137억 원의 영업이익을 거뒀지만 별도 기준으로는 6765억 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좋은 실적을 거두고 있는 LG엔솔 해외법인의 배당을 확대하면 LG엔솔 본사 수익 확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지난해의 경우 LG엔솔의 배당금 수익은 372억 원으로 전체 매출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해외법인이 무작정 배당을 확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아직 사업 초기인 만큼 추가 투자가 필요하고, 배터리업계의 전망도 긍정적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LG엔솔 해외법인이 본사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것은 아니고, 현지 금융기관에서도 적지 않은 금액을 차입하고 있다. LG엔솔의 자회사 부채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10조 원이 넘는다. 해외법인에 문제가 발생해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하면 LG엔솔 본사의 지원이 불가피하다. LG엔솔이 향후에도 공격적인 투자를 예고한 만큼 현재 보유 현금이 넉넉한 수준이라고 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LG엔솔이 현재와 같이 향후 배터리 시장에서 선전한다면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 하지만 경쟁 상황이 여의치가 않다. 2차전지 기업들의 기술 경쟁이 격화되고 있고, 완성차 업체들도 배터리 내재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박종일 NICE신용평가 선임연구원은 2차전지 업계에 대해 “자동차 밸류체인 구조상 수익성 제고가 제한적이며 고성장 산업의 특성상 운전자금 부담이 높고, 대규모 수주잔고 대응을 위해 과중한 자본적 지출(CAPEX)이 요구된다”며 “글로벌 밸류체인 확대 요구에 따라 투자비가 증가하고 비용구조 악화나 경쟁심화 등으로 인해 투자비 회수가 지연될 위험성도 부담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LG엔솔의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월 10.1%에서 올해 1월 13.0%로 2.9%포인트(p) 올랐다. 이는 중국 CATL과 중국 BYD에 이은 3위에 해당한다. 그러나 2위 업체인 BYD의 점유율은 11.6%에서 17.6%로 증가해 LG엔솔과의 격차를 벌리고 있다. 중국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산 배터리를 선호하다보니 LG엔솔 입장에서는 불리할 수밖에 없다.
LG엔솔의 중국 외 시장 전망도 낙관적이지 않다. LG엔솔의 중국산 자동차를 제외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1월 24.2%, 올해 1월 24.4%로 1위를 수성하고 있다. 그러나 CATL의 점유율이 지난해 1월 21.3%에서 올해 1월 24.1%로 상승하면서 LG엔솔을 바짝 추격하고 있다. 글로벌 배터리업계는 이른바 ‘치킨 게임’에 돌입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LG엔솔이 경쟁사들에게 밀리지 않기 위해서라도 투자 규모를 축소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물론 LG엔솔에 부정적인 전망만 있는 것은 아니다. LG엔솔의 주요 고객사인 GM과 테슬라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덕에 미국 시장에서 선전하고 있다. IRA의 주요 내용은 북미에서 최종 조립된 전기차에만 보조금을 지급한다는 것이다. GM 전기차 배터리는 LG엔솔과 GM의 합작법인 엄티움셀즈에서 생산한다. GM의 자동차 생산량이 늘어나면 엄티움셀즈의 수익도 증가하고, 배당 확대도 기대할 수 있다.
김철중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GM은 IRA 보조금 효과로 신차 출시 이전임에도 미국 시장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고, 테슬라는 1월 중 진행됐던 가격 할인 효과가 수요에 연결되며 점유율이 확대 중”이라며 “원재료 가격 하락에 따른 판가 하락을 상쇄하는 성장이 지속될 전망”이라고 예상했다. 이와 관련, LG엔솔 관계자는 “현재로서는 공식적으로 밝힐 입장이 없다”고 말했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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