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동원 해법·한일회담 결과 “굴욕·조공·탄핵” 십자포화…신평 변호사 등 ‘우군’들마저 쓴소리
#MB 광우병 소환?
더불어민주당은 윤석열 대통령에게 ‘친일 프레임’을 씌워놓고 맹공을 퍼붓고 있다. 이재명 대표 ‘사법 리스크’로 수세에 몰렸지만 판세를 바꿔놨다는 해석이 나온다.
이재명 대표가 전면에 나섰다. 그는 한일정상회담 결과에 대해 3월 17일 “일본에 조공을 바치고 화해를 간청하는, 그야말로 항복식 같은 참담한 모습이었다”며 “우리 외교사에서 가장 부끄럽고 참담한 순간”이라고 윤 대통령을 직격했다. 이어 “오므라이스 한 그릇에 국가 자존심, 피해자 인권, 역사 정의 전부를 맞바꾼 거라는 국민의 한탄 소리가 틀려 보이지 않는다”며 “영업사원이 결국 나라를 판 것 아니냐는 지적도 전혀 틀린 것 같지 않다”고 몰아붙였다.
박홍근 원내대표도 “일본 편에 선다면 대한민국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비판했다. 서울 등 전국 거리에 내걸린 민주당 현수막에는 ‘이완용의 부활’이라는 표현까지 들어갔다.
윤 대통령 탄핵과 퇴진 등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본격화하고 있다. 박영순 의원은 3월 23일 당 회의에서 “나라를 구하는 대통령이 되지는 못할망정 나라를 팔아먹는 대통령이 돼서는 안 된다”며 “윤 대통령이 계속 친일·굴종의 길을 걷는다면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엄청난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것임을 경고한다”고 말했다.
김남국 의원도 3월 23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에 탄핵이라는 역사가 다시 반복돼서는 안 된다는 분명한 생각이 있다. 그러나 주변의 많은 국민과 법학자들이 그런 (탄핵 사유가 된다는) 이야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언급, 탄핵을 꺼내들었다.
국회에서도 상당수 의사일정이 윤 대통령에 대한 성토장으로 흘러가고 있다. 이 기세를 몰아 민주당은 국회 차원의 청문회·국정조사 추진도 할 태세다. 3월 21일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민주당 사무총장인 조정식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은 매번 해외순방을 갈 때마다 사고를 쳐왔는데 이번엔 해도 해도 너무했다”며 “윤 대통령의 방일은 국격을 무너뜨린 친일적 결단이자 외교 대참사”라고 지적했다.
김경협 의원은 이날 회의장에서 역술인 ‘천공’이 “일본에 고마운, 미안한 마음이 들어야 한다”고 발언한 영상을 튼 후 “친일 대일외교 기조가 어디서 시작됐는지 천공의 지침을 보면 알 수 있다”며 “이는 최순실에서 천공으로 바통 터치된 ‘제2의 국정농단’”이라고 주장했다. 김 의원은 이어 “한일관계의 미래를 위한 결단이라는 주장은 ‘을사5적’들이 똑같이 주장한 것”이라며 “대통령과 장관의 행위는 헌법이 정한 명백한 탄핵 사유에 해당한다”고 발언했다.
정치권에서는 MB 정부 당시 ‘광우병 프레임’을 떠올리고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임기 초반인 2008년 4월 한미 쇠고기 협상을 타결한 이후,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위험이 제기되면서 광우병 프레임에 갇혀버렸다. 광우병에 걸릴 가능성은 로또에 당첨될 확률과 같다는 변호를 하며 안전성에 대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설득했지만 전혀 먹혀들지 않았다. 정권이 흔들릴 만한 위기였고, 그해 5월 2일부터 7월까지 촛불집회까지 이어졌다.
결국 이 전 대통령은 2차례에 걸쳐 대국민 사과를 했고, 30개월 이상의 쇠고기 수입을 금지하는 내용의 추가 협상을 해야 했다. 그럼에도 상처는 컸다. 대통령 임기 초반 가장 강한 국정동력을 갖고 여러 과제를 이행하는 시기였지만 광우병 프레임에 걸려 MB는 수개월 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대통령 탄핵 서명운동까지 불러왔고 촛불집회 때문에 하루하루가 고통의 연속이었다. 일단 나쁜 프레임에 걸려서 프레임 전쟁이 시작되니까 과학자들이 나서서 팩트를 제공해도 전혀 먹히지 않았다. MB는 그해 여름 베이징 올림픽 즈음이 돼서야 외부 이벤트 효과로 프레임 전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지금 정부여당이 겪고 있는 친일 프레임도 아무리 합리성 있게 설명해도 쉽게 빠져나오기 힘들다.” 당시를 기억하는 MB 참모 출신 인사의 말이다.
#용산의 단독전
윤 대통령은 직접 난국 돌파를 위한 승부수를 던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3월 21일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한일 관계 개선과 관련해 대국민 설득에 나섰다. 취임 후 가장 긴 23분의 모두발언은 TV로 생중계됐다.
윤 대통령의 이날 연설문을 분석해보면 글자 수는 5700여 자로, 200자 원고지 기준 52장이나 되는 많은 분량이다. 앞서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모두발언은 짧게는 5분, 길어도 10분을 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였다. 전임 대통령들의 국무회의 모두발언과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긴 것이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이날 발언을 앞두고 밤늦게까지 참모들과 수차례 회의를 했다. 연설 당일 새벽에 윤 대통령이 직접 원고를 또다시 고쳤다는 말도 나왔다. 윤 대통령 스스로 긴장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윤 대통령은 구체적 대상을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배타적 민족주의와 반일을 외치면서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는 세력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야당을 겨냥했다. 정부를 향해 ‘친일 프레임’을 내세우는 민주당의 전략에 끌려 다니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모두발언의 80% 이상을 한일관계 개선 필요성에 할애하면서 정면 돌파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윤 대통령은 1965년 한일 국교 정상화 당시 박정희 전 대통령의 발언이나, 1998년 ‘김대중-오부치 공동선언’ 당시 김 전 대통령의 연설도 소개하면서 보수·진보 양 진영 모두를 설득시키는 시도를 했다.
용산이 친일 프레임전에 맞서 단독전을 수행하는 모습이 나타난 것은 여당의 엄호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판단을 한 때문으로 풀이된다. 김기현 대표가 직접 나서 친일 프레임전에 적극 방어에 나서긴 했지만, 여당 쪽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언론의 주목도가 전혀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볼멘소리가 당내에서조차 나온다.
더욱이 여당 내에서 야권의 친일 프레임전에 정면대응은 못할망정 움찔하는 모습도 목격됐다. 초선 의원들이 3월 27일부터 방일을 예정했었는데 이를 연기한 것이다. 의원들은 이 방문을 통해 윤 대통령의 방일 성과를 뒷받침하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었다. 이번 방일 연기와 관련해 여당에서는 일본이 4월에 지방선거를 치러 경황이 없을 것이라는 표면적 이유를 내세웠지만, 악화한 여론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친윤 일색의 당 상황이 정국 운영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는 취지의 이준석 전 대표 쓴소리까지 이어지면서 국민의힘의 단합된 대야 대응력을 침식시키고 있다. 이 전 대표는 3월 23일 공개된 월간중앙 인터뷰에서 김기현 대표 체제에 대해 “앞으로 취약한 리더십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이번에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았음에도 김기현 대표가 52% 득표에 그쳤다는 건 사실 굉장히 만족스럽지 못한 수치일 것”이라며 “전당대회가 끝나고 나서 김 대표가 통합 행보에 나선 것도 모든 조직을 다 동원했음에도 과반 득표에 그쳤다는 자신의 한계성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식구들마저 질타
윤 대통령의 우군들과 일부 보수언론조차 질타성 발언을 내고 있는 것은 ‘작심 모두발언’으로 프레임전에 맞서기로 작심한 윤 대통령에게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윤 대통령의 정치적 멘토라고 알려진 신평 변호사조차 윤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 직후인 3월 22일 자신의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윤 대통령에게 충고하고 싶다. 민중 정서에 반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신 변호사는 “윤 대통령은 중국·일본·미국의 대통령이 아닌 대한민국의 대통령이고 또 한민족의 최고 지도자”라며 “한민족 전통의 집단무의식이나 문화구조의 본질, 민족의 한, 심층적 정조 따위를 잘 파악하여 가급적 이에 맞추도록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야 마땅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야) 이 땅에 사는 이름 없는 민중의 정서에 반하지 않으면서 나라의 미래를 개척해가는 훌륭한 지도자가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신 변호사의 말은 일본을 바라보는 국민정서를 윤 대통령이 정확하게 헤아리지 못하고 있다는 직언으로 읽힌다. 국민감정을 잘 파악해서 대처해야 하는데 이 부분이 부족하다는 제언을 한 것이다.
지난 대선 경선에서 맞붙은 이후 쓴소리를 이어가고 있는 유승민 전 의원도 윤 대통령의 방일 외교에 대해 “한심하다”고 작심 비판했다. 그는 3월 20일 자신의 SNS를 통해 “윤 대통령의 방일 외교에 대해 대통령실이 ‘일본인의 마음을 여는 데 성공했다’고 자랑한다. 웬만하면 입 닫고 있으려 했는데 한심해서 한마디 한다”며 “과거사에서 일본이 가해자, 우리가 피해자였다는 역사의 진실은 변할 수 없다. 피해자가 왜 가해자의 마음을 열어야 하나. 가해자가 피해자의 마음을 열기 위해 진심으로 노력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었다.
국민의힘 한 현역 의원은 “한일 관계는 일본의 태도가 워낙 비상식적이어서 국민 여론을 짚어가면서 움직이는 것이 필요한데 속도가 좀 빨랐다는 뒤늦은 자책은 든다”며 “일본 총리의 답방, 그리고 미국 국빈 방문을 통해 돌파구를 마련하면 친일 프레임전을 조기에 종료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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