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당무위 열어 속전속결 당직 유지 결정…비명계 중심으로 절차상 문제 제기 등 비판 기류 확산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1부(부장검사 엄희준)·3부(부장검사 강백신)는 3월 22일 이재명 대표를 불구속 기소했다. 적용된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이해충돌방지법·부패방지법 위반,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뇌물·범죄수익은닉규제법 위반 등이다.
이 대표에 대한 대장동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지 1년 6개월 만에 재판에 넘겨졌다. 당초 검찰이 한 달 전 이 대표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부터 기소는 정해진 수순이었다는 평가다.
민주당도 대비하고 있었다는 듯 신속하게 움직였다. 기소 사실이 전해지자 이날 오후 박홍근 원내대표 주재로 당무위원회를 열어 이재명 대표의 당직 유지를 결정했다. 이는 민주당 당헌 제80조와 예외조항에 대한 해석에 기인한다.
민주당 당헌 80조는 부패연루자에 대한 제재 조항으로 ‘사무총장은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각급 당직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하고 각급 윤리심판원에 조치를 요청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현 민주당) 당대표 시절 내놓은 당 혁신안이다.
다만 예외조항이 붙어있다. 80조 3항은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당무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달리 정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민주당은 최고위원회를 통해 이 대표의 기소에 ‘정치탄압 등 부당한 이유가 인정된다’고 유권해석을 내리고, 이를 당무위에 안건으로 부의했다. 이어 당무위가 최고위 유권해석을 인정하면서 이 대표는 당직을 유지할 수 있게 됐다.
민주당은 당무위에 전체 80명 가운데 30명은 현장에 참석해 전원 동의했고, 39명은 서면으로 동의 의견을 밝혀 ‘만장일치’로 의결됐다고 강조했다. 김의겸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검찰의 정치적 탄압이 너무 명백하고, 탄압 의도에 대해 당이 단결·단합하는 모습을 신속히 보여주는 게 필요하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검찰 기소에도 불구하고 흔들리지 않는 지도부 체제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란 입장이다. 하지만 당무위 직후부터 당 안팎에서 잡음이 나오기 시작했다.
당무위 의결 다음날 김의겸 대변인은 국회 기자회견을 통해 “전해철 의원은 어제(22일) 당무위에서 몇 가지 말씀을 하신 뒤에 기권을 하고 당무위에서 퇴장했다”며 ‘만장일치였다’고 밝힌 전날 기자회견과 상반된 입장을 내놨다. 김 대변인은 전 의원 요청에 따라 이러한 사실을 밝히게 됐다고 부연했다. 전 의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 최측근 인사다. 문재인 정부에서 마지막 행정안전부 장관을 지냈다.
전해철 의원이 기권을 한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전해진다. 먼저 시기적으로 오전 11시에 기소됐는데 당일 오후 5시에 당무위를 소집하는 것은 너무 촉박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공소장도 읽어보지 못해 정치탄압 여부를 심층 검토하지 못했다는 의견이다. 마지막으로 당대표직이 직무정지되지 않은 상태에서 예외를 먼저 인정하는 게 당헌의 문헌 해석상 합당한지 따졌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민주당 일각에선 당무위가 서면으로 동의 의견을 받은 것에 대해서도 문제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의결정족수를 따질 때 현장 참석자와 서면의견 제출자를 묶어 정족수를 충족시킨 게 정당법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정당법 제32조 1항은 “대의기관 결의는 서면이나 대리인에 의해 의결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당헌 80조의 예외 인정 여부 유권해석 권한을 위임받은 당무위원회의는 그 범위 안에서는 정당의 대의기관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어, 서면에 의한 의결은 정당법에 위배되는 위법한 결의라는 주장이다.
또한 당헌 80조 직무정지 예외조항 판단을 기존에는 당대표와 독립된 윤리심판원이 했으나, 지난해 전당대회 과정에서 개정을 통해 당대표 주재의 당무위로 바꾼 것도 ‘셀프 방탄’ 논란으로 재점화될 가능성이 존재한다.
‘속전속결’ 당헌 80조 예외 인정 결정에 비명계를 중심으로 비토 기류가 퍼지는 모습이다. 김종민 의원은 이 대표 기소 전인 3월 22일 BBS라디오 ‘전영신의 아침저널’ 인터뷰에서 “사무총장의 판단, 당무위 의결 등으로 결정해야지 마치 이 대표나 측근들이 결정을 내려놓고 그리로 몰고 가듯 해서 ‘방탄’ 의혹을 받는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비명계 중진 이상민 의원은 3월 24일 KBS라디오 ‘최경영의 최강시사’에서 “형식적 절차를 밟았다곤 하지만 그게 정당성을 담보하는 건 아니”라며 “원칙을 관철 못하고 예외로 마치 쫓기듯 지질한 모습을 보였다”고 비판했다. 이어 “사법 리스크 때문에 당에 부정적 이미지를 끼치고 있고 민생에 올인해야 하는데 당대표 건에 올인 하는 자기모순적 부분이 있어 이재명 대표 결단이 필요하다”며 “자신의 신상, 거취 정리가 필요하다. 가능하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절차상 문제가 없고 정치탄압 예외조항으로 보기 충분한 공감대가 있었다는 반론도 있다. 친명계로 분류되는 민주당 초선 의원은 “이미 검찰 기소가 예고돼 있었던 만큼 의원들 사이에서 바로 당무위를 소집해 의결하자고 입장이 정리돼 있었다”며 “공소장 검토 시간이 부족했다는 주장에도 공소장이 국회로 넘어오려면 일주일 가까이 걸린다. 하지만 이미 구속영장 체포동의안을 통해 검찰의 무리한 혐의 적용을 보지 않았나. 민생이 어려운 상황에 당무에 공백과 혼선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민주당 일부 권리당원들은 이재명 대표의 직무를 정지하기 위해 법원으로 달려갔다. 민주당 권리당원이자 시사유튜버인 백광현 씨는 3월 23일 서울남부지법에 민주당 당헌 80조에 따라 이 대표 직무를 정지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서를 제출했다.
백 씨는 법원 앞에서 “당헌 80조는 민주당 정체성이자 당원들의 자부심이었다”며 “이재명 대표 이후 사실상 공허해진 말이 됐다. 그동안 민주당은 도덕성에 있어서 다른 정당과 비교했을 때 우위에 있었다. 민주당이 오로지 이재명 대표의 방탄만을 위해 당원들의 자부심을 짓밟고 무력화시킨 것에 유감을 표하며 민주당 권리당원들과 직무정지 소송을 시작한다”고 밝혔다.
이번 가처분 신청에는 백 씨를 포함해 권리당원 325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조만간 본안 소송도 제기할 계획으로 알려졌다. 백 씨는 “만 하루 만에 600명가량 모였다. 권리당원증과 신분증을 받아 입증된 사람만 참여토록 했다”며 “본안 소송 때는 권리당원만 1000명이 동참할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질지는 회의적 전망이 많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소송을 제기하는 측에서는 당무위의 절차적 하자 등을 이유로 들어 재판부에 이 대표의 직무정지를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뚜렷한 절차적 문제는 보이지 않는다. 또한 과거에 보면 사법부가 정당 문제에 최대한 관여하지 않는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기각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소송 주체인 백 씨에 대한 비판도 있다. 야권 한 전략통은 “백 씨는 지난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이낙연 전 대표를 지지하다가 이재명 대표가 대선후보로 선출되자, 이 대표에 대한 흑색선전에 앞장서고 윤석열 대통령을 지지했던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어떻게 민주당 권리당원이라고 할 수 있느냐. 오히려 해당 행위자다. 민주당은 백 씨를 징계하고 출당시켜야 한다”고 했다.
‘기소 방탄’ 내홍이 이어지자 이재명 대표는 3월 23일 의원총회가 끝난 뒤 “정당이라는 게 다양성이 생명이니 의견도 다양하게 있는 것”이라며 “그대로 표출하고 수렴하고 조정해가는 게 민주주의가 아닌가 싶다”고 밝혔다. 일부 권리당원들의 직무정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서도 “권리당원만 120만 명인가 140만 명”이라며 “다양한 의견들이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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