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이사 재직 2년 동안 주요 대북사업 이뤄져…쌍방울 ‘남북경협 테마주’ 분류 배경으로 꼽혀
대북송금 의혹 핵심 쟁점은 경기도, 쌍방울그룹, 아태평화교류협회의 공모 여부다. 지자체와 기업, 사단법인이 함께 대북송금을 계획하고 실행한 것이 증명될 경우 사건 본질은 달라진다. 단순한 기업 차원 일탈을 넘어서 정치 게이트로 비화할 가능성이 존재한다. 그 가운데 쌍방울 대북사업 행동대장 격 인물이 최근 입을 열어 주목받고 있다. 방용철 쌍방울 부회장이다.
3월 24일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 뇌물사건 23차 공판이 열렸다. 방 부회장은 검찰 측 증인 신문을 받았다. 경기도와 쌍방울이 2019년에서 2020년 사이 남북관계 경색 상황 아래서도 꾸준히 방북을 추진했던 배경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이날 방 부회장은 “북한에서 요구하는 300만 달러를 대신 납부하고 선거가 있는 2020년 초에는 방북 초청을 해주기로 거의 확답을 받았다”면서 “코로나19가 심해져 북한이 국경을 봉쇄하면서 방북이 무산됐다”고 했다. 방 부회장은 “코로나19가 아니었으면 방북 초청이 이뤄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검찰은 방 부회장에게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가 독자적으로 방북해 경제협력 청사진을 제시했다면 정치적 입지가 상승했을 것이 당연한 이야기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방 부회장은 “그때는 이재명이 대통령이 될 줄 알았다”면서 “대통령 선거 결과도 달랐을 것”이라고 했다. 이날 방 부회장은 방북비용 대납을 ‘경기도를 위한 헌납’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이날 방 부회장은 서류봉투를 손에 들어 보이며 “이화영 전 부지사에게 쪽지를 받았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 전 부지사가 자신을 회유하려는 증거 일환으로 서류봉투를 들어 보인 것으로 풀이된다. 방 부회장은 이 전 부지사에게 법인카드 등 뇌물을 제공한 혐의를 부인해 오다가 2월부터 “이 전 부지사가 쌍방울 법인카드를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해 계속 카드를 제공했다”고 입장을 바꾼 바 있다.
방 부회장은 지난해 9월 구속됐다.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에 뇌물을 제공한 혐의 때문이었다. 이후 쌍방울 관련 의혹은 대북송금 게이트로 비화했다. 쌍방울 핵심 관계자인 방 부회장은 자연스럽게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그러나 방 부회장은 줄곧 스포트라이트 중심에선 빗겨나 있었다.
해외 도피를 하다 붙잡혀 국내로 송환된 김성태 전 쌍방울 부회장, 대북사업 관련 실질적인 대북접촉을 담당했던 안부수 아태평화교류협회 회장, 경기도 대북협력 담당자였던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를 둘러싼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러나 업계에선 사건의 가장 중요한 열쇠를 쥐고 있는 인물로 방 부회장이 거론됐다.
한 업계 관계자는 “방 부회장이 대표이사로 등기돼 있는 동안 쌍방울 대북송금 의혹의 모든 사건이 일어났다”면서 “남북관계가 경색되면서 기존 준비한 사업들이 난항을 겪을 위기에 처한 뒤 방 부회장은 민족화해협력범국민위원회(민화협) 공동의장으로 선임됐을 뿐 아니라 관계사 광림 대표이사로 자리를 옮겨 지속적으로 쌍방울그룹 대북사업을 추진했다”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2018년 3월부터 2020년 3월까지 2년 동안 쌍방울그룹 대북사업 행동대장은 방 부회장이었다”면서 “제21대 총선에서 더불어민주당이 승리하자 주식 시장에서 남북경협 테마가 떠오른 적이 있었는데, 여기에 쌍방울 관련주가 포함돼 있었다”고 했다. 그는 “민화협 의장으로 선임된 방 부회장의 존재가 쌍방울 관련주를 더욱 강력한 대북경협 테마로 부각시킨 주요 원인이라는 평가가 나왔다”고 덧붙였다.
2018년 3월 18일 쌍방울 대표이사로 등기된 방 부회장은 2020년 3월 31일까지 재임했다. 이화영 전 부지사는 2017년 3월 31일부터 2018년 6월 22일까지 쌍방울 사외이사로 재직했다. 방 부회장 대표이사 재임 시기와 약 3개월 정도가 겹친다. 이 전 부지사는 사외이사에서 물러난 뒤인 2018년 7월 경기도 평화부지사로 취임했다.
이 전 부지사가 경기도로 들어간 뒤 본격적인 대북교류 물꼬가 트였다. 2018년 10월 이 전 부지사가 북한을 방문해 경기도가 추진하는 남북교류에 대한 뼈대를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옥류관 분점 유치, 황해도 스마트팜 시범사업 등이 이 기간 논의됐다. 2018년 11월엔 경기도 고양시 소재 한 호텔에서 아시아태평양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가 개최됐다.
리종혁 조선아태위 부위원장을 비롯한 북한 대표단이 전격 방남했다. 리 부위원장은 경기도농업기술원과 일산호수공원 인근을 둘러보며 기존 합의된 남북교류사업 관련 내용을 점검하는 행보를 보였다. 국제대회 본행사 당시 방 부회장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리종혁 조선아태위 부위원장이 앉은 메인테이블 바로 옆 테이블에 양선길 전 쌍방울 회장과 동석했다.
2018년 12월 29일엔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과 방 부회장이 중국 단둥에서 김성혜 전 조선아태위 실장 겸 통일전선부 실장을 만났다. 대북사업 우선권을 받으려는 취지로 쌍방울이 북한에 지원할 수 있는 사업과 관련한 설명을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회동에서 김성혜 전 실장은 김 전 회장을 통해 ‘경기도가 약속한 스마트팜 비용을 받지 못해 곤란한 상황’이라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쌍방울 대북송금 방아쇠를 당긴 회동으로 지목되고 있다.
2019년 1월 17일 김성태 전 회장, 이화영 전 부지사, 안부수 회장 등은 북측 조선아태위 부실장을 만나 남북경협합의서를 작성한 것으로 파악된다. 합의서가 작성된 뒤 2019년 1월 23일과 24일 안부수 회장과 쌍방울 임직원이 북측에 스마트팜 대납 비용 중 200만 달러를 선납했다. 나머지 스마트팜 비용 300만 달러는 2019년 4월경 전달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19년 1월엔 안부수 아태협 회장이 쌍방울 계열사 나노스(현 SBW생명과학) 사내이사로 부임했다. 이를 기점으로 쌍방울 용산사옥 5층에 아태협 사무실이 제공된 것으로 추정된다.
스마트팜 비용이 전달된 시점 이후인 2019년 5월엔 필리핀 마닐라에서 제2회 아시아태평양 평화번영을 위한 국제대회가 열렸다. 리종혁 조선아태위 부위원장과 북측 대표단이 다시 국제대회를 찾았다. 2019년 2월 하노이 북미정상회담이 결렬된 뒤 북측 대표단이 경기도 주최 행사에 다시 참석한 것이 많은 화제를 모았다.
제2회 국제대회에선 쌍방울이 전면에 나서 존재감을 부각했다. 필리핀 마닐라국제공항에서 양선길 전 쌍방울 회장이 리 부위원장을 직접 마중했다. 국제대회 뒤풀이에선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이 리 부위원장 볼에 입을 맞추며 친밀감을 과시하기도 했다. 대북 소식통은 “스마트팜 사업비용이 북한으로 송금된 뒤 쌍방울과 조선아태위 사이 신뢰감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면서 “북한 입장에선 쌍방울을 바라보며 ‘진짜 돈이 나올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됐을 것”이라고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 방북비 명목 300만 달러는 2019년 11월~12월경 북측으로 송금된 것으로 전해진다. 북한은 2019년 10월부터 남측 인사 접촉 금지령을 내렸고, 2020년 2월엔 코로나19 대유행으로 인해 국경 폐쇄 조치에 돌입했다. 경기도·쌍방울·아태협이 공동 추진하던 대북사업이 백지화 수순을 밟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대북 소식통은 “코로나19 변수가 없었을 경우 실제로 이재명 당시 경기도지사 방북이 이뤄졌을지 예측하는 것은 무의미하다”면서도 “남북관계가 이미 경색된 상황이었다는 부분에서 방북 성사 가능성이 높지는 않았을 테지만, 이 대표가 차기 유력 주자였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북한 측에서도 충분히 초청을 고민했을 수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코로나19로 인한 북한 국경 폐쇄 조치가 본격화되기 시작했던 2020년 2월 방 부회장은 민화협 공동의장으로 선임됐다. 정부가 인정하는 대북소통 채널 수장으로 전격 합류한 셈이었다. 2020년 3월 31일 방 부회장은 쌍방울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했다.
방 부회장이 쌍방울 대표이사로 재직하던 시기에 등기이사로 재직하던 임원 중엔 군 정보기관에서 대북공작 업무를 담당했던 인물도 있었다. 전직 정보기관 관계자와 대북 소식통들은 이 인물이 실질적인 대북 파이프라인 역할을 했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관련기사 [단독] 이재명 외곽조직엔 왜? 쌍방울 대북사업 ‘키맨’의 정체).
2020년 4월 방 부회장은 쌍방울그룹 핵심 계열사인 광림 대표이사로 부임했다. 검찰은 지난 9월 방 부회장을 이화영 전 부지사를 둘러싼 뇌물 수수 의혹 핵심 관계자로 분류했고, 결국 방 부회장은 구속기소됐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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