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렇게 축구하는 팀’ 표현은 내가 생각해도 과해…매 경기 골을 위해 뛸 것”
최근 광주 FC 사무실에서 만난 이정효 감독에게 두 가지 표정이 드러났다. 현재 광주가 선보이고 있는 경기력과 성적에 대한 자신감, 자신의 발언에 대한 미안함이다. 그는 "나 때문에 한동안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잠잠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라며 멋쩍게 웃었다.
지난 3월 5일 리그 2라운드 FC 서울과 홈경기에서 광주는 서울을 상대로 혈투를 벌였으나 후반 연속골을 허용하며 0-2로 패했다. 팀의 에이스 엄지성은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했다. 경기를 마친 이정효 감독은 공식 기자회견에서 "저렇게 축구하는 팀에 졌다는 게 분하다"고 말해 화제를 낳았다. 이후 "오해가 없었으면 좋겠다. 서울 축구와 안익수 감독님을 나쁘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해명했으나 그간 리그에서 보기 어려웠던 표현에 많은 시선이 쏠렸다. 이 감독은 당시 상황을 다시 한 번 설명했다.
"선수들의 마음을 대변한 것이다. 퇴장당한 엄지성도 정말 잘하고 싶어 했던 경기였다. 평소에는 태클도 잘 하지 않고 경고도 적은 선수다. 경기를 마치고 선수들에게 기분을 물었는데 '분하다'고 하더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 감정을 솔직하게 이야기했는데 표현이 잘못 나왔던 것 같다. 그 이후에 나도 스스로 말이 과했다고 생각했다. 안익수 감독님께 사과 드렸다. 내가 생각해도 화가 나셨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이정효 감독은 '수위 조절'은 있겠으나 앞으로도 솔직한 마음을 전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는 "다른 팀 사정을 깊게 헤아릴 겨를이 없다"며 "우리 팀이 우선이다. 항상 우리의 상황에 집중할 것"이라고 말했다.
논란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기도 했다. '저렇게 축구하는 팀'이라는 표현을 했으니 경기력 향상에 더욱 집중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한편으로는 잘됐다는 생각도 했다"며 "뱉어놓은 말이 있으니 좀 더 공격적으로 좋은 축구를 구사해야겠다고 다짐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우리가 수비적인 축구를 하면 10배로 욕을 먹을 것이다"라며 웃었다.
광주는 지난 시즌 K리그2에서 역대 최단기 승격 확정 기록을 세우며 K리그1 무대로 올라왔다. 그러나 시즌 개막 전 광주를 두고 K리그1 무대에선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다. 대형 선수 보강이 없었을 뿐더러 중심 미드필더로 활약하던 김종우가 이적으로 빠진 탓이다.
하지만 개막전부터 수원 삼성을 상대로 승리한 광주는 이후 2연패를 했으나 4라운드에서는 인천 유나이티드에 5-0 대승을 거뒀다. 2연패 기간에도 서울, 전북 현대 등 강팀을 상대로 밀리지 않는 경기력을 보였다. 약체로 평가받는 팀이지만 라인을 내리지 않고 맞서는 전술이 깊은 인상을 남겼다.
"항상 골을 최우선으로 생각한다. 골을 넣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골을 넣으려면 먼저 수비가 기본이 돼야 한다. 볼을 빼앗겼을 때, 빼앗았을 때, 선수들이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자세히 설명해준다. 수비적인 부분을 갖춰 놓으면 공격시 숫자 싸움에 집중한다. 동료가 볼을 가지고 있을 때 압박을 당하는지, 압박이 없는지, 몇 초 뒤 압박이 있을지 상황에 따라 대응 방법이 다 다르다."
광주 구단 관계자는 "감독님이 원하는 축구를 처음 접한다면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며 "새롭게 팀에 합류한 선수들은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정효 감독은 특히 외국인 선수들이 팀에 녹아들기까지 어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제일 많이 혼나는 선수가 마케도니아 출신 공격수 아사니다"라며 "처음 입단해서 '하프 스페이스' 공간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런데 한 달이 지나서 '하프 스페이스가 뭐냐'고 묻더라(웃음). 플레이 영상을 보면서 소통을 많이 했고 지금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따라와 주고 있다"고 했다. 전술적 움직임을 놓고 이 감독과 씨름하던 외국인 공격수 아사니는 지난 인천전에서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믿음에 보답했다.
5-0 대승을 거둔 인천전에서 이 감독이 가장 격한 반응을 보인 순간은 팀의 세 번째 골 이희균의 득점 장면이었다. 골망을 흔든 이희균은 벤치를 향해 달려왔고 이정효 감독은 마중을 나가 이희균을 끌어안았다. 그는 "이희균이 골을 넣었을 때 특별한 마음이 들었다"고 말한다.
"작년에 이희균에게 기회를 많이 줬다고 생각하는데 항상 플레이의 마무리가 안 좋았다. 마지막 패스, 슈팅 등이 좋지 못했다. 2% 정도 부족한 선수라는 느낌이 들었다. 나도 현역 시절 비슷한 선수였다. 기대보다 성장이 더뎌서 한 번은 나무랐더니 도리어 '어쩌라고요!' 하면서 대들더라(웃음). 그 장면을 주변에서 보고 나는 몰랐는데 내가 웃고 있었다고 하더라. 사실 그날 혼자서도 하루 종일 웃었다. 희균이가 껍질을 벗고 나올 수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인천을 상대로 골을 넣는 순간 이제는 성장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기쁜 마음에 안아줬다. 울컥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미드필더 정호연은 이정효 감독이 가장 아끼는 선수다. 그는 "희균이가 호연이만 예뻐한다고 하더라. 선수들이 정호연 성을 바꿔서 '이호연'이라고 부른다"라며 웃었다. 이어 "선수들도 알 것이다. 정호연은 부족한 부분이 없다. 축구에 대한 열정도 많고 배우려는 의지도 강하다. 성장 속도가 정말 빠르다. 나중엔 A대표팀에 뽑히는 선수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정효 감독은 책을 많이 읽는 애독가로 알려졌다. 선수들에게 책을 추천하고 선물도 한다. 그는 "정말 많이 읽으시는 분들에 비하면 부족하다"고 손사래를 치며 책을 좋아하게 된 계기를 설명했다. "어린 시절 어머니께서 위인전을 사주셨는데 그걸 읽으면서 재미를 붙이게 된 것 같다"고 했다.
기억에 남는 책으로는 '광개토대왕전'을 꼽았다. 그는 "훌륭하신 분이라 조심스럽지만 저와 성향이 비슷한 분이라고 생각한다. 북벌정책을 펼쳐 우리나라 영토를 가장 넓게 넓힌 분으로 알고 있다. 외세에 공격을 받기 전에 선제적으로 공격을 하셨다. 지금의 광주 축구가 추구하는 방향이다"라고 설명했다.
그는 올 시즌 포부를 말하면서도 공격과 골을 언급했다. "우리 광주는 매 경기 골을 넣기 위해 뛸 것이다. 아직 목표 순위를 공개할 때는 아닌 것 같다. 홈경기장에서 관중 1만 명을 채우고 싶다는 바람은 있다"며 "우리가 어떤 축구를 펼치는지 분석을 많이 해주셨으면 좋겠다. 우리에게도 공부가 되고 성장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응원도 해주시고 질타도 해주시면 감사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 가지 농담 섞인 당부를 더했다. 이 감독은 "5월 9일 서울 원정경기가 있는데 우리 팬분들이 경기장에 많이 와주셨으면 좋겠다. 제가 욕을 많이 먹는 경기가 될 것 같다. 보호를 해주셔야 한다"며 웃었다.
광주=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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