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0억대 횡령 혐의에 대해 집행유예로 풀려나 경영에 복귀한 담철곤 오리온 회장이 스포츠토토 비자금 사건으로 또 다시 검찰의 주목을 받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특히 검찰은 스포츠토토가 조성한 비자금 96억 원 가운데 40억 원이 담 회장과 부인인 이화경 오리온그룹 사장의 사치품 구입 등에 사용됐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검찰은 또 담 회장의 핵심 측근인 조경민 전 오리온그룹 사장이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뒤 일부를 담 회장 일가에게 건넨 정황을 잡고 사실 규명에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재벌 봐주기’ 논란에도 불구하고 집행유예 후 천신만고 끝에 경영일선에 복귀한 담 회장이 비자금 시한폭탄으로 또 다시 검찰 수사망에 걸려들고 있는 모양새다.
최근 <일요신문>이 단독 입수한 담 회장 비자금 사건 1심 판결문을 바탕으로 담 회장과 측근들의 각종 비리 의혹을 재조명해봤다.담철곤 회장의 횡령 및 비자금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25부(재판장 한창훈 부장판사)는 지난해 10월 20일 300억대 회사 자금을 빼돌려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된 담 회장에게 징역 3년을 선고했다. 1심 재판부는 또 횡령에 가담한 혐의로 기소된 그룹 전략담당 조경민 사장에게는 징역 2년6월을, 판매 위탁받은 그림을 담보로 수십억 원을 대출받은 혐의로 기소된 서미갤러리 홍송원 대표에게는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4년을 각각 선고했다.
▲ <일요신문>이 단독입수한 1심 판결서. |
특히 재판부는 담 회장의 범죄 사실에 대해 “그룹 회장의 지위와 부에 맞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 상태에서 해외시장 개척을 추구하거나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말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됐다”며 “횡령 및 배임액이 285억 원에 해당하는 큰 금액으로 시장경제의 자정능력과 공정성에 대한 기대와 신뢰를 훼손해 엄중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담 회장의 핵심 측근인 조 사장에 대해서는 “횡령액이 108억 원 정도로 큰 액수이며 주도적으로 행동한 점이 인정된다”며 “그럼에도 객관적 사실에 반하는 증언을 계속하는 등 반성의 기색이 없어 엄한 처벌이 불가피하다”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또 홍송원 대표에 대해서는 “고가의 미술작품을 임의로 담보 제공해 90억 원 상당을 횡령하고 갤러리서미의 법인자금 5억 5000만 원을 횡령했다”면서도 피해가 상당부분 회복된 점을 인정해 집행유예를 선고했다.
이 밖에도 판결문에는 담 회장과 조 사장의 드러나지 않은 범죄사실도 구체적으로 적시돼 있다. 판결문에 따르면 담 회장과 조 사장은 위장계열사 임원에게 월급이나 퇴직금을 지급하는 것처럼 꾸며 38억여 원을 횡령하는 등 비자금 300여억 원을 조성해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했다. 특히 담 회장은 ‘람보르기니 가야르도’ 같은 고급 외제차를 회사 돈으로 리스해 자녀 통학용으로 사용하고, 55억 원에 달하는 프란츠 클라인의 ‘페인팅 11’ 같은 해외 유명 작가의 미술품 10점을 회사 자금으로 구입해 자택에 걸어 두는 방식으로 회사 돈 140억 원을 횡령한 혐의도 적용됐다.
▲ 담철곤 오리온 회장은 프란츠 클라인의 55억대 그림(왼쪽)을 회사 돈으로 구입해 자택에 걸어놓고, 람보르기니 가야르도(오른쪽)를 역시 회사 돈으로 리스해 자녀 통학용으로 이용하는 등 횡령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
이처럼 천신만고 끝에 집행유예로 풀려난 담 회장은 ‘재벌 봐주기’ 논란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3월 30일 오리온그룹 정기주주총회에서 대표이사에 재선임돼 경영 일선에 복귀했다. 집행유예에 이어 연임에 성공하면서 화려하게 경영 일선에 복귀하는 듯했던 담 회장에게 또 다시 대형 악재가 터졌다. 오리온 계열사인 스포츠토토에 대해 검찰이 대대적인 압수수색 등을 단행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듯했던 비자금 사건을 재조준했기 때문이다.
특히 스포츠토토에 대한 검찰 수사 과정에서 담 회장이 연루된 정황과 관련자 진술이 속속 드러나면서 담 회장을 압박하고 있는 형국이다. 실제로 검찰은 스포츠토토가 조성한 비자금 96억 원 가운데 40억 원이 담 회장과 이화경 사장의 사치품 구입 등에 사용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또 비자금 가운데 23억 원가량이 스포츠토토 사업권 유지를 위한 로비자금 및 비공식 접대비로 사용됐다는 진술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검찰은 스포츠토토 인허가 과정을 둘러싼 불법 로비 의혹에 대해서도 본격 수사에 착수할 방침이다.
조경민 전 사장의 각종 비리 의혹도 속속 불거지고 있다. 검찰은 지난 6월 1일 스포츠토토의 비자금 조성 과정에 깊숙이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는 조 전 사장을 소환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 이날 조 전 사장을 피내사자 신분으로 소환해 비자금 조성 경위와 액수, 사용처 등을 집중적으로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전 사장은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스포츠토토를 운영하면서 경기도 포천의 골프장 사업에 회사 돈 140억여 원을 끌어다 쓴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또 스포츠토토를 포함한 계열사 5~6곳의 임직원 급여를 부풀린 뒤 일부를 챙겨 받는 수법으로 수십억 원대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도 받고 있다.
검찰은 또 조 전 사장이 자신의 친형 업체에 그룹 일감을 몰아주는 수법 등으로 수백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정황을 포착하고 사실관계를 파악하는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특히 검찰은 조 전 사장이 조성한 비자금 일부가 담 회장 일가에게 건네졌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져 검찰의 수사 칼끝이 담 회장을 재조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사정당국 관계자들도 검찰 수사 과정에서 조 전 사장이 조성한 비자금 일부가 담 회장 일가에게 건너간 사실이 확인될 경우 검찰의 칼끝은 또 다시 담 회장을 정조준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한편 스포츠토토 비자금 사건은 담철곤 회장과 그의 ‘오른팔’인 조경민 전 사장이 갈라서는 와중에 촉발됐다는 얘기도 있다. 오리온그룹의 내부 사정에 밝은 한 재계 인사는 이에 대해 “골프장 사업 관련 비자금 조성 건이 내부 제보에 이해 검찰 수사로 이어졌다는 정보가 재계와 검찰에서 비슷한 시점에 흘러나온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전했다.
과연 대법원 확정판결을 앞두고 있는 담 회장이 산적한 악재들을 극복하고 순탄하게 오리온그룹 경영을 진두지휘할 수 있을지 검찰의 수사 추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전직 사장 때 사건 현직 ‘희생양’ 삼고 측근 앉히기 그런거야?
오리온 그룹 계열사인 스포츠토토의 대표이사 해임을 놓고 그룹 오너와 계열사 사장이 정면 충돌하고 있다. 지난 5월 25일 갑자기 담철곤 오리온 회장이 박대호 스포츠토토 대표이사를 해임했기 때문이다.
오리온 측은 박 대표가 최대 주주의 인사권을 침해한 점과 검찰의 스포츠토토 비자금 수사에 대한 경영진 책임론 차원에서 이뤄진 조치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박 대표는 “이사회 결의도 없이 이뤄진 횡포다”며 담 회장의 부당한 해임통보와 관련 법적대응에 나서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재계 주변에서는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전임 사장 시절에 이뤄진 ‘비자금 사건’ 물타기를 위해 현직 전문경영인을 ‘희생양’ 삼으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박 대표 해임 이유에 대해 회사 측이 밝힌 인사권 침해 부분은 담 회장이 추진한 공동대표체제가 박 대표 때문에 무산됐다는 것이다. 지난 3월 30일 스포츠토토 이사회에서 담 회장은 자신의 측근인 정선영 스포츠토토 부사장을 공동 대표이사로 선임하려했다. 하지만 이사회가 ‘재고해달라’는 건의를 내면서 공동 대표 체제는 무산됐다.
이후엔 보도된 것과는 달리 담 회장과 박 대표 간에 한때 ‘건의안’을 놓고 절충안이 논의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무슨 이유에선지는 몰라도 오너 측에서 갑작스레 박 대표의 태도를 ‘항명’으로 받아들이면서 박 대표의 해임을 결정했다는 후문이다. 박 대표의 해임은 최대 주주의 의사가 확고하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그 과정은 순탄치 않을 전망이다. 대표 해임안을 임시 주총에 상정하려면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이번 사태는 이사회에서 담 회장의 인사에 제동을 걸어서 비롯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사회에서 박 대표의 해임 안건이 통과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다면 담 회장 쪽에서는 법률적 판단을 구하는 수순을 밟을 수밖에 없다. 이 경우는 담 회장이 유리할 수도 있다. 비슷한 경우에 법원 판단은 대체로 대주주의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사안이 대주주의 비자금 사건에서 시작됐고, 인사권 횡포라는 비난이 일고 있어 법원이 전혀 다른 판단을 내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게 법조계의 의견이다.
다음으로 검찰의 스포츠토토 비자금 수사에 대한 책임 부분이다. 검찰은 조경민 전 오리온 그룹 전략담당 사장이 그룹 계열사인 스포츠토토를 통해 140억 원의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포착하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검찰 수사 과정에서 스포츠토토 김 아무개 부장이 횡령혐의로 구속(5월 30일)되기도 했다. 김 부장은 스포츠토토 등 오리온그룹 계열사 사장단의 급여를 높게 책정한 뒤 일부를 돌려받는 방식을 통해 56억 원을 횡령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밖에도 김 부장은 조 전 사장의 형이 운영하는 업체에 일감을 몰아줘 회사에 37억 원의 손해를 끼치고 2억 원의 대가를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여기에 검찰은 스포츠토토 비자금 조성과 관련해 그룹 윗선의 개입 정황까지 포착해 그룹 오너인 담 회장에 대한 수사까지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스포츠토토 비자금이 담 회장에게 흘러간 정황이 드러날 경우 대법원 판결을 앞둔 담 회장에게는 치명타가 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재 담 회장은 법인 자금으로 고가의 미술품을 구입하는 등 300억 원의 회사 돈을 횡령한 혐의로 기소돼 항소심에서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고 받고 풀려난 상태다.
이 때문에 업계에서는 담 회장이 갑자기 정 부사장을 공동 대표로 선임하려 했던 배경에는 자신의 측근을 대표 자리에 앉혀 스포츠토토 비자금 사건을 무마하려는 복심이 깔려 있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지난 5월 25일 검찰 조사를 받은 박 대표는 “전문경영인으로서 담 회장과 조경민 사장의 추가 횡령, 회사 돈 빼돌리기 등을 지적하자 해임하려 하는 것”이라며 “자기들이 저지른 죄를 누명 씌우려는 것 같다”며 자신에 대한 해임이 부당함을 주장했다.
결국 자신의 계획이 박 대표에 의해 무산되자 담 회장이 전문 경영인을 희생양으로 삼으려는 노림수가 아니냐는 시각에 힘이 실리고 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