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김은희 작가도 꼭 하라고 추천…중요한 건 실화 구현, 경기도 끊지 않고 찍어”
고교 농구판에 돌풍처럼 불어온 기적을 한국 영화계에도 옮길 수 있지 않을까. 4월 5일 개봉하는 영화 ‘리바운드’를 놓고 장항준 감독(54)은 설렘과 흥분, 그리고 한편으로는 의아함을 번갈아가면서 느끼고 있다고 했다. 아직은 지금의 사랑을 100% 완전히 믿기 어렵다고 한다. 투자사, 제작사 관계자들을 모아 놓고 한 편집시사부터 블라인드시사회, 언론배급시사회, 일반시사회까지 연이어 호평이 터져 나온 한국 영화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그만큼 본격적으로 일반 관객들 앞에서 선보이는 ‘리바운드’가 얼어붙었던 한국 영화계에 가져올 훈풍에 벌써부터 기대감이 모일 수밖에 없었다.
‘리바운드’는 2012년 아무도 주목하지 않은 최약체 고교 농구부가 전국 고교농구대회에서 8일 동안 써 내려간 연전연승의 기적을 그린다. 2012년 제37회 대한농구협회장기 고교농구대회에서 벌어진 부산중앙고등학교 농구부의 그야말로 만화 같은 실제 이야기가 바탕이 됐다. 고교농구선수 출신의 공익근무요원 강양현 코치(안재홍 분)를 비롯해 극 중 등장하는 학생 선수들은 모두 실제 인물을 그대로 연기해낸 것이다.
“장원석 대표(‘리바운드’ 제작사 B.A엔터테인먼트)는 2012년에 기사를 보자마자 그해 바로 부산중앙고랑 강양현 코치한테 연락을 했대요. ‘지금 당장은 될 수 없겠지만 언젠가 영화로 꼭 만들고 싶은데 허락해 주세요!’ 하면서(웃음). 저도 5년 전쯤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그땐 실화인 걸 모르고 그냥 읽다가 ‘어, 너무 작위적인데?’ 하고 생각했는데 기사를 찾아보고 ‘이거 진짜구나, 그럼 하고 싶다!’ 했죠(웃음). 뭔가 설레기도 하고 피가 막 끓어올랐던 것 같아요.”
주목 받는 천재 선수였지만 슬럼프에 빠진 가드, 부상으로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던 스몰 포워드, 점프력만 좋은 축구선수 출신의 센터, 길거리 농구 출신 파워포워드 등 오합지졸이 뭉쳐 기적을 이뤄낸다는 스토리는 감동적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비교적 인기가 덜한 스포츠인 농구, 그것도 프로도 아닌 고교농구를 영화로 만든다는 건 실화의 감동과는 별개로 흥행을 장담할 수 없는 모험이었다. 실제로 ‘리바운드’는 5년 전 투자를 받지 못해 한 차례 무산된 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 ‘뚝심’을 발휘한 이유에 대해 장 감독은 “제가 원래 안전빵을 싫어한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충무로 상업 영화의 주류는 아니죠, ‘리바운드’의 장르 자체가. 남이 가보지 않은 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저는 원래 그런 길을 좋아해요. 낯선 길, 되게 끌리잖아요. 무슨 심정으로 이 사람들이 이렇게 농구에 미칠 수 있었는지 너무 궁금하더라고요. 결심한 뒤에 이제 시나리오를 고치려는 데 내가 고칠까, 다른 작가를 찾을까 고민하던 중 저희 와이프(김은희 작가)가 자기가 한 번 읽어보고 싶대요. 보고 나서 제게 ‘이거 꼭 했으면 좋겠어’ 그러더라고요. 저희 딸도 같이 보고는 ‘만약에 아빠가 이 영화를 안 한다면 언젠가는 꼭 누군가 만들었으면 좋겠어’ 그랬고요(웃음).”
본격적인 제작에 들어가면서 장 감독이 무엇보다 중요시 여긴 건 ‘구현성’이라고 했다. 이미 실화가 탄탄하니 굳이 불필요한 감동이나 코믹 요소를 넣을 필요 없이 담백하게 가되, 최대한 인물들의 싱크로율을 높였다는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하다 보니 현실을 구현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저희가 송강호 같은 대단한 스타를 내세운 작품도 아니고, 저희가 가진 무기는 오직 ‘실제 이야기’라는 것뿐이었으니까요. 그래서 캐스팅을 할 때도 키와 몸무게가 당시 선수들과 같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외모나 버릇, 입고 다니는 옷, 특히 신고 있는 농구화까지 다 같게 만들었어요. 사실 농구 경기도 경기장에서 찍고 싶었는데 여건이 안 됐던 게 아쉬워요(웃음). 대신 부산중앙고 체육관은 실제로 그곳에서 찍은 거예요.”
외모가 흡사해지면 남은 숙제는 이제 어떻게 그 선수들의 움직임을 구현하느냐였다. 유튜브에 남아있는 2012년 시합 당시 영상을 보며 각자 포지션에 맞는 위치를 정하고 끊임없이 합을 맞춰야 했다. 촬영 장소 특성상 한 번에 대본의 모든 신을 찍어야 하는 농구 경기 촬영 때마다 상상 이상으로 최선을 다해 완벽한 합을 만들어내는 배우들을 보고 있자면 장 감독은 편집이나 CG(컴퓨터그래픽)로 대충 ‘비벼낼’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시사회로 먼저 보신 분들이 많이들 그러시더라고요. ‘농구 장면에서 전혀 기대 안 했다’고. 다들 그렇게 생각하셨던 것 같아요. ‘이게 되겠냐?’ 농구 경기는 찍는 것도 너무 어렵고, 배우들도 선수가 아니니까 완벽하게 만들 수 없을 거라고요. 하지만 배우들도 신인이었기 때문에 이번 작품이 자기 인생에 있어 소중한 기회라고 생각해서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안재홍 씨와 정진운 씨를 빼면 다들 처음 상업영화에 도전한 거였거든요. 그렇게 다들 열심히 노력하는 걸 보며 저도 촬영 감독한테 그랬어요. ‘농구경기 찍을 때 끊지 말자. 그냥 컷, 컷 해서 붙이는 건 거짓말이다. 우리 영화가 미국의 여타 농구 영화들과는 다르다는 걸 보여주자.’”
배우들과 제작진의 땀과 눈물로 완성된 경기 신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것은 후반전을 앞둔 부산중앙고 농구부의 모습을 배경으로 울려퍼지는 미국의 인디 록밴드 펀.(FUN.)의 유명 곡 ‘위 아 영’(We Are Young)이다. 청춘이란 단어가 가진 모든 것을 음악으로 풀어낸 이 곡은 국내에서도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렇기에 사용료만도 ‘억’ 소리가 날 정도였다고. 꿈에서만 한 번 그려봤던 이 노래를 우여곡절 끝에 사용할 수 있게 된 데엔 투자사인 넥슨의 도움이 컸다는 게 장 감독이 밝힌 '리바운드'의 뒷이야기다.
“마지막 장면을 편집하면서 어떤 음악을 넣을까 고민했는데 편집기사가 ‘위 아 영’이 어떻겠냐고 그러더라고요. 솔직히 어차피 못 쓸 거라 생각했어요, 너무 비싸거든요(웃음). 그래도 한 번 깔아봤는데 그 곡만큼 딱 맞는 게 없는 거예요. 그 상태로 넥슨 관계자 분들 앞에서 편집본 시사를 했더니 그날 밤에 전화가 왔어요. ‘감독님, 저희가 그 곡 살게요’(웃음). 얼마가 되든 사겠다는 거예요. 생각지도 못하게 제작비가 늘어난 거라 처음엔 ‘이거 너무 오버 아닌가’ 걱정도 됐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위 아 영’의 가사가 그 장면하고 너무 찰떡이잖아요. ‘오버를 해야겠다!’ 결정했죠(웃음).”
시사회에서 좋은 반응이 나왔어도 대중들에게 완성된 작품을 온전히 보일 때는 늘 처음처럼 떨리고 설레기 마련이었다. 투자자들의 설렘과는 또 다른 결로 장항준 감독은 매일 개봉 날만 기다리며 홍보 활동에 매진했다. 제작 무산이란 벼랑 끝에 서 있던 '리바운드'라는 영화가 너무 좋아서, 그리고 장항준 감독을 너무 믿어서 말 그대로 ‘장항준 감독님 하고 싶은 거 다 해’를 보여준 넥슨이 부담스러울 법도 한데, 장 감독은 “부담 그런 거 하나도 없던데요? 너무 좋던데요”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투자는 투자고, 영화는 영화라는 게 장 감독의 지론이었다.
“한국 영화판의 주류 장르가 아닌데도 왜 ‘리바운드’를 만들게 됐냐고요? 그냥요(웃음). 이쪽 일을 오래 하다 보면 철학 비슷한 게 생기거든요. 남이 좋아하는 걸 하지 말고, 내가 좋아하는 걸 하자. 춤을 추더라도 남의 장단에 춤추지 말자. 그게 제 좌우명 같은 거예요. 나라도 즐거워야 남도 즐겁게 할 수 있는 거니까요. 내 피가 끓느냐, 설레느냐가 작품 제작의 첫 조건이에요. 시장의 흐름은 크게 신경 안 써요. (작품이) 엎어졌다고 해서 그렇게 지나간 시간은 뭐 어떡해요, 그건 영화인의 숙명인데요(웃음).”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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