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2년 김현희의 모습. 십자가 목걸이가 눈에 띈다. 사진제공=우먼센스 |
주무수사관이 말하자 고개를 떨어뜨린 채 눈물을 흘리던 김현희가 살짝 웃음을 지어보였다.
‘참 감정 기복도 심한 여자구나.’
나는 옆에서 지켜보다가 그렇게 생각했다. 심문 조사에는 자술서라는 것이 있다. 수사관들이 심문한 뒤에는 자술서를 쓰게 하고 이에 대해 확인 절차를 밟는다. 그러나 김현희가 북한 공작원이고 그녀가 오갔다는 중국이 미수교 국가여서 그녀의 진술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는 일도 있었다.
수사관들은 김현희에게도 자술서를 쓰게 했다. 다음은 KAL기 폭파 공작을 수행하기 위해 평양 출발부터 바레인에서 체포될 때까지 과정을 김현희가 직접 작성한 자필 자술서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김현희는 외교관인 아버지 김원석과 교사인 어머니 림명식 사이에서 1962년 1월 27일에 평양에서 태어났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쿠바로 갔다가 4세 때 평양으로 돌아왔다. 여동생 김현옥(남편은 심장마비로 사망), 남동생 김현수와 김범수(15세 때 피부암으로 사망)가 있었다.
김현희는 아버지가 외교관이었기 때문에 북한에서 비교적 상류층 생활을 했다. 어렸을 때는 <사회주의 조국으로 돌아간 영수와 영옥> <딸의 심정>이라는 영화에서 아역으로 출연한 일도 있었다. 아버지가 외교관이었기 때문에 미국과 남한을 비난하는 교육을 받으면서 자랐으며 풍족하게 살았다. 중학교를 졸업한 김현희는 이후 평양외국어대학 일본어과를 졸업했고, 80년 4월부터 7년 8개월 동안 대남공작원 양성기관인 금성정치군사대학 동북리초대소, 용성초대소 등에서 훈련을 받았다. 특히 공작에 투입되기 전에 일본인 납북자 다구치 야에코로 추정되는 이은혜로부터 개인적으로 일본어 교육을 받았다.
“동무는 이제 혁명과업을 수행해야 하오.”
1987년 11월 오랫동안 공작원 훈련 과정을 마친 김현희에게 마침내 임무가 부여되었다. 노련한 70대 공작원 김승일과 함께 한국의 항공기 KAL기를 폭파하라는 임무였다. 김현희는 그때 가슴이 철렁했다. 훈련을 받을 때 언젠가는 공작원으로 투입될 것이라는 생각을 했으나 막상 임무를 부여받게 되자 긴장이 되었다. 그러나 명령이 내린 이상 임무를 수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공작원들은 출발하기 전에 반드시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 앞에서 선서를 한다. 60년대 남파 간첩들에게는 김일성이 직접 전화를 걸어 격려하기도 했었다. 김일성의 전화를 받은 공작원들은 감격하여 자수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친애하는 지도자 동지의 지도에 따라 남조선 비행기를 폭파하는 임무를 수행하고 실패하더라도 목숨을 걸고 비밀을 지키겠습니다.”
1987년 11월 12일 아침 김현희와 김승일은 공작원 초대소에서 공작지도원인 최 과장과 함께 선서를 했다. 선서는 김현희가 읽었다. 선서가 끝나자 김현희 등은 초대소에서 아침 식사를 하고 평양의 순안 비행장으로 향했다.
‘아아 내가 마침내 임무를 수행하게 되는구나. 위험하지는 않을까?’
김현희는 몸이 떨리는 것을 느꼈다. 차는 평양의 번화가를 지나 순안 비행장을 향해 달렸다. 공작이 실패하면 죽게 될 것이고 다시는 평양에 돌아오지 못할 것이다.
‘내 운명이 가혹해.’
비행장에는 부부장이 차를 타고 나와 있었다.
“동무들은 긴장하지 마시오. 이번 공작은 친애하는 김정일 지도자 동지께서 친필로 직접 명령을 내린 것이니 지도자 동지도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소. 지도자 동지를 실망시키면 안 됩니다.”
부부장이 웃으면서 김승일과 김현희에게 말했다.
“지도자 동지가 지시한 과업을 반드시 완수하겠습니다.”
김승일이 큰소리로 대답했다. 최 지도원이 출국 수속을 마치고 오자 네 사람은 부부장의 배웅을 받으면서 비행기에 탑승했다.
“승객 동지 여러분, 이 비행기는 모스크바를 경유하여 동베를린을 운항하는 노선을 개통해 첫 번째로 운항하는 비행기입니다. 동베를린 취항을 기념하여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예쁘게 생긴 여승무원이 트럼프, 열쇠고리, 돈지갑을 승객들에게 나누어주었다. 김현희는 선물을 살폈으나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내 비행기가 순안 비행장을 이륙했다. 김현희는 손바닥에 땀이 날 정도로 긴장이 되는 것을 느꼈다. 오랫동안 훈련을 마치고 공작에 투입된다는 사실 때문에 비행기 안에서 내내 긴장 상태로 있었다. 비행기가 모스크바에 도착한 것은 11월 12일 오후 6시경이었다. 10시간이 넘는 비행이었다. 김현희는 몹시 피로했다. 모스크바 주재지도원이 마중을 나와 차를 타고 모스크바 북한 대사관의 초대소로 향했다.
김현희는 차창으로 밖을 내다보았다. 모스크바는 평양과 확실히 달랐다. 건물들은 고색창연했고 길도 넓었다. 그러나 밤이라 자세하게 살필 수 없었다.
“부다페스트행 비행기는 오늘밤 12시에 있습니다. 이 비행기를 타지 않으면 며칠을 더 기다려야 합니다.”
모스크바 주재 지도원이 말했다. 김현희는 저녁식사를 하고 잠시 쉬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쉴 수가 없었다. 김승일은 지도원들과 밀담을 나누었다.
“우리는 다시 비행기를 타야 해. 부다페스트로 갈 거야.”
김승일이 김현희에게 와서 나지막하게 말했다. 모든 일정은 김승일과 지도원들이 짜고 있었다. 모스크바 대사관 지도원의 안내로 밤 11시쯤에 초대소를 떠나 모스크바 비행장으로 다시 갔다. 출국 수속은 까다롭지 않았다. 김승일을 따라 소련 여객기에 탑승했다. 밤 12시에 이륙한 여객기는 11월 13일 새벽 4시에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김현희는 비행기에서 내내 잠만 잤다. 그녀가 김승일의 동반자 역할이었기 때문에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부다페스트는 헝가리의 수도였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자 부다페스트 북한 대사관 지도원이 기다리고 있다가 초대소로 데리고 갔다. 김현희 등은 그 초대소에서 여장을 풀고 쉬었다.
“우리는 오스트리아 빈으로 갈 것입니다.”
부다페스트 대사관의 지도원이 말했다. 김현희는 왜 이렇게 긴 여정을 짜고 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것이 나중에 의심받지 않고 북한으로 돌아오기 위해 행적을 숨기는 것이라고 막연히 알았을 뿐이었다. 부다페스트에서는 사흘을 머물렀다. 오스트리아가 중립국이라고 하지만 동유럽과 다른 서방이었다. 그들은 빈으로 입국할 계획을 세우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한 일은 부다페스트 지도원과 김승일이 했기 때문에 김현희는 시내를 관광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돌아다닐 수는 없었다. 헝가리 말도 잘 몰랐고 임무 수행 중이라는 사실 때문에 어깨가 무거웠다.
부다페스트는 아름다운 도시였다. 도시 곳곳에 중세의 아름다운 건물들이 있고 공산국가인데도 관광객들이 자유롭게 돌아다녔다. 김현희는 탈출 경로까지 상세하게 계획을 세웠으나 살아서 돌아올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불안했다.
“동무들, 처음 계획은 비행기로 빈에 들어가려고 했으나 계획이 바뀌어 자동차로 들어가기로 했소.”
11월 17일 비행기를 타고 빈으로 입국하려던 계획을 취소했다. 지도원과 김승일은 머리를 맞대고 다시 상의했다. 어디론가 계속 전화를 걸기도 했다. 그리하여 최 과장과 최 지도원은 기차로, 김현희와 김승일은 자동차를 타고 오스트리아로 들어가기로 했다. 계획이 수시로 바뀌었기 때문에 김현희는 더욱 불안했다. 부다페스트 북한 대사관 지도원의 차 벤츠를 타고 국도를 달렸다. 지도원이 외교관이었기 때문에 좋은 차를 탈 수 있었다. 지도원이 운전하는 벤츠는 쾌적하고 차창을 스치는 풍경은 이국적이고 아름다웠다. 헝가리가 동유럽의 가난한 나라이기는 했으나 남루한 북한보다는 훨씬 살기 좋은 것 같았다.
이내 오스트리아 국경에 도착했다. 국경 검문소가 보이자 김현희는 다시 긴장이 되었다.
“동무, 너무 긴장하지 마시오.”
김승일이 김현희를 돌아보고 말했다. 국경검문소의 입국은 너무나 간단했다. 그들은 여권만 확인하고 바로 통과시켰다.
“이제 북한 여권을 반납하시오.”
부다페스트 지도원이 말했다. 김승일과 김현희는 북한 여권을 반납했다.
“여러분의 여권이오.”
부다페스트 지도원이 나누어 준 여권은 그녀의 이름이 하치야 마유미로 되어 있는 것이었다. 김현희는 오스트리아로 들어가면서 더욱 긴장했다. 오스트리아는 헝가리와 달랐다. 헝가리는 가난한 동유럽 국가였으나 오스트리아는 부유하고 아름다웠다. 오스트리아의 수도 빈으로 가까이 갈수록 집들이 아름답고 주민들도 행복해 보였다.
▲ 1988년 1월 15일자 <동아일보> 보도. ‘마유미는 북한외교관 딸 김현희’라 알리고 있다. |
부다페스트 지도원이 트렁크에서 가방을 꺼내주고 말했다. 김승일이 그와 굳게 악수를 나누었다. 김현희는 가볍게 목례를 했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내가 호텔을 예약하고 올게.”
김승일은 김현희를 역에서 기다리게 하고 호텔을 예약하러 갔다. 김현희는 빈의 남역 앞에서 기다렸다. 역이라 많은 관광객들이 오가고 있었다. 빈은 예술의 도시답게 건물이 고풍스럽고 사람들이 활기에 넘치고 있었다. 옷차림이 화사하고 얼굴 표정도 근심 하나 없이 밝았다. 김현희는 마치 별세계에 와 있는 듯한 기분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암팍크링호텔을 예약했으니 가지.”
이내 김승일이 돌아왔다. 김현희는 김승일을 따라 암팍크링호텔로 갔다. 호텔에서 보는 빈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김현희와 김승일은 긴장과 피로 때문에 오후부터 휴식을 취했다.
11월 19일 아침 10시 김현희와 김승일은 오스트리아 항공사에 가서 빈발 베오그라드, 베오그라드발 바그다드 경유, 아부다비 경유, 바레인으로 이어지는 항공권 예약을 했다. 이것은 위장 탈출을 위한 경로였다. 그들은 철저하게 일본인 행세를 했다.
11월 20일에는 알 이탈리아 항공사에 가서 아부다비발 요르단 암만 경유, 로마행 비행기 티켓을 구입했다. 이것은 실제로 탈출하는 경로였다.
정리=이수광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