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매출 고전’ 화장품·유통업계 현지 기업 인수…‘IRA 적용’ 자동차 부품업체 현지 공장 건설
화장품업계는 중국에서 벗어나 북미를 공략하고 있는 대표적인 업계다. 코로나19로 인한 중국의 봉쇄정책, 중국 자국 브랜드 제품 소비 증가 등으로 우리나라 화장품 인기는 떨어졌다. 아모레퍼시픽의 지난해 중국 판매법인 매출은 7648억 7600만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5% 감소했다. 해외시장에서 중국의 비중이 큰 LG생활건강의 작년 중국 매출도 9073억 원으로 전년보다 31.8% 감소했다. 국내 화장품 기업들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북미시장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대한화장품산업연구원에 따르면 미국은 2021년 기준 화장품 시장 규모가 1026억 2700만 달러에 달하며, 중국 다음으로 우리나라 화장품이 많이 수출되는 나라다. 2018년부터 2021년 5월까지 국내 화장품의 북미 수출액은 약 87% 증가했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시장을 다각화하려는 차원에서 북미시장을 공략하고 있다”며 “지난해 북미 쪽은 두 자릿수 이상 성장했다”고 말했다. 이동순 아모레퍼시픽 대표는 지난 3월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해 성과가 더디더라도 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중국 이외 아시아와 북미‧유럽 등에서 신시장을 개척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 “진정한 글로벌 명품 뷰티 회사로 도약하기 위해 글로벌 최대 시장인 동시에 트렌드를 창출하는 북미시장에서 사업 확장을 지속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화장품 기업들은 인수합병을 통해 북미시장 공략에 나섰다. 아모레퍼시픽은 미국 화장품 회사인 타타스 내추럴 알케미를 지난해 인수했다. LG생활건강은 △2019년 8월 미국 ‘더 에이본 컴퍼니’ 1450억 원에 인수 △2020년 피지오겔 아시아‧북미 사업권 1912억 원에 인수 △2021년 헤어케어 브랜드 알틱폭스를 보유한 보인카 지분 56% 1164억 원에 인수 △2022년 미국 화장품 브랜드 더크렘샵 지분 65%를 1525억 원에 인수했다.
하지만 아직까지 눈에 띌 만한 성과는 보이지 않는다. 아모레퍼시픽이 인수한 타타스 내추럴 알케미는 인수 첫해부터 적자를 냈다. LG생활건강은 인수합병 후 북미 매출이 점점 증가해 지난해 5775억 원을 기록했지만, 인수합병에 6000억 원을 넘게 투자한 것치고 약하다는 평가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타타스 내추럴 알케미는 일시적으로 적자를 기록했고, 이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있지 않다”며 “중‧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미국에서 마케팅 전략을 짤 예정”이라고 말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국내보다 해외에 브랜드를 알리고 정착하는 게 훨씬 어렵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며 “아직 인수합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과에 대해 평가하기는 이른 것 같다”고 말했다.
유통‧외식업계도 북미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이마트는 1997년 상하이를 시작으로 중국 내 매장을 26개까지 운영했다. 매년 영업적자를 기록하다 2016년 사드 배치로 인한 중국 정부의 보복성 조치로 중국 내 사업이 어려워지며 2017년 사업을 모두 철수했다. 현재 이마트는 북미, 몽골, 베트남 등 다른 지역으로 눈을 돌려 해외사업을 하고 있다. 이마트 관계자는 “미국 식료품 시장은 세계 최대 규모로 약 8024억 달러(약 918조 원)에 달하며 코로나19 이후 안정적으로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상한다”며 “상대적으로 규제가 없고, 무한 경쟁이 펼쳐지는 선진국 시장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말했다.
이마트는 현지 기업 인수를 통해 북미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북미 시장에 빠르게 안착할 수 있고, 현지 유통망도 그대로 흡수할 수 있다는 게 이마트 관계자의 설명이다. 운영은 미국 법인에서 독립적으로 한다. 이마트는 중국에서와 달리 2018년 미국 진출 이후 2년 만인 2020년 연간 영업이익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2021년, 2022년에도 연속으로 매출이 증가했고 흑자를 유지하며 순항 중이다.
2015년 중국에 진출한 설빙은 중국 업체의 상표 도용으로 중국 내에서 가맹 사업이 어려워졌다. 2020년 중국 상표평심위원회가 중국업체의 악의적 상표선점을 인정했지만, 설빙은 현재 코로나19 상황과 정치적 상황 등으로 중국 내에서 영업을 중단한 상태다. 설빙은 올해 미국 시장 진출을 준비하며 해외 사업 확대에 나서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산호세 지역에 미국 1호점 오픈을 준비 중이며, 현재 인테리어 공사가 진행 중이다.
설빙 관계자는 “미국은 한식에 대한 이해도와 관심도가 매우 높은 시장이며, 특히 미 서부 지역은 소득 수준이 높고 날씨가 온화해 설빙의 메뉴가 현지인의 입맛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마스터프랜차이즈(가맹 사업자가 현지 기업과 계약 후 가맹점 운영권을 판매할 수 있는 권리 부여하는 것) 형태로 해외에 진출하고 있으며 현지 시장 상황과 문화를 잘 알고 있는 경영주와 함께 시너지를 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 부품 제조사인 삼기는 지난 3월 중국 자회사인 산동삼기기차배건유한공사(산동삼기)의 지분권을 처분한다고 밝혔다. 삼기는 국내 완성차 브랜드의 중국 시장 내 판매 부진과 미·중 갈등 지속,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등으로 중국에서 자회사를 철수하고 미국시장에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삼기 관계자는 “현재 미국 지자체와 협의가 완료돼 공사를 시작하고 있는 단계”라며 “미국에 삼기가 타깃으로 하는 고객사도 많아서 중국보다 더 수월하게 사업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미국이 지난해 8월 발효한 IRA법에는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를 구매할 때 전기차 보조금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자동차업체들의 북미 내 전기차 생산이 많아지면 자동차부품 제조사들도 북미시장 진출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삼기 관계자는 “주 고객사인 현대차의 현지 물량을 대응하기 위해 현대차 미국 공장 부지 근처에 삼기 공장을 짓고 있는 중”이라고 전했다.
여러 요인으로 추후 중국 시장에서 사업을 고려하지 않는 기업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기업들은 중국을 포기할 수 없는 시장이라고 말한다. 아모레퍼시픽 관계자는 “중국시장은 여전히 중요하고, 현재 중국에서도 매출 성장을 위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설빙 관계자는 “한·중 간 정치적 이슈나 상표 이슈 등 부정적인 부분이 사라지고, 현지에서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은 프랜차이즈 파트너사가 있다면 긍정적으로 추후 중국 진출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기업 입장에서는 정치적인 문제가 하루 빨리 해결됐으면 한다”며 “기업들이 중국에서 활발히 활동할 수 있어야 할 텐데, 현재 상황이 안타깝다”고 아쉬워 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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