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SCO홀딩스 소액주주 대표로 표 대결 나서기도…“모든 주주 위한 캠페인 벌여야 돈도 벌 수 있어”
4월 1일 남양유업 감사로 신규 선임된 심혜섭 변호사의 말이다. 심 변호사는 논란 많던 남양유업을 바꾸겠다는 행동주의 펀드 ‘차파트너스’가 추천해 감사로 선임됐다. 심 변호사는 비교적 젊은 나이인 43세에 남양유업을 바꿀 감사로 선임되면서 언론에 주목받기도 했다.
심혜섭 변호사는 최근 남양유업 감사로 선임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투자 업계에서는 그보다 가치투자 전도사로 더 유명하다. 심 변호사는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한 뒤 사법시험에 합격했고, 법무법인 세종 등 대형 로펌에서 근무했다. 이후 2014년 투자에 관심이 커지면서 직접 투자와 함께 소수주주권 행사 등을 대리하는 개인 법률사무소를 운영 중이다.
특히 심 변호사는 최근 KISCO홀딩스 주주연대에 힘을 실어 주주총회에서 표 대결에 나섰다가 미세한 차이로 패한 바 있다. 4월 4일 일요신문은 최근 거세게 부는 주주행동주의 태풍을 두고 심 변호사와 얘기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대형 로펌 변호사로 일하다 최근에는 ‘주주행동주의 최고 전문가’로 불린다.
“나는 투자를 좋아하는 아마추어 투자자다. 대형 로펌 다닐 때도 투자 관련 책을 즐겨 읽었다. 주주행동주의에도 관심을 두게 돼 2014년에 로펌을 나와 소수 주주권과 관련된 사건을 수임해 일하려 했다. 그런데 이 시장이 형성돼 있지 않아 이 아이디어는 실패했다. 대신 내 자금으로 투자하고 주주 대표 소송을 하거나, 회계 장부 열람 등사 가처분 신청 등을 했다. 변호사업보다는 투자자가 메인 업무가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투자 업계 사람도 많이 알게 되고, 책도 쓰고, 번역도 하고, 강의도 하게 됐다.”
―최근 주식 시장 메인 테마 중 하나가 주주행동주의다. 행동주의 펀드가 매수했다는 소식에 급등하는 종목들이 많다. 행동주의 바람이 거센 이유가 뭔가.
“주주행동주의는 매년 더 커지는 게 느껴진다. 먼저 2020년 12월 본회의를 통과한 감사위원 분리 선출 제도가 있다. 이 제도가 통과되면서 감사위원이 되는 이사를 선임할 때 최대 주주라고 하더라도 3% 의결권만 행사하게 됐다. 이에 따라 일반 주주가 연대하면 대주주를 표 대결에서 이길 수 있는 가능성이 생겼다. 다만 처음에는 감사위원 3명을 모두 분리 선출하는 안이었는데, 1명만 분리 선출로 바뀌어 통과되면서 실망도 했다. 그런데 기존 이사회와 이질적인 존재가 1명이라도 들어가면 그 효과가 엄청났다. 두 번째는 기술 발전이다. 다른 주주 의결권을 위임받기 위해서 과거에는 엄청난 노력을 해야 했다. 명부를 받아 일일이 집 앞에 찾아가야 했다. 집에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았고, 낯선 남자 방문에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였다. 그런데 최근 대표적으로 비사이드와 같은 의결권을 위임해주는 서비스가 나왔다. 클릭 몇 번이면 자신의 의결권을 위임할 수 있게 됐다. 세 번째는 투자자의 인식 변화다 상장사들은 원래부터 물적분할, 인적분할, 불공정합병을 해 왔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젊은 투자자들이 가세했다. 인터넷과 유튜브의 발전으로 몇몇 메이저 언론이 여론을 주도할 수 없게 되었기에 의식수준이 크게 높아졌다. 업계에서도 이런 배경 때문에 주주행동주의를 하겠다는 펀드나 개인이 많아지고 있다. 내년이면 올해보다 두 배 많은 행동주의 캠페인이 나타나리라고 본다.”
―행동주의 캠페인이 많이 시도되고 있지만, 감사위원 선임에 실패하거나 표 대결에서 패배하는 경우도 많다.
“최근 행동주의 펀드나 소액주주 운동 일환으로 감사위원을 두고 표 대결에 갔다가 부결됐다며 실패라는 얘기도 나오는데, 현실과 다르다고 생각한다. 행동주의 목적은 무엇보다 주주환원을 더 하라는 요구다. 감사위원 선임 등으로 표 대결에 갔다는 것만으로 이사회 측에서는 엄청난 부담감을 느끼게 되고, 그에 따라 당초 캠페인이 목적한 주주환원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게 된다. 만약 그런 캠페인이 벌어졌음에도 최대 주주가 주주환원율을 올리지 않으면 내년에 또 하면 된다.”
―최근 표 대결에 나선 KISCO홀딩스에는 어떻게 관심 두게 됐나.
“내가 가치투자 관련 강의를 하면서 케이스 스터디의 사례로 든 회사 중 하나가 KISCO홀딩스다. 이 회사는 현금성 자산도 많고, 이미 주주연대 카페도 구성돼 있고, 대주주도 꽤 도덕적인 편이라고 생각했다. 국내기업 최대 주주는 뗐다 붙였다 하는 물적분할, 인적분할, 합병 등 자본거래 방법으로 차익을 크게 누린다. KISCO홀딩스 대주주를 좋게 본 건 이런 방법은 쓰지 않았다는 점이다. 더군다나 쌓아 놓은 현금이 엄청난데 사옥 하나 없다. 2021년과 2022년에 대규모 자사주 매입과 소각을 하기도 했다. 이 정도면 주주환원을 하는 방법이 서툴 뿐 태도는 갖추고 있다고 봤다. 그런데 강의에서 소개하고 나니 강의 수강생 가운데 KISCO홀딩스에 투자한 사람이 많아졌다. 이분들이 카페 운영진으로도 대거 합류했다. 그래서 나도 힘을 실어주기로 했고, KISCO홀딩스 감사위원 선임안이 올라간 것이다.”
―KISCO홀딩스 관련 주주 캠페인을 벌였지만, 심 변호사가 KISCO 감사위원이 되는 안건이 표 대결에서 미세하게 패배했다.
“이사회 안이 322만 주, 주주연대 안이 320만 주였다. 비사이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서만 420여 명, 전자투표나 서면위임장, 현장투표까지 더하면 600여 명이 넘는 주주들이 주주연대에 힘을 실어줬다. 단 2만 주 차이였는데 돈으로 따지면 약 4억 원 정도 차이였다. 패배와 별개로 어쩌면 최선의 결과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주주행동주의는 주주환원율 상승이지, 회사와 싸우겠다는 게 아니다. 이번 미세한 패배로 회사는 체면을 살렸고. 주주들은 힘과 의사를 보여줬다. 앞으로 경영진도 주주를 신경 쓸 수밖에 없게 됐다. 그렇다면 목적 달성이라고 본다.”
―행동주의 투자자이자 가치투자자로서 어떤 기업에 주목하나.
“나 같은 저평가 가치투자자들은 PBR(주가순자산비율)이 낮고, 부채비율이 얼마나 낮은지를 보통 본다. PBR 중에서도 현금 자산주와 부동산 자산주는 다르다. 부동산 자산주는 주주환원을 위해 부동산을 팔아야 하는데, 이 과정이 경기 영향을 받는 데다 오래 걸리고 과정도 쉽지 않다. 그에 비해 현금은 주주 환원하기 매우 쉬운 구조로 돼 있고, 고금리 시대에 더 빛을 발할 자산이라고 생각한다. 그 외에도 기업이 장기적으로 존속할 수 있는 구조인지, 자본이 효율적으로 배치됐는지, 최대 주주 도덕성은 어떤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다.”
―논란 많은 남양유업 감사로 선임됐다. 과정은 어땠나.
“홍원식 남양유업 회장과 한앤컴퍼니의 주식 양도 소송 재판이 너무 흥미로워 공판마다 방청을 갔다. 공판 후기를 글로 적기도 했다. 차파트너스 측에서 이를 보고 감사에 관심 있냐고 물어 수락하게 됐다. 감사나 감사위원은 2곳까지 일할 수 있기 때문에 KISCO홀딩스와 남양유업 두 곳에서 감사위원과 감사 선임안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2심까지 한앤컴퍼니가 승소했고 내용을 들여다봐도 대법원에서 뒤집어지기 매우 어려운 구조다. 이미 대주주가 떠날 것이 확정적인 상황에서, 이론적으로 볼 때 이들이 주주가치를 높일 인센티브를 가지고 있지 않고 단기적인 사익 추구로 기울 유인이 크다. 그렇기 때문에 대법원 선고로 대주주가 바뀔 때까지 감사로서 대주주를 감시해야 할 의무를 충실히 다하고자 한다.”
―남양유업은 불매해야 할 기업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매년 적자가 나고 있는데 주인이 바뀌면 기업도 바뀌리라 보나.
“남양유업과 대주주는 분리해서 봐야 하는데 동일체처럼 인식된다. 수십 년 동안 일해 온 남양유업 임직원은 무슨 잘못인가. 남양유업은 충분히 턴어라운드(흑자전환) 가능하다고 본다. 비용을 통제하고, 효율적으로 자본을 배치하면 가능성은 높다. 단적으로 남양유업 본사는 도산 사거리에 있다. 본사 주변에는 슈퍼카 전시장이 있는데 이곳이 식품 사업 본사가 있을 자리인가. 지하철도 멀고 고급음식점이 즐비하기에 직원들도 불편하리라 생각한다. 홍원식 회장은 직원 복지를 위한 것이라 하는데, 비용도 줄이고 직원 복지도 희생시키지 않을 방법이 있다고 본다. 또한, 주주들을 신경 쓰지 않았던 나쁜 거버넌스에서 좋은 거버넌스로 바뀌는 과정에서 기업 가치도 크게 상승하리라고 생각한다.”
―불매운동을 할 만큼 이미지가 안 좋았던 남양유업이다. 이름을 바꾸는 등 파격 조치를 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온다.
“이 부분은 내가 판단할 일은 아니다. 다만 내 개인적인 생각을 얘기하자면 이름을 바꾸고, 남양유업 존재를 없애는 건 좋은 선택이 아니라고 본다. 수십 년 동안 써오면서 인지도가 충분한 상태라면, 그 인지도를 좋은 이미지로 개선하는 게 낫지 않겠나. 남양유업을 홍 회장 일가와 철저히 분리하고, ‘남양유업은 대주주와 이별하면서 바뀌었다. 다른 회사다. 사랑해주세요’라고 열심히 얘기하는 편이 좋다고 생각한다.”
―주주행동주의를 두고 ‘소란을 피워, 변동성만 키우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있다.
“국내 거버넌스 구조가 후진적인 데다 글로벌 스탠더드로 보면 황당한 수준이라, 이런 얘기가 한가하게 들리기도 한다. 그런데도 답변하자면 주가가 오르는 건, 상속세 등 일부 대주주 세금 말고는 회사 전체에 긍정적인 영향밖에 없다. 자본을 조달할 때도 주가가 높을 때는 저비용으로 조달할 수 있고, 회사를 인수할 때도 회사 주가가 높으면 자사 주식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싸게 인수할 수 있다. 또한 ‘주주환원율을 높이라’는 주주행동주의도 투자법 가운데 하나다. 돈 벌기 위해 행동주의를 한다고도 비난하는데, 돈 벌기 위한 건 당연한 거다. 물론 주주환원이나 주주가치제고를 목적으로 하지 않고 ‘주주행동주의 캠페인 자체’를 목적으로 하는 건 문제가 있다. 이건 ‘캠페인이 화제가 돼 주가가 오르고, 오르면 팔겠다’는 식의 사이비 주주행동주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욱 캠페인 내용이 중요하다. 다른 주주를 희생시켜 ‘나만 돈 벌겠다’는 캠페인은 결과적으로 성공할 수 없다. 모든 주주가 돈 벌기 위한 캠페인을 벌여야 돈도 벌 수 있게 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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