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소인 “납품계약 안 지켜 회사 망했다”…장수산업 “다른 소송 합의 유도 위한 명예훼손이자 무고”
장수돌침대는 대한민국 돌침대 업계에서 가장 인지도가 높은 브랜드다. 최창환 장수산업 회장은 출산 후유증으로 고생하던 부인의 건강을 회복시키려는 목적으로 돌침대를 제작했다. 장수돌침대 신화의 시작이다. 돌침대에서 건강을 회복한 부인 장순옥 씨는 장수산업 대표이사가 됐다. 2021년 기준 장수산업 연 매출액은 521억 원이다. 강소기업 반열에 오른 셈이다.
건강침대 업계에선 장수돌침대 브랜드 자체가 가장 강력한 흥행 보증수표로 통한다. 돌침대 업체에 온수조절기를 납품하던 A 씨도 같은 생각을 갖고 있었다. 2014년 온수조절기 업체를 운영하던 A 씨 부부에겐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건강침대 업계를 접수한 장수돌침대에 온수조절기를 납품할 기회를 잡았던 까닭이다. 당시 시가 기준으로 연 10억 원에 달하는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건이었다.
그 뒤로 9년이란 세월이 흘렀고, A 씨는 저신용자가 됐다. 올해 A 씨는 장수산업을 상대로 법적 분쟁에 돌입했다. 장순옥 장수산업 대표를 사기 혐의로 고소한 A 씨는 “억울하다”면서 “장수산업과 계약 이후 모든 것을 잃었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이 확보한 고소장에 따르면 “A 씨는 장순옥 대표로부터 온수조절기를 순수 금형비만 받고 넘기면 해마다 온수조절기 2만 개(당시 시가 9억 9000만 원 상당) 이상을 발주하겠다는 이야기에 속아 금형비를 헐값에 넘긴 피해자”라면서 “장 대표는 온수조절기를 해마다 2만 개 이상 발주할 의사와 능력 없이 A 씨를 기망해 이득을 취한 가해자”라고 주장했다.
건강침대 업계 관계자는 “온수조절기는 온수매트 온도를 조절해주는 핵심 부품이다. 온수조절기 기술력에 따라 온수매트 퀄리티가 달라진다”며 “금형은 온수조절기를 만드는 틀이다. 사실상 온수조절기 기술력을 함축하고 있는 물건이 금형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고소장에 따르면 A 씨 측은 “오랜 시간에 걸쳐 개발한 온수조절기를 장수돌침대에 납품하려고 협의하던 중 장 대표로부터 온수조절기를 해마다 2만 개 이상 발주하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장수돌침대에 온수조절기 금형을 순수 금형비 6050만 원에 양도하기로 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금형비엔 개발비, 디자인비, 인건비 등이 포함되지 않았다는 것이 A 씨 측 주장이다. A씨 측이 주장하는 고소 배경은 이렇다.
A 씨는 장수돌침대에 온수조절기 금형을 양도한 뒤 제품공급계약서에 따라 온수조절기 2만 개 납품을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그러나 장수산업이 2015년 발주한 온수조절기 수량은 500개가 채 되지 않았다. A 씨 측에 따르면 장수산업은 2016년에 계약 내용대로 온수조절기 2만 개를 발주하겠다고 약속했다. A 씨는 본인 소유 아파트를 매각해 온수조절기 납품 준비를 했다. 그러나 2016년 장수산업이 발주한 온수조절기 물량은 2개였다. 결국 A 씨가 운영하던 기업은 폐업했다.
A 씨 부부는 부인 명의로 기업을 다시 차렸다. 장수산업과 인연이 또 이어졌다. A 씨 측에 따르면 2017년 장수산업은 A 씨 부부에 온수매트 완제품 1만 개 이상을 발주하겠다고 했다. 이후 초도발주에 해당하는 온수매트 1000장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장수산업은 초도발주 물량조차 다 인수해가지 않았다. 2018년경 장수산업과 A 씨 부인은 다시 계약서를 작성했다. 온수매트 완제품으로 2만 5000장을 발주하겠다는 내용이었다.
A 씨 부부는 전세금을 빼서 온수매트 완제품 2만 5000장 납품 준비를 했다. 그러나 장수산업이 인수해간 온수매트 수량은 5000장이 채 되지 않았다. 계약이 정상적으로 이행되지 않으면서 A 씨 부부가 운영하는 기업은 막대한 빚을 떠안게 됐다. 이에 A 씨 부부는 장수산업에 “회사를 인수해 달라”고 요청했다.
장수산업 측은 발주를 줄 테니 기다리라고 했다. A 씨 부부는 다시 장수산업 발주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이 됐다. A 씨 부부는 회사 운영을 위해 부모 소유 시골 땅까지 매각했다. 자체적으로 다른 회사를 접촉해 투자를 유치했다. 그러나 장수산업 측이 ‘투자를 받으면 더 이상 거래하지 않겠다’고 해 투자유치는 무산됐다고 한다.
얼마 지나지 않아 A 씨 부부가 운영하던 기업은 또 폐업했다. A 씨 부부는 장수산업 발주를 기다리며 자가를 팔고 전세, 월세를 전전했다. 현재 A 씨 부부는 폐농가에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1년 A 씨 부인은 장수산업에 보낸 내용증명에서 본인의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장수산업과 거래를 시작한 7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빨리 거래를 끊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한다. 하지만 당시엔 몰랐다. 장수산업이라는 대한민국 명품브랜드 회사가 이럴 줄 몰랐다. 어찌됐든 돈은 못 벌어도 직원들과 밥은 먹고 살 줄 알았다. (중략) 그동안 장수산업은 운영하던 회사와 가족들의 유일한 희망이었다. 이제는 잃을 것도 어떤 희망도 없다. 저희 가족 재산이라고는 오로지 숨 쉬고 있는 몸이 전부다.”
장수산업 고위 관계자는 4월 6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A 씨 측이 장순옥 대표를 고소한 건과 관련해 “무고이자 명예훼손”이라면서 “관련 내용에 대해 상세하게 진술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장수산업 측은 “A 씨 측이 회사 등기를 바꾸면서 장수산업 및 기타 영세업자들에 대한 미수금을 지급하지 않고 있다”면서 “A 씨 측이 합의를 유도하기 위해 형사고소와 언론제보 등을 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취재에 따르면 장수산업은 2021년 A 씨를 상대로 물품대금 청구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은 앞선 A 씨 측 주장에 따른 일련의 사업들과는 별개의 건인 것으로 파악됐다. 2022년 5월 12일 서울중앙지법은 A 씨(피고)에게 1억 7896만 1500원을 장수산업(원고)에 지급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장수산업이 승소했다. 법원은 A 씨가 구체적 답변서를 제출하지 않았고, 변론기일에 불출석한 것을 자백간주로 봤다.
기사 내용과 관련해 장수산업 측은 4월 7일 “2014년 계약 건은 S 사(A 씨가 운영하던 기업)가 재정적으로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장수산업이 금형을 매입해 자금을 확보하면 S 사가 온수매트를 생산할 수 있게 돕기 위한 계약이었다”면서 “계약서 상 수량은 2만개로 표시했으나 상호 합의하에 발주량을 조절할 수 있는 조항 또한 명시돼 있는 유동적인 계약이었다”고 해명했다.
장수산업은 “S 사는 장수산업이 ‘2016년부터 계약 내용대로 발주하겠다’고 주장하지만 그런 사실이 없다”면서 “2016년엔 라이센스계약이 체결돼 S 사가 장수돌침대 브랜드를 빌려 영업·판매를 진행했기 때문에 발주 방식으로 업무가 진행되지 않았다”고 했다.
장수산업은 “2016년 당시 라이센스 계약과 별도로 S사에 온수조절기와 온수매트세트를 발주하고 발주대금을 지급했다”면서 “S 사가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사정을 듣고 더 단가가 높은 온수매트세트를 발주했다”고 덧붙였다.
장수산업은 “2018년 물품공급계약서에 명시된 발주량 25000개가 기재된 것은 사실”이라면서 “해당 수량은 연간 판매 목표치를 설정해놓은 것에 불과하다. 그래서 계약서 상 계약기간이 정해져 있지 않다. 해당 수량은 의무 발주수량이 아닌 목표치 발주 수량으로 해석하는 것이 계약서 전체 내용과 부합한다”고 반박했다.
장수산업은 “오히려 A 씨가 운영하는 S 사가 장수산업 선입금을 받았음에도 일방적으로 폐업하여 미납 선수금이 발생했고, 물품대금청구소송을 청구해 승소했다”면서 “S 사가 폐업과 동시에 AS와 AS 부품 공급을 중단해 장수돌침대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됐다”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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