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23일 사망한 전직 대통령 전두환 씨가 '부활'했다. 그의 차남 전재용 씨의 둘째 아들 우원 씨가 할아버지인 그를 소환했다. 우원 씨는 불미스러운 가족사와 함께 할아버지 전두환 비자금 의혹까지 폭로를 이어가고 있다. 전두환 씨는 1997년 내란‧뇌물수수 등 혐의로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205억 원 확정판결 받았다. 하지만 "통장에 29만 원밖에 없다"며 납부를 차일피일 뭉갰다. 애걸복걸하듯이 검찰은 1282억 2200만 원을 추징했다. 하지만 전 씨가 눈 감기 전까지 납부하지 않은 추징금은 922억 7800만 원. 추징 집행률은 58% 수준. 그런데 손자인 우원 씨가 3월부터 양심고백을 이어가며 "(전두환의 연희동 자택) 침실 벽에 돈 봉투가 가득 담긴 가방들이 여러 개 있었고 돈 봉투가 정말 두꺼웠다"고 전했다. 전두환 씨가 쓰고 남은 비자금에 대해선 "(큰아버지) 전재국 씨에게 가장 많이 갔을 것"이라고도 했다. 형사소송법상 당사자가 사망하면 미납 추징금 집행 절차도 중단된다. 전 씨가 사망했기 때문에 현재로선 추가 추징이 여의치 않다. 그럼에도 전 씨 일가의 '검은 돈' 흐름은 끝까지 추적할 필요가 있다. 국회에서 '전두환 추징3법'이나 '독립몰수제'를 통과시킬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추가 추징이 가능하다. 이에 일요신문은 전두환 일가 재산을 다시 면밀히 들여다봤다. 금고나 침실 벽에 숨겨둔 현금 뭉치나 주식, 채권, 예금 등 금융자산은 확인할 수 없었다. 그나마 전두환 일가가 소유하고 있는 법인과 부동산은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번 취재를 통해 전두환 일가 소유 법인과 부동산에 변화의 꿈틀거림이 있었음을 확인했다. 특히 법인 운영 과정에서 위법으로 의심할 만한 정황도 새로 포착했다. 일요신문은 전두환 일가의 법인들에 무슨 일이 있었고 부동산에 어떤 변동이 있었는지 연속 보도한다.[일요신문] 전직 대통령 고 전두환 씨 첫째 아들 전재국 씨 실소유 회사 사이 수상한 내부거래 내역이 포착됐다. 회사 공금 사적 유용이 의심되는 정황이다. 횡령 또는 배임 의혹이 사실이라면 전재국 씨는 전두환 씨 추징금 완납 약속은 10년째 지키지 않으면서 위법 행위로 재산을 불린 셈이다.
전재국 씨는 수상한 내부거래를 이어오면서 추징금 집행 제도를 농락한 정황도 있다. 그는 가족을 대표해 2013년 대국민 사과를 하면서 전두환 씨에게 부과된 추징금을 모두 내겠다고 공언했다. 전재국 씨가 내놓은 재산에는 도서 유통업체 '북플러스' 주식 20만 4000주(2013년 기준 지분율 51%)도 포함됐다. 북플러스는 일요신문이 포착한 수상한 내부거래 의혹 중심에 있는 회사다.
전재국 씨 북플러스 주식 20만 4000주는 공매를 통해 2019년 5월 유 아무개 씨에게 6억 1511만 1000원에 매각됐다. 그런데 전재국 씨는 2023년 현재도 북플러스 경영권을 유지하고 있다. 2019년 8월 유상증자로 최대주주 유 씨 지분율을 46.36%로 낮추면서다. 유 씨 지분을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전재국 씨 우호지분이다. 결국 전두환 씨 추징금 일부를 유 씨가 대신 내고, 전재국 씨는 북플러스를 통한 경제적 이익을 계속 누리고 있는 셈이다.
#전재국, 업무상 배임 혐의 피소…다른 실소유 회사에 돈 빌려주고 안 돌려받아
일요신문 취재 결과, 전재국 씨는 2022년 11월 북플러스 최대주주 유 씨로부터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당했다. 북플러스가 노인 의료기기 판매업체 '케어플러스'에 빌려준 1억 4800만 원을 2018년 대손상각 처리해 업무상 배임죄에 해당한다는 이유에서였다. 업무관련성이 없는 회사에 아무런 담보도 받지 않고 돈을 빌려줬다가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것이다. 대손상각은 회수가 불가능한 자금을 회계상 손실로 처리하는 것을 뜻한다.
케어플러스는 전재국 씨가 실소유했던 법인으로 추정된다. 케어플러스는 외부감사 대상이 아닌 작은 법인이라 지분 구조 파악이 어렵다. 다만, 전재국 씨 일가가 2018년 5월까지 소유했던 서적 출판업체 '시공사'가 케어플러스 지분 24.06%를 보유했던 사실은 확인된다. 북플러스 2018년 감사보고서에 케어플러스는 북플러스 특수관계자로 적시되기도 했다. 기업회계기준에 따르면 개인이 두 기업 중 한 기업을 지배하고, 다른 기업에 유의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면 두 기업은 특수관계에 있다.
케어플러스 이사진 다수는 전재국 씨 측근이다. 전재국 씨와 성균관대 동기로 알려진 김경수 씨는 2008년 2월부터 2013년 10월까지 케어플러스 사내이사를 지냈다. 김경수 씨는 북플러스 대표이사를 2008년 3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지내기도 했다. 이외에도 시공사, 리브로, 뫼비우스, 북허브, 서울북클럽, 지엘코리아, 파프리카미디어 등 전재국 씨 관련 법인 여러 곳에서 사내이사를 맡은 최측근이다.
케어플러스 감사를 2010년 5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지낸 김용진 씨는 2018년 3월 서점 운영업체 '리브로' 대표이사로 오른 인물이다. 리브로 최대주주는 전재국 씨다. 김용진 씨는 전두환 씨 대통령 재임 시절 청와대 경호실 직원이기도 했다. 김용진 씨는 2013년 검찰의 전두환 씨 일가 비자금 수사 국면에서 전재국 씨 미술품 관리인으로 지목됐다.
케어플러스는 북플러스에 빌린 1억 4800만 원을 갚지 않은 채 2019년 9월 주주총회 결의를 거쳐 법인을 해산했다. 그런데 서류상으로만 법인을 정리했던 것은 아닌지 의심되는 정황이 있다. 서울 마포구 용강동에 있던 케어플러스 중앙점을 네이버 지도 로드뷰로 검색해본 결과, 2022년 10월에도 케어플러스 간판이 남아 있었다. 휠체어 등 노인 의료기기가 건물 안에 놓인 모습도 보였다.
일요신문은 케어플러스 중앙점이 있었던 서울 마포구 용강동 건물을 4월 4일 오후 찾았다. 케어플러스 중앙점이 있던 자리에는 국내 한 신문사 영업소 개업 준비가 한창이었다. 인부들은 유리 외벽에 반투명 시트지를 붙이고 있었다. 건물 안 우편함과 층별 안내도에는 여전히 케어플러스 이름이 남아 있었다.
케어플러스가 북플러스에 돈을 갚을 여력이 정말 없었는지 의심되는 대목도 있다. 시공사는 2018년 감사보고서에서 같은 해 5월 전재국 씨 일가가 시공사 지분을 매각할 당시 시공사 역시 케어플러스 지분 24.06%를 매각했다고 밝혔다. 북플러스로부터 빌린 1억 4800만 원을 갚을 여력조차 없었던 부실기업 케어플러스 지분 24.06%에 대한 거래가 성사된 것이다.
#전재국 실소유 회사, 내부거래로 성장…감사보고서상 내부거래 내역 큰 차이
일요신문은 전재국 씨가 지분을 보유한 법인 중 외부감사를 받는 북플러스와 리브로 감사보고서 19년치(2004~2022년)를 전수 분석했다. 전재국 씨 일가가 2018년까지 소유했던 시공사 감사보고서 19년치(2004~2022년)도 전수 분석했다. 그 결과, 전재국 씨 실소유 법인 간 내부거래 내역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을 포착했다.
북플러스와 리브로는 특수관계자로 묶인다. 시공사도 2018년까지는 북플러스, 리브로와 특수관계로 묶였다. 북플러스는 리브로, 시공사 등 특수관계자와의 내부거래에서 상당한 매출을 올려왔다. 북플러스 전체 매출에서 내부거래 비중은 △2005년 44% △2006년 45% △2007년 44% △2008년 40% △2009년 33% △2010년 31% △2011년 18% △2012년 14% △2013년 14% △2014년 15% △2015년 16% △2016년 20% △2017년 18% △2018년 19% △2019년 16% △2021년 12% △2022년 9%였다. 초창기 내부거래로 자리를 잡은 뒤 회사가 성장하며 내부거래 비중을 점차 낮춘 양상이다.
그런데 내부거래 내역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전재국 씨가 최대주주로 있는 리브로와 전 씨가 실질적으로 경영권 행사 중인 북플러스의 감사보고서 내역에 꽤 차이가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리브로의 북플러스 상대 매출과 북플러스의 리브로 상대 매입 금액이 일치해야 하지만, 그렇지 않은 해가 대부분이었다.
2004년부터 2022년까지 19년 동안 북플러스와 리브로의 매출‧매입에 차액이 발생한 햇수는 무려 16년이었다. 단 2년 동안만 매출과 매입이 '일치'했으며, 2004년 한 해는 북플러스 감사보고서에 특수관계자 거래 내역이 나오지 않아 매출과 매입에 차액이 발생했는지 확인되지 않았다.
2013년의 경우 북플러스는 리브로로부터 매출 53억 3000만 원을 올렸다. 그런데 리브로는 북플러스로부터 33억 100만 원을 매입했다. 차액이 20억 2900만 원에 달한다. 북플러스가 리브로로부터 매입한 금액과 리브로가 북플러스를 상대로 올린 매출은 1100만 원으로 일치했다.
이 같은 북플러스와 리브로 내부거래액 차이를 2004년부터 2022년까지 합산하면 총 107억 5700만 원에 달한다. 연도별로 △2004년 알 수 없음 △2005년 13억 1800만 원 △2006년 19억 8000만 원 △2007년 47억 1300만 원 △2008년 4억 500만 원 △2009년 200만 원 △2010년 100만 원 △2011년 0원(일치) △2012년 800만 원 △2013년 20억 2900만 원 △2014년 1억 1100만 원 △2015년 100만 원 △2016년 1400만 원 △2017년 300만 원 △2018년 0원(일치) △2019년 1억 3100만 원 △2020년 200만 원 △2021년 3400만 원 △2022년 500만 원이었다.
시공사 역시 전재국 씨가 최대주주였던 시절 북플러스와 내부거래 내역에 차이가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2004년부터 2022년까지 북플러스와 시공사의 내부거래액 차이를 합산하면 총 43억 9100만 원에 달했다. 연도별로 △2004년 2000만 원 △2005년 4억 8600만 원 △2006년 23억 2300만 원 △2007년 1억 8600만 원 △2008년 1억 5100만 원 △2009년 1억 원 △2010년 1억 600만 원 △2011년 2억 7600만 원 △2012년 1억 1100만 원 △2013년 9500만 원 △2014년 1억 900만 원 △2015년 2억 2100만 원 △2016년 9700만 원 △2017년 9500만 원 △2018년 1500만 원이었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동안은 시공사의 미공시로 알 수 없었다. 북플러스는 시공사를 특수관계자에 포함시켰지만, 시공사는 그러지 않았다.
시공사와 리브로 내부거래 내역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2000년부터 2018년까지 19년 동안 두 회사의 매출‧매입 차액은 모두 5억 1200만 원이었다. 두 회사는 내부거래액 차이가 대부분 나지 않거나(0원), 소액이었다. 실례로 2006년 시공사는 리브로로부터 4억 8800만 원의 매출을 올렸다. 그해 리브로는 시공사로부터 4억 8800만 원을 매입했다. 시공사와 리브로의 내부거래액 차이는 △2000~2002년 0원 △2003년 1억 원 △2004~2008년 0원 △2009년 2억 9300만 원 △2010년 6600만 원 △2011년 2100만 원 △2012년 1200만 원 △2013년 700만 원 △2014년 0원 △2015년 800만 원 △2016년 400만 원 △2017년 100만 원이었다.
이처럼 북플러스와 리브로의 매출‧매입 차액은 107억 5700만 원, 북플러스와 시공사는 43억 9100만 원, 리브로와 시공사는 5억 1200만 원이었다. 이를 합산했을 때 전재국 씨 실소유 법인 세 곳에서 19년간 내부거래 과정에서 발생한 매출‧매입 차액은 모두 156억 6000만 원이다.
4대 회계법인 소속 한 회계사는 "감사보고서에 나온 주석만으로는 내부거래액에서 왜 차이가 났는지 알 수 없다. 손익계산서상 매출·매입까지 누락을 했는지 보려면 회사 내부자료가 필요하다. 북플러스, 리브로, 시공사 등 세 개 회사의 최대주주가 똑같고, 여러 해 동안 공시액에서 차이가 났다면 회사 내부자료를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특수관계자 거래의 매출·매입 차액이 중요성 기준금액 미만이면 문제의 소지가 없지만, 의도적으로 반영하지 않은 거라면 중요성 기준금액 미만이더라도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형 법무법인 소속이자 회계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감사보고서에 나온 것만으로 재무제표 작성, 공시에 위반이 있는지는 단정할 수 없다. 수익과 비용이 인식되는 시기, 비용처리 여부 등에 따라서 회사 간 회계처리도 충분히 차이가 날 수 있다"면서도 "만약 의도적인 공시 관련 위반이 있으면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이나 형법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금융감독원과 한국거래소는 북플러스, 리브로, 시공사의 감사보고서상 내부거래액 차이와 관련해 서로 책임을 미루며 마땅한 대답을 내놓지 않았다. 금융감독원은 "특수관계자 간 거래 공시는 자본시장법상 회사의 존립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자산 양수, 부도 등의 법정 공시 요인으로 보이지 않는다"며 "한국거래소에 문의해야 한다"고 답했다. 한국거래소는 "상장사가 아니라면 거래소가 알 수 없다"며 "비상장기업은 금융감독원으로 문의해야 한다"고만 답했다.
일요신문은 북플러스 현재 대표 권명학 씨, 2019년 9월까지 대표를 지낸 김경수 씨에게 수상한 내부거래와 관련한 해명과 반론을 듣고자 연락을 취하고 질의서를 전달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
특별취재팀=김지영·남경식·허일권·노영현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