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륜 상대·도어맨 입 막으려 거액 건네고 기업 문서 조작…모든 혐의 부인하는 트럼프 지지층 결집 가능성도
맨해튼 지방검찰청이 기소한 혐의는 마이클 코언 전 개인변호사가 청구한 내용을 허위로 기재한 혐의 11건, 입막음 비용 지불을 위한 수표 발행 혐의 11건, 회계 장부 허위 기재 관련 혐의 12건 등 총 34건이다. 이와 관련, 앨빈 브래그 맨해튼 지방검찰청장은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기간 동안 자신에게 불리한 정보를 유권자들에게 은폐하는 범죄행위를 저질렀다”면서 “이를 감추기 위해 반복적으로 기업문서를 위조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뉴욕주 법에 따르면 다른 범죄를 숨기려는 의도로 기업 문건을 위조하는 행위는 중범죄에 해당한다”고 못박았다.
쟁점은 코언이 트럼프의 지시를 받고 불륜 상대였던 스토미 대니얼스의 입을 막기 위해 페이퍼컴퍼니를 통해 13만 달러(약 1억 7000만 원)를 건넸고, 나중에 이 돈을 ‘트럼프그룹’을 통해 되돌려 받았는가에 있다. 실제 법원 서류에 따르면 트럼프그룹 임원들은 코언에게 13만 달러와 함께 세금을 대납해주고, 여기에 보너스까지 더해 총 42만 달러(약 5억 5000만 원)의 지급을 승인했다. 이 비용은 12개월 동안 매달 3만 5000달러(약 4600만 원)씩 나눠서 지급됐고, 회사는 이 비용을 회계 장부에 ‘법률자문 비용’으로 기재했다.
브래그가 집중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이 의혹이 사실이라면 엄연히 기업 문서 조작을 금지한 뉴욕주 법률을 위반한 행위이기 때문이다. 다만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기업 문서 조작 행위 자체는 경범죄에 속하지만, 선거법 위반죄로 묶일 경우에는 중범죄가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당시 트럼프는 대선후보였기 때문에 이 비용 지불이 선거자금법 위반에 해당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는 사건들은 어떻게 벌어졌던 걸까. 이번 기소와 관련해 가장 핵심이 되는 인물은 전직 포르노 배우인 대니얼스다. 본명은 스테파니 클리퍼드로, 트럼프와는 2006년 네바다주에서 열린 유명인 골프자선대회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대니얼스는 27세, 트럼프는 60세였다.
대회 당일 밤, 트럼프는 대니얼스를 저녁 식사에 초대했고 둘은 호텔 스위트룸에서 만나 함께 시간을 가졌다. 당시 상황에 대해 대니얼스는 ‘보그’ 인터뷰에서 “호텔 방에 도착했을 때 트럼프는 잠옷 차림이었다. 나는 당황해서 잡지로 그의 등을 치면서 어서 옷을 입으라고 말했다”라고 묘사했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보통 호텔 방을 생각할 때 들어가면 바로 침대가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 방은 그렇지 않았다. 마치 거대한 아파트 같았다. 식사를 하는 다이닝룸도 따로 있었다. 그래서 나는 그곳에서 잠시 어울리거나 식사를 하는 행동이 딱히 미친 짓처럼 여겨지진 않았다. 나는 그날 밤 그가 나를 유혹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둘은 식사를 하면서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었다. 문제의 사건은 대니얼스가 잠시 화장실을 이용하기 위해 자리를 뜬 후에 벌어졌다. 화장실에서 나와보니 트럼프는 속옷 차림이었고, 곧바로 대니얼스를 침대 위에 쓰러뜨린 후 겁탈했다. 대니얼스는 “트럼프는 나에게 ‘당신은 특별한 여성이다. 내 딸(이방카)이 떠오른다’라고 유혹했다”고 말하면서 “자신이 진행하던 TV쇼 ‘어프렌티스’에 나를 출연시켜 주겠다고도 약속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대니얼스에게 그날 밤의 성관계는 악몽으로 남았다. 그는 “기억 속에서 지우고 싶은 90초였다”며 비참한 심경을 토로했다.
대니얼스가 처음 트럼프와의 ‘그날 밤’을 폭로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2011년이었다. 당시 트럼프가 대선 출마를 모색한다는 소문을 듣자 언론에 자신의 이야기를 터뜨리기로 결심한 그는 연예주간 ‘라이프 앤 스타일’에 1만 5000달러(약 2000만 원)를 받고 인터뷰에 응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다.
인터뷰를 앞두고 정체불명의 한 남성이 “트럼프를 내버려두라”고 협박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니얼스는 2018년, CBS ‘60분’에 출연해 “그 협박범은 내가 입을 열면 나와 내 갓난 딸이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그렇게 폭로에 실패한 대니얼스가 다시 기회를 잡은 것은 2016년 대선 때였다. 선거를 불과 몇 주 앞둔 10월, 다시 폭로를 시도했지만 이번에는 코언으로부터 합의금 13만 달러를 받고는 입을 다물었다. 이와 관련, 코언은 2018년 이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르자 자신이 돈을 건넨 사실은 인정하되 트럼프와는 거리를 두었다. 코언은 “그건 내 돈이었다. 트럼프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면서 트럼프 몰래 본인이 단독으로 진행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그의 이런 행동은 그럴 만한 것으로 비쳤다. 2006년부터 2018년까지 12년 동안 트럼프의 개인 변호사로 일했던 코언의 충심은 주변 사람들에게 유명했다. ‘트럼프 해결사’라는 별명으로 불렸을 정도로 트럼프의 최측근으로 꼽혔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2018년 러시아 대선 개입, 탈세 의혹 등을 둘러싼 특검이 시작되면서 트럼프와의 우정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을 받으면서 곤란에 처했던 코언은 트럼프 측에 도움을 요청했다. 하지만 트럼프 측이 이를 뿌리쳤고, 결국 코언은 위증 혐의가 인정돼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만기 출소했다.
트럼프와 완전히 갈라선 코언이 연일 폭로전을 이어가기 시작한 건 그 무렵부터였다. 트럼프와의 대화 녹음 파일을 공개하는가 하면, 대니얼스에게 돈을 건네라고 지시한 사람이 사실은 트럼프였다고 주장했다. 따라서 현재 가장 앞장서서 트럼프를 저격하는 1인이 된 코언을 가리켜 미국 언론들은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된 셈이라고 말하고 있다.
트럼프의 조력자였다가 등을 돌린 건 코언뿐만이 아니다. 미 연예주간 ‘내셔널인콰이어러’의 모회사인 아메리칸미디어 전직 사장인 데이비드 페커도 마찬가지다. 한때 트럼프와 막역한 사이였던 페커는 대선 당시 트럼프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맡았다. 2015년, 트럼프의 당선을 돕기 위한 전략을 짜기 위해 트럼프타워에서 수차례 만남을 가졌고, 이 자리에서 페커는 “당신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퍼지기 전에 코언에게 주의를 주는 방식으로 선거운동의 눈과 귀 역할을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동시에 트럼프의 대선 경쟁자들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보도를 해주겠다고도 했다. 페커가 트럼프 취임식에 참석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런 특별한 관계 때문이었다.
남성지 ‘플레이보이’ 전 모델인 캐런 맥두걸의 입을 돈으로 막은 것도 이런 배경에서 나온 전략이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 10개월 동안 트럼프와 불륜 관계를 유지했던 맥두걸은 2016년 대선 당시 이 사실을 ‘내셔널인콰이어러’에 제보했다. 이에 비상이 걸렸던 트럼프와 코언, 그리고 페커는 누가 어떻게 맥두걸에게 합의금을 건넬지를 두고 여러 차례 회의를 했다. 결국 아메리칸미디어사가 다른 매체에 이야기를 팔지 않고, 입을 열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15만 달러(약 2억 원)를 건네기로 했고, 이 사실을 코언에게 사전에 알렸다.
훗날 아메리칸미디어사는 조사에서 이 폭로 내용을 보도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캐치앤킬(언론 매체가 기사 내용을 독점 구입한 후 보도하지 않음으로써 해당 인물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을 막아주는 행위)’ 관행에 따른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페커는 트럼프 선거캠프를 돕기 위해 그렇게 했다는 사실을 인정했고, 연방선거관리위원회는 2021년 페커와 아메리칸미디어사가 불법 선거자금을 기부한 것으로 판단했다. 다만, 페커가 코언 사건에 협조하기로 하면서 기소는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지금은 트럼프와 완전히 갈라선 페커는 얼마 전 대배심 앞에서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계획에 트럼프 본인도 직접 관여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트럼프 측이 입을 막기 위해 돈을 건넨 인물은 또 있었다. 2015년, 트럼프타워에서 도어맨으로 일하던 디노 사주딘은 당시 트럼프가 가정부와의 사이에서 혼외자식을 낳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아메리칸미디어사는 그의 이야기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사는 대가로 3만 달러(약 4000만 원)를 건넸다. 그리고 만일 그가 이야기의 권리를 다른 사람에게 넘길 경우에는 100만 달러(약 13억 원)의 벌금을 물어내야 한다는 내용을 계약서에 명시했다.
이처럼 기업 문서 조작과 선거법 위반이 한데 묶인 기소 형태는 전례가 거의 없기 때문에 재판 결과를 확신하기는 힘든 상태다. 현재 미국인들의 관심은 트럼프의 형량보다는 과연 이번 재판이 내년 대선 판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더 쏠려 있다.
기소는 됐지만 법적으로 대선 출마하는 데는 아무런 걸림돌이 없는 트럼프는 꿋꿋하게 대선 출마에 대한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자신을 가리켜 ‘정치적 희생양’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트럼프는 이를 통해 지지층을 결집하는 전략을 내세우고 있다. 지지자들에게 끊임없이 ‘저항하라’는 메시지를 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따라서 관계자들은 만일 트럼프의 이런 버티기 전략이 효과를 발휘할 경우, 형사 기소가 오히려 대권 가도에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만일 트럼프에게 무죄가 선고되거나 34건의 혐의 가운데 일부에만 유죄가 선고될 경우에는 두말할 것도 없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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