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가 되고 있는 서울시를 보자. 서울시의 공식 발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평균 서울지역 아파트 입주 물량은 4만 5499가구다. 올해는 3만 3338가구가 입주하는데 평균치보다 1만 2000가구가량 적다. 이 중 재개발, 재건축 정비사업 물량이 1만 8739가구에 달한다. 같은 입주 물량이라도 서울 입주 물량은 허허벌판에 짓는 수도권 신도시와는 다르다.
개발 이전에도 누군가는 살고 있었을 테니까 순수하게 늘어나는 ‘순증’을 따져야 한다. 재건축은 순증을 기존 가구 수의 30%로 본다. 100가구 짓는다면 30가구 더 늘어난다는 얘기다. 내년 입주 물량도 3만 8512가구로 이 중 정비사업 물량은 2만 2889가구다. 다만 대단지 입주 물량이 많은 강남권은 전세 시장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아파트 입주 물량이 늘면 전셋값은 입주 단지나 그 주변을 중심으로 크게 떨어진다. 전세 시장은 현재의 수급만을 반영해 가격이 결정되기 때문이다. 통계 분석 결과 특정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가 입주하면 입주일로부터 3~6개월간 집중적으로 충격을 준다. 하지만 입주 물량이 늘어도 매매시장에는 하락요인으로 작용할 뿐 큰 폭으로 하락하는 게 아니다. 하락의 한 요인일 뿐이다.
매매시장은 손실회피와 처분효과, 미래의 기대심리가 크게 작용한다. 오로지 현재의 수급을 반영하는 전세 시장과는 달리 매매시장은 현재부터 미래까지 전체 수급을 반영한다. 시장 참여자의 전망이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뜻이다. 매매시장은 입주 물량 못지않게 금리, 정책, 거시환경 변수 등을 다 함께 봐야 한다.
입주 물량이 폭탄급이 아닌 이상 물량 증가만으로 집값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생각할 경우 자칫 ‘단순 도식화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물론 전세 가격이 떨어져 전세가 비율(매매가격 대비 전세 가격 비율) 역시 낮아지면 갭투자가 줄고 결국 매매 수요 기반이 취약해진다. 역전세난이 계속되면 보증금을 못 돌려줘 세입자로부터 소송을 당할까 집사기도 겁이 난다. 가뜩이나 불황기에 입주 물량이 늘어나면 소화불량이 심해질 수 있다. 하지만 그 타격은 매매시장보다 전세시장에 더 심하게 입는다. 매매가격은 하락세를 띠겠지만 전세 가격만큼 떨어지지 않는다는 얘기다. 즉 입주 물량 증가와 역전세난은 수요를 줄여 집값을 떨어뜨리는 요인이지 곧바로 큰 폭의 하락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대도시 주택시장이 삶의 안식처라는 ‘홈’ 성격이 강했다면 많은 입주 물량은 매매시장에도 폭탄이 될 것이다. 실제로 실수요 중심의 지방에서 아파트 입주 물량이 몰리면 매매가격도 하락세를 면치 못한다. 지방이 입주 물량의 영향을 상대적으로 더 받는다.
하지만 서울이나 수도권처럼 아파트가 사고파는 투자재인 ‘하우스’ 성격이 강해지면 입주 물량은 가격을 결정짓는 하나의 요인일 뿐이다. 굳이 설명하자면 상대적으로 비중이 좀 큰 요인이라고나 할까. 그렇다면 입주 물량이 적으면 곧바로 집값이 올라갈까. 반드시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2011~2013년 입주 가뭄이었던 시절 서울과 수도권 아파트값은 큰 폭으로 떨어졌다. 지난해도 전국 아파트 입주 물량(25만 5353가구)이 역대 평균치보다 적었지만, 아파트값은 곤두박질쳤다. 우리나라 아파트는 전체 1200만 채 정도다. 한 해 전체 재고 물량의 2~3%인 입주 물량 변동만으로 수도권 아파트값 향배를 점치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요컨대 아파트 시장을 진단할 때 입주 물량 한 변수에만 염두에 두지 말고, 여러 변수를 종합적으로 고려하라는 얘기다.
박원갑 박사는 국내 대표적인 부동산 전문가다. 고려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와 건국대 부동산대학원 부동산학 석사, 강원대 부동산학 박사를 받았다. 한국경제TV의 ‘올해의 부동산 전문가 대상’(2007), 한경닷컴의 ‘올해의 칼럼리스트’(2011)를 수상했다. 현재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정책 자문위원이다. 저서로는 ‘부동산 미래쇼크’,‘ 한국인의 부동산 심리’ 등이 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전문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