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여 개국 여행을 통해 접한 선입견과 편견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지 고민한 결과물이 나왔다.
언론인 출신으로 정치평론가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는 임병식 서울시립대 초빙교수가 최근 인문기행서 '굿바이보이, 잘 지내지?'(비바체)를 상재했다.
작가는 무엇보다 승자와 강대국, 기득권 중심 사고를 성찰해 보자는 묵직한 의도를 갖고 있다. 피가 피를 부르고 증오가 낳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제국주의 그늘에서 몸살 앓는 라틴아메리카, 피 맺힌 강제 이주를 확인하는 중앙아시아를 비롯해 여러 나라를 일별했다. 이주노동자와 이주여성이란 창을 통해 우리를 뒤돌아보기도 했다.
임병식은 “독서와 대화, 여행은 아집과 독선에서 벗어나 인식 지평을 넓히는 유효한 수단”이라며 “이 가운데 여행만한 게 없다. 여행은 직접적이며 가슴 뛰는 경험이다”라고 말한다.
책 제목 '굿바이보이, 잘 지내지?'엔 어떤 사연이 담겨 있을까. 작가는 페루의 잉카유적 마추픽추를 터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인디오 소년을 아련한 눈길로 바라본다.
버스가 모퉁이를 돌 때마다 인디오 소년이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인디오 소년은 버스가 산 아래 도착할 때까지 “굿바이~”를 외쳤다. 다녀온 이들을 통해 들었던 ‘굿바이보이’였다. 처음에는 같은 복장을 한 여러 명을 모퉁이마다 배치한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한 명이 정상부터 산 아래까지 버스를 따라 달렸다. 이게 어떻게 가능할까 했는데 의문은 풀렸다. 인디오 소년은 자동차 속도에 맞추기 위해 직선으로 달려 다음 모퉁이에서 버스를 따라잡았던 것이다. 소년은 8자를 그리며 달리는 버스를 따라잡기 위해 가쁜 숨을 내몰며 뛰었다. 이렇게 13굽이를 거듭해 달리면서 인디오 소년은 관광객에게 즐거움을 선물했다. 관광객들에게 굿바이보이는 재미있는 구경거리였다. “good-bye”가 거듭될 때마다 관광객들은 이번에는 어디서 나타날까 궁금해 하며 창밖을 바라봤다. 또 인디오 소년을 촬영하며 즐거워했다. 버스는 마지막 굽이가 끝나는 지점에서 정차했고 ‘굿바이보이’가 차에 올랐다. 관광객들은 땀을 비 오듯 쏟으며 가쁜 숨을 몰아쉬는 인디오 소년에게 2~3달러씩 팁을 건넸다. 결국 인디오 소년은 몇 달러를 손에 쥐기 위해 2400여 미터의 산을 오르내린 것이다.인디오 소년이 마추픽추 산길을 숨 가쁘게 뛴 이유는 가난 때문이다. 스페인 식민 지배에서 겪었던 불운한 역사가 수백 년을 지나 대물림되는 현장이다. ‘굿바이보이’는 가슴 아픈 라틴아메리카를 들여다보는 창이다.
작가가 마추픽추를 다녀온 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다. 그때 작가가 만났던 인디오 소년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자랐을까. 무릎은 무탈할까.
임병식은 “그가 건강한 사회인으로 성장해 잉카 후예로서 자존심을 지키며 살고 있기를 바란다. 인디오 소년에게 건넨 푼돈이 어른이 돼서도 자존심에 상처가 되지 않기를 기도한다”면서도 “희박한 기대라는 걸 안다”고 말하는 대목에선 목소리가 가라앉았다.
작가는 “이웃의 가난은 나의 수치”라는 피에르 신부의 말을 인용하며 오늘도 ‘굿바이보이’ 안부를 묻는다.
임병식
언론인. 신문과 방송 매체에서 정치평론가와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진영논리를 경계하며 상식과 균형 잡힌 시선을 견지하며 글을 쓰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비롯해 전북기자협회 ‘올해의 기자상’ 및 ‘시민이 뽑은 좋은 기자상’ 등을 받았다. 호기심이 많아 대학 시절부터 많은 나라를 다녔다. 소외된 지역과 약자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속 깊은 글을 써왔다.
지금은 서울시립대학교에서 ‘미디어와 정치사회’를 가르치고 있다. '아리랑TV' 국제방송 고문, 2023 세계잼버리 정부지원 위원, 한국갈등조정 전문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다. 정부기관과 지자체, 기업에서 ‘공공갈등관리’와 ‘행복한 내 글쓰기’를 강의하며 많은 이들을 만나고 있다. 저서로는 '천 개의 길, 천 개의 꿈' '전주천에 미라보다리를 놓자' '국민을 이기는 정치는 없다' 등이 있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