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필로폰 소포’ 소동으로 트라우마 남아…대기실 주변 출처 불명 음료수 주의보 발령
2006년 10월, 남자 가수 2명이 필로폰이 든 소포를 받은 뒤 바로 경찰에 신고하는 일이 있었다. 이들뿐 아니라 개그맨 등 다른 유명 연예인들도 같은 소포를 받았다. 소포에는 0.1그램(g) 분량의 필로폰이 담긴 주사기 여러 개와 함께 협박 편지가 담겨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마약을 복용한 것으로 만들어 경찰에 신고하겠다는 내용과 함께 2억 원의 돈을 요구하는 내용이었다. 2억 원은 현금화가 가능한 온라인 게임머니로 송금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협박 소포를 받은 연예인들은 바로 신고를 했고 자신들이 마약과 무관함을 입증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마약 검사를 받기도 했다. 과거 마약 불법 투약으로 사법 처분을 받았던 연예인을 골라 이런 협박 소포를 보낸 사건이었다. 게다가 2002년에도 연예계에서 이와 비슷한 마약 협박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도 뒤늦게 알려졌다. 당시엔 경찰에 신고하지 않고 쉬쉬하며 지나갔었다고 한다.
연예인들은 이런 협박 사건에 격분했고 결국 마약 소포를 직접 받은 이승철이 기자회견을 자청해 협박을 받은 과정을 구체적으로 밝히며 강력한 수사를 촉구하기도 했다. 이후 범인인 30대 남성 유 아무개 씨가 검거됐고 2008년 10월 공갈미수 등의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팬이 건넨 담배가 대마초라서 곤란해진 연예인도 있다. 아이돌그룹 빅뱅의 지드래곤은 2011년 대마초 흡연 혐의로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2012년 SBS ‘힐링캠프’에 출연한 지드래곤은 “일본에서 콘서트가 있었는데, 뒤풀이 파티에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그곳에서 내가 모르던 분에게서 담배를 받아서 핀 게 화근이었다”며 “당시 워낙 술에 많이 취해서 (담배가 아닌 대마초라는 사실을) 잘 몰랐다. 독한 담배, 혹은 시가 정도의 느낌으로 생각했다. 내가 원래 대마초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어서 ‘맞다, 아니다’를 가릴 수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 지드래곤의 이 해명을 두고 거짓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그렇지만 지드래곤은 “거짓말이 통하는 상황이 아니다. 검찰은 내가 초범이기도 하고, 양이 극소량이기도 해서 기소유예 처분을 내려줬다”고 밝혔다. 기소유예로 사건이 종결된 이유가 팬이 건넨 대마초를 담배로 오인해서 피웠다는 이유가 아니라, 초범이고 극소량만 검출됐기 때문이라고 밝혀 그런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음을 분명히 밝힌 것이다.
연예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실제로 이와 유사한 일이 다른 연예인들에게도 일어나곤 했다고 한다. 클럽 등에서 술자리를 갖다 지인 소개 등 이런저런 이유로 합석하게 된 이에게 담배인 줄 알고 건네받아 흡연했는데 대마초인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 만약 이를 빌미로 돈을 요구하며 협박하는 상황이 벌어지면 연예인이 매우 곤란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의 연예 기획사들이 수년 전부터 절대 모르는 이에게 담배를 받아서 피우지 말라고 소속 연예인들에게 강조해왔다.
그리고 이번엔 강남 학원가에서 ‘마약 음료’ 사건이 불거졌다. 이번에는 연예기획사들이 소속 연예인에게 출처가 불분명한 음료수를 절대 마시지 말라고 강조하고 있다고 한다. 마약 음료 주의보다.
대기실 등 연예인 주변에는 늘 음료수가 많다. 제작진이 준비해 둔 음료수, 팬들의 선물로 도착한 음료수, 동료 연예인의 매니저가 가져온 음료수 등 다양한 경로로 음료수가 온다. 물론 상당수의 스타급 연예인은 개인 취향에 따라 매니저 등이 별도로 평소 즐기는 음료수를 준비하지만 워낙 주위에 이런저런 음료수가 많아 별 생각 없이 마시게 될 수도 있다. 문제는 여기에 누군가 악의적으로 마약을 탄 음료수가 섞여 있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당연히 그 목적은 마약 음료수를 마시게 만든 뒤 협박하는 것이다.
한 중견 연예 관계자는 “사실 가장 무서운 존재는 내부에 있을 수 있다”면서 “연예인 주변에 다가갈 수 있는 관계자는 상당히 많고 그들을 통해 다양한 사건·사고가 불거지곤 한다. 몰래 연예인 주변에 마약 음료수를 가져다 두고 직접 마시는 것까지 확인한 뒤 외부 조력자에게 그 사실을 알려 협박을 하는 상황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강남 학원가에서 불거진 마약 음료수 사건에 연예계가 긴장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학생들이 연루된 문제라 학부모가 그런 협박에 취약하다는 점을 악용해 강남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이 벌어졌음을 감안하면, 연예인은 더더욱 마약 관련 협박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가 더 이상 마약 청정국이 아닌 상황에서 국내 마약 유통량이 급증하고 보이스피싱 조직까지 가세하며 마약을 활용한 신종 피싱 사건이 늘어나면서 이런 우려감이 연예계를 엄습한 것이다. 게다가 2006년 마약 소포 사건의 트라우마까지 남아 있다.
앞서의 연예관계자는 “대체로 연예인들이 다이어트와 건강 등에 민감해 평소 먹는 것에 상당히 신경을 쓰는 편이라 크게 위험하진 않아 보인다”면서도 “그렇지만 어디에나 늘 구멍은 있기 마련이라 그런 일도 벌어질 수 있다. 그런 상황에서 연예인이 협박범에 흔들리지 않고 바로 신고하려면, 대중이 믿어줄 것이라는 확신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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