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조항 탓 가족에게 떠넘겨…국가책임제 필요성 제기
2017년 5월 개정된 정신건강복지법에는 비자의적 입원(△응급입원 △행정입원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에 대한 복잡한 심의절차 내용이 담겨 있다. 전문가들은 개정 전에 비해 비자의적 입원 요건을 까다롭게 만들었다고 질타한다.
비자의적 입원 중에서도 특히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문제다. 정신건강복지법 제43조(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1항은 ‘정신의료기관은 정신질환자 보호의무자 2인의 요청과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입원 등이 필요하다고 진단한 경우에만 해당 정신질환자를 입원 등 시킬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조현병 환자 가족들과 정신의학계 전문의들은 이 조항이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조항 탓에 국가가 조현병 환자와 그 가족을 방치한다는 것이다.
조현병 환자가 환청·망상 등의 증상으로 흉기를 휘두르거나 폭행을 저지르려고 할 때 즉시 병원으로 이송시키는 행정·응급입원 제도가 있지만,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요건이 충족되면 행정·응급입원이 어렵다고 조현병 환자 가족들은 입을 모은다. 김영희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정책위원장은 “환자가 가정 내에서 가족을 당장 (흉기로) 찌를 것 같은데 경찰은 신고해도 (응급)입원 절차를 밟지 않는다”며 “가족이 있으면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시킬 수 있지 않냐’는 태도를 보이는 등 살해 위협을 받는 상황에서도 가족에게 책임을 지라는 식”이라고 말했다.
실제 응급·행정입원이 작동되지 않아 조현병 환자 가족이 환자에게 살해당한 경우가 있다. 경기남양주남부경찰서, 대한정신장애인가족협회 등에 따르면 2021년 5월 경기도 남양주에서 조현병을 앓던 20대 남성 A 씨가 부친인 60대 B 씨를 살해했다. A 씨는 종종 B 씨를 위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B 씨는 A 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집을 떠나 노모와 함께 지내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B 씨는 사망하기 전 A 씨의 위협이 지속되자 경찰에 신고했지만 도움을 받지 못 했다. B 씨의 매제는 사건 이후 수사기관을 통해 “B 씨의 신고로 경찰이 출동하자 A 씨가 (경찰에게) ‘내가 아버지 욕한 것밖에 없는데 왜 왔냐. 앞으로 잘할 거다’라고 침착하게 말했다”고 전했다. A 씨와 B 씨가 함께 살던 집에는 ‘죽이겠다’는 문구가 수두룩했는데 경찰은 당시 집을 살펴보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조현병 관련 단체, 정신의학계 전문의 등에 따르면 급성기에 접어든 조현병 환자가 환청·망상 등의 증상으로 자·타해 위험을 보이면 즉시 입원 치료를 통해 범죄 행위를 일으키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조건이 성립되면 지자체장의 허락으로 진행되는 행정입원과 경찰이 실시하는 응급입원이 어렵다는 지적이 많다. 지자체와 경찰 측에서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제도를 들어 가족에게 책임을 떠넘긴다는 것이다. 김영희 정책위원장은 “조현병 환자가 일으킨 사건 발생 전 가족이나 이웃으로부터 위기 신호가 감지되지만 경찰은 현장에서 뚜렷하고 위험한 행위가 없다는 이유로 병원 호송 판단을 부담스러워한다”고 지적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다른 의미에서 반대하는 쪽도 있다. 법조계에선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이 강제입원이니만큼 ‘입원의 정당성’이 뚜렷해야 하는데, 조현병 환자 가족의 결정으로 환자의 신체 결박, 자유 침해 등 국민 기본권이 제한된다고 주장한다. 김도희 정신장애인사회통합연구센터 변호사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 과정에서 조현병 환자는 조력자 없이 자신의 기본권을 제한받을 수 있다”며 “(조현병 환자가) 입원을 해야 하는 정당한 근거가 필요하다. 이에 가족이 입원 의뢰는 할 수 있지만 입원 판단은 전문의와 국가 혹은 사법기관에서 실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7년 5월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뿐 아니라 ‘보호의무자 요건’이 강화된 것에 대한 지적도 많다. 정신건강복지법에서 보호의무자는 생계를 같이 하는 직계혈족 또는 배우자를 말한다. 만약 보호의무자가 1인이면 1인의 요청으로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신청할 수 있다. 보호의무자가 없으면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은 불가하다. 경찰이 동의해 응급입원을 시켜도 보호의무자가 없으면 3일 이상 입원 치료가 불가해 퇴원해야 한다.
보호의무자 요건이 강화된 탓에 즉시 치료가 이뤄지지 않아 조현병 환자의 범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안인득 사건’이 대표적이다. 사망 5명, 부상자 17명의 인명피해를 낸 ‘진주 아파트 방화흉기난동 사건’ 주범 안인득 씨의 친형은 사건 발생 12일 전 조현병을 앓는 안 씨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보호의무자 요건상 안 씨의 친형은 직계혈족이 아니어서 안 씨를 입원시킬 자격이 없었다. 유일한 법적 보호의무자였던 안 씨의 노모는 당시 입원 중인 관계로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진행할 수 없었다.
조현병 환자의 가족들은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배점태 심지회(한국조현병회복협회) 회장은 “신체장애인은 장애를 숨길 수 없지만 정신장애인은 그렇지 않다. 겉으로 멀쩡하다. 그래서 (정신장애인) 증상 악화를 더 무섭게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신건강복지법에 명시된 조항들이 현실과 동떨어진 내용이 많다”며 “조현병 환자 가족 입장에선 환자의 위협에 대처하지 못하는데 국가는 조용하다. 가족들의 입장을 충분히 반영해 정신건강복지법을 시정하고 국가 차원에서 조현병 환자에 대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서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높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인재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신질환자 가족에게 지워진 과도한 부담을 해소하고 충분히 치료가 가능한 정신질환자를 강제입원 시킬 수 있는 제도적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며 “보호의무자에 의한 입원을 폐지하고 행정입원으로 일원화해 (중증)정신질환에 대한 국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소영 기자 upjsy@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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