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 현직 총리 습격 이번이 세 번째…5월 G7 정상회의 앞두고 안전 우려 커져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를 겨냥한 폭발물 테러가 발생해 열도가 충격에 휩싸였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총격으로 사망한 지 1년도 채 안 된 시점이라 사회적 파장이 더욱 크다. NHK에 따르면 “4월 15일 와카야마시 항구에서 기시다 총리가 선거 지원 연설을 하기 직전, 총리를 향해 한 남성이 은색 통 모양의 폭발물을 투척했다”고 한다. 기시다 총리는 피신해 무사했지만, 청중 앞에서 폭발이 일어나 현장은 대혼란에 빠졌다. 일본 내에서는 “연쇄 테러리즘의 시대가 시작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사건이 일어난 것은 4월 15일 오전 11시 30분경이었다. 기시다 총리가 보궐선거를 앞두고 응원차 와카야마현 사이카자키항을 찾았다. 지역 명물인 생선회를 시식하고, 연설 현장으로 향할 때 군중 사이에 있던 20대 남성이 은색 물건을 던졌다. 바로 그 순간, 옆에 있던 현지 어부가 “이 녀석이다!”며 남성을 제압했다. 주변의 경호원들이 달려들었고, 기시다 총리는 경호 인력에 둘러싸여 즉시 현장을 피했다. 청중들도 비명을 지르며 흩어졌다. 그리고 수십 초 후 ‘쾅’하는 폭발음과 함께 하얀 연기가 피어올랐다.
현지 경찰은 체포된 용의자의 운전면허증을 확인하고, 그가 효고현에 거주하는 기무라 유지(24)라고 발표했다. 다행히 폭발에 따른 부상자는 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사건 현장에 있던 관계자는 “은색 쇠파이프 같은 것이 날아와 기시다 총리로부터 1m 떨어진 곳에 떨어졌다”며 “만약 그것이 바로 폭발했다면 어떤 피해가 발생했을지 모른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총리의 연설을 듣기 위해 맨 앞줄에서 기다렸다는 40대 여성은 “처음에는 음료 캔 같은 건가 싶었는데, 섬광이 반짝거렸으며 ‘대피하라’는 말에 그 자리에서 바로 도망쳤다”고 전했다. “그 후 20초 정도 지나서 폭발음이 났다”고 한다. 여성은 “이런 일을 겪으니 연설을 들으러 가는 것이 너무 무섭다”고 떨었다.
#용의자 이웃 “얌전하고 인사 잘하는 청년”
기시다 총리에게 폭발물을 던진 기무라 용의자는 “변호사가 와야 말하겠다”며 묵비권을 행사 중이다. 범행 동기는 조사가 진행되면서 구체적으로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사건을 영상으로 접한 총기 평론가 쓰다 데쓰야 씨는 “수제 파이프형 폭탄 같다”고 추측했다. “굉음이 아니고, 연기도 그리 많지 않아 화약의 양은 적었던 것 같다”는 설명이다. 또한 “던진 다음 폭발까지 수십 초의 시차가 있었기 때문에 원격조정으로 터뜨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폭발물의 구조와 성능에 대해서도 향후 수사가 주목된다.
산케이신문에 따르면 “용의자의 이웃들은 하나같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기무라 용의자가 평소 얌전하고 인사도 잘하는 청년이었다는 것. 용의자 집 근처에 사는 50대 남성은 “약 15년 전 용의자 가족이 이사를 왔으며 지금까지 특별한 트러블은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작년 가을에도 용의자와 그의 어머니가 함께 정원에서 풀을 뽑는 등 단란한 모습을 보았다”면서 “상냥한 보통 청년인 줄 알았는데 테러 사건을 일으켰다니 충격적”이라고 덧붙였다.
전후(戰後) 일본 현직 총리에 대한 습격 사건은 이번이 세 번째다. 1960년 7월 기시 노부스케 총리가 총리 관저 앞에서 허벅지를 6곳이나 찔려 중상을 입었고, 1975년 6월에는 미키 다케오 총리가 장례식장에 참석했다가 폭행을 당했다. 범인들은 모두 우익 활동가로 알려졌다.
반면, 지난해 7월 아베 전 총리를 총격 살해한 야마가미 데쓰야는 정치적 동기가 아닌 개인적인 원한이었다. 야마가미는 경찰 조사에서 “통일교에 빠진 어머니가 집안의 전 재산을 팔아 치워 거액의 헌금을 냈다”며 “그 종교를 일본에 들여온 기시 전 총리의 자손인 아베 전 총리가 종교 행사에 비디오 메시지를 낸 것을 보고 살해 결심을 했다”고 밝혔다.
#일본의 안전이 흔들린다…‘연쇄 테러리즘’ 우려도
이번 사건은 5월 히로시마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앞두고 발생해 외국 요인 경호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 테러대책 전문가인 이타바시 이사오 씨는 NHK에 “현직 총리를 겨냥한 범죄라는 점에서 매우 중대한 일”이라며 “다음 달 G7 정상회의도 앞둔 가운데, 지방선거에서 일어난 사건을 무겁게 받아들여 경비를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아사히신문은 가두연설에 여전히 허술한 경호 문제를 지적했다. 신문은 “개인이 벌이는 테러에 취약한 데다 아베 전 총리 피습 후 경호가 강화됐다고는 하지만, 유권자에게 직접 목소리를 전달하는 현장 안전을 지키기 어렵다”고 보도했다.
해외 언론들도 관련 소식을 속보로 전하며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뉴욕타임스는 “이번 사건의 무대가 된 와카야마시가 지난해 아베 전 총리가 암살된 나라시와 가깝다”면서 “정치인을 노리는 테러 사건이 계속될 경우 ‘일본 사회는 안전하다’라는 인식이 흔들릴지도 모른다”고 염려했다.
AP통신은 “아베 피격사건 이후 일본에서는 중대 사건을 막을 수 있도록 경호 조치를 강구해왔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시다 총리가 주재하는 5월 G7 정상회의를 앞두고 또다시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전했다. 중국신문망 역시 G7 정상회의를 언급했다. 매체는 “과연 안전하게 개최할 수 있을지 의문이 가시질 않는다”고 했다.
일본 내에서는 “정치 테러가 만연화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뉴스위크재팬은 “현직 총리의 선거 유세 중에 파이프 폭탄을 던져 터트리는 테러는 과거 ‘과격파’조차도 하지 않던 일”이라며 “야마가미에서 비롯된 연쇄 테러라고 한다면, 일본 사회가 머지않아 파시즘에 빠질 가능성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라고 평가했다.
전쟁 전 역사를 보면 1921년 하라 다카시 총리가 도쿄역에서 청년이 휘두른 칼에 찔려 목숨을 잃었고, 1930년에는 하마구치 오사치 총리가 우익 청년의 총에 맞았으며, 1932년에는 무장한 해군 청년 장교들이 총리 관저 등에 침입해 이누카이 쓰요시 총리 등을 살해한 ‘5·15 사건’이 벌어졌다. 이 사건들로 일본의 정당정치가 쇠퇴해가는 동시에 파시즘이 대두하는 계기가 됐다. 뉴스위크재팬은 “연쇄 테러리즘은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민주정의 토대를 무너뜨릴 수도 있다”며 “이번 사건의 정치적 의미를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고 우려했다.
한편, 일본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기시다 총리는 용의자를 검거하는 데 일조한 어부 등 일반인 2명에 직접 전화를 걸어 감사의 뜻을 전했다”고 한다. 기시다 총리는 사건 발생 후 약 한 시간 정도 지나 와카야마시 역 앞 유세 현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오전 연설회장에서 큰 폭발음이 있었다. 자세한 내용은 경찰이 조사하고 있으나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면서 “하지만 우리나라에 있어 중요한 선거는 끝까지 마무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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