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합뉴스 |
6월5일 오사카 교세라돔을 찾았다. 이날 오릭스는 센트럴리그 소속의 야쿠르트 스왈로스와 교류전을 치를 예정이었다.
오후 2시부터 시작한 오릭스 선수단의 훈련은 4시까지 진행됐다. 이대호는 스트레칭과 수비, 주루, 타격순으로 훈련을 진행했다. 그가 움직일 때마다 카메라맨 7, 8명이 뒤를 따랐다.
한국에서도 이대호의 인기는 최고였다. 어딜 가나 취재진이 따라 다녔다. 하지만, 일본처럼 카메라맨과 취재진이 이대호에게만 집중한 적은 없었다. 이대호는 일본 언론의 관심에 이골이 났는지 별 동요 없이 훈련했다. 그리고 훈련이 끝나자 라커룸 앞에서 기자와 인터뷰를 가졌다.
▲ 이대호가 4월 19일 3안타 4타점을 기록하며 오릭스 구단 홈페이지 메인 페이지에 올랐다. |
교세라돔 1층엔 대형 용품판매점이 있다. 주로 오릭스 야구용품을 판매한다. 오릭스 마크가 새겨진 티셔츠부터 점퍼, 양말, 모자, 글러브, 사인구 등 다양한 상품이 전시돼 있다. 그 가운데 이대호의 등번호가 새겨진 티셔츠는 가장 인기가 좋다. 워낙 인기가 좋다보니 판매장 중앙에 아예 이대호 티셔츠를 전시해 놨다.
오릭스 구단 관계자는 “4월까진 판매량이 적었으나, 5월 중순부터 날개 돋친 듯 팔린다”며 “이대호 선수에게도 짭짤한 과외수입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국은 선수 등번호가 새겨진 티셔츠를 팔면 구단이 모든 수입을 독차지한다. 선수의 초상사용권을 구단이 독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본은 아니다. 선수의 이름, 얼굴, 등번호 등 캐릭터를 사용해 수익을 올릴 시 구단은 선수에게 일정금액의 로열티를 지급해야 한다. 일본 최고의 명문구단 한신 타이거스의 외야수 가네모토 도모아키는 티셔츠 로열티로만 해마다 10억 원 이상을 번다.
선수 인기의 척도를 티셔츠 판매로 확인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대호는 벌써 오릭스를 대표하는 스타가 된 셈이다.
이대호의 인기는 일본야구팬들의 반응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6월 6일 교세라돔에서 만난 오릭스 팬 히로오카 류카다 씨는 이대호를 가리켜 “오사카의 거인”이라고 했다.
“오사카 야구팬들은 연고지 팀들인 오릭스와 한신을 응원한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두 팀 모두 성적이 신통치 않았다. 특히나 장쾌한 한방을 쳐줄 홈런타자가 부족했다. 2010년 오릭스 T-오카다가 반짝 홈런왕이 됐을 뿐이다. 사정이 이럴 때 오사카에 이대호가 나타났다. 큰 체구와 시원한 홈런을 보면서 ‘거인’이란 느낌을 받는 건 나만이 아니었다. 인터넷 야구사이트에서 많은 야구팬이 이대호를 ‘오사카의 거인’으로 부른다.”
일본 야구팬들은 야구의 생리를 잘 안다. 노볼 투스트라이크에서 “홈런”을 외치지 않는다. 웬만한 타자가 나와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부담이 될까 우려한다. 그래서 “안타”를 외친다. 지난해부터 일본야구기구(NPB)가 저반발력 공인구를 사용하며 홈런이 급격히 감소하자 거포가 나와도 “홈런”이란 응원구호는 자제한다. 그러나 오릭스 팬들은 이대호가 나오면 어떤 볼카운트든 “홈런, 이대호!”를 외친다. 그만큼 이대호가 한방을 쳐줄 해결사로 우뚝 선 까닭이다.
4월만 해도 오사카 야구팬들이 이처럼 뜨겁게 이대호를 반기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 이대호 스스로도 기대하지 않았다. 되레 당시 이대호는 ‘먹튀’ 소릴 들었다.
▲ 이대호가 연일 불방망이를 휘두르며 각종 타격 부문 상위권에 올랐다. 연합뉴스 |
이대호의 4월은 잔인했다. 치면 범타, 못 치면 삼진 아웃, 운이 좋으면 볼넷 출루였다. 4월 20일까지 이대호는 타율 2할1푼7리, 7타점으로 극히 부진했다. 홈런은 1개도 없었다. 오릭스 팬들은 “이대호를 추방시켜야 한다”며 거세게 항의했다. 오릭스 오카다 아키노부 감독이 이대호를 계속 4번 타순에 배치하자 “혹시 이대호에게 뒷돈을 받은 게 아니냐”며 색안경을 끼기까지 했다.
구단은 내색하지 않았지만, 속으로 끙끙 앓았다. 2년간 7억 엔(한화 105억 원)을 투자한 외국인 선수가 타율 2할 초반에 그친다는 건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감독이 계속 신뢰를 유지하는 이상 구단이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속앓이는 이대호가 가장 심했다. 그즈음 이대호는 롯데 선수들에게 자주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롯데에서 야구할 때가 행복했다.’ ‘여기는 정말 외롭다.’ ‘한국이 그립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롯데 모 선수는 “자존심 강하기로 유명한 (이)대호 형이 정말 힘들긴 힘든 모양”이라며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힘들다면서도 한국으로 돌아오겠다는 문자메시지는 한 통도 없었다”고 말했다.
사실이었다. 이대호는 포기하지 않았다. 대신 부활을 노렸다. 이대호가 가장 먼저 시도한 부활의 몸짓은 롯데 시절의 적극적인 타격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시즌 초반 이대호는 좀체 초구를 공략하지 않았다. 그러나 롯데 시절 이대호는 초구부터 배트가 나오는 공격적인 타자였다. 이대호는 “일본투수들을 연구하는 시간이 너무 길었다”며 “4월 말부터 초구나 스트라이크 비슷하게 공이 들어오면 무조건 배트를 돌렸다”고 털어놨다.
신중했던 이대호가 적극적으로 타격에 임하자 일본투수들은 궁지에 몰렸다. 일단 수싸움에서 이대호에게 지기 시작했다. 원체 선구안이 좋은 타자라, 스트라이크 존을 벗어나는 공을 던지면 이대호의 배트가 돌아가지 않았다. 반면 스트라이크 비슷한 공을 던지면 이대호의 벼락같은 스윙에 난타당하기 십상이었다.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으려다 한방을 허용한 투수들이 늘어나며 초구 볼이 많아졌다. 당연히 볼카운트 싸움에서 이대호가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기 시작했다.
약점이었던 몸쪽 공도 5월 들어선 더는 약점이 아니었다. 이대호는 몸쪽 높은 공을 억지로 치지 않았다. 커트, 커트하며 되레 투수를 괴롭혔다. 볼이다 싶으면 아예 배트를 가만히 들고 서 있었다. 대부분 몸쪽 공이 볼로 연결된다는 걸 이대호는 잘 알고 있었다. 일본 투수들은 이 점을 알고, 역으로 몸쪽 높은 공을 스트라이크로 던졌지만, 그럴 땐 이대호에게 장타를 맞았다.
오릭스 오가와 호리후미 타격코치는 “외국인 타자들이 일본투수들의 몸쪽 공에 약점을 드러낸다. 이대호도 초반엔 그랬다. 하지만, 영리하게 약점에 대처했다. 지금은 오릭스 타자 가운데 가장 몸쪽에 강한 타자가 됐다”며 “이제 일본 투수들은 이대호의 새로운 약점을 찾아야 할 운명에 처했다”고 말했다.
#이대호의 전망
6월 8일 현재 이대호는 타율 2할8푼7리, 10홈런, 32타점을 기록 중이다. 도루를 제외한 각종 타격부문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현재 추세라면 이대호는 타율 2할8푼, 20홈런, 80타점 이상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일본 데뷔 첫해 성적치곤 매우 고무적인 내용이다. 시즌을 치를수록 일본야구에 빠르게 적응하기에 미래는 더 밝다.
하지만, 변수는 있다. 먼저 체력이다. 일본 구단들은 원정 이동 시 버스를 이용하지 않는다. 2군은 몰라도 1군은 그렇다. 주로 비행기와 신칸센을 이용한다. 이동 시간도 아침이다. 아침에 개별적으로 공항이나 역에 도착해 선수단이 함께 이동한다. 따라서 아침 이동 후, 곧바로 오후에 경기를 치른다. 이에 반해 한국은 주로 밤에 버스를 이용해 이동한다. 선수들은 이동할 동안 버스에서 수면을 취하고서, 호텔에 도착하면 다시 잠을 청한다. 상쾌한 몸으로 일어나 오후 경기를 치르는 셈이다.
야쿠르트 임창용은 “한국선수들이 일본 진출 첫해 가장 고생하는 게 바로 아침 이동”이라며 “아무리 국내선이라고 해도, 비행기에서 내려 운동장에 도착한 뒤 곧바로 경기를 치르는 건 체력적으로 몹시 피곤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덧붙여 임창용은 “한창 무더운 여름에 아침 이동을 자주 하다보면 체력적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 이대호가 여름을 어떻게 이겨내느냐가 성공의 관건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두 번째는 오카다 감독의 운명이다. 오카다 감독은 올 시즌이 계약 마지막 해다. 한국도 그렇지만, 일본도 계약 마지막 해는 감독의 무리수가 속출한다. 승리를 위해 선수들이 부상에 신음하고, 체력이 바닥나도 기용을 강행한다. 게다가 조금만 부진하면 새로운 선수로 대체해 성적을 올리려고 한다. 이대호가 슬럼프에 빠질 시 오카다 감독이 기다려주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직 시즌은 많이 남아있다. 분명한 건 이대호가 한국선수들의 실패 사례를 그대로 따를 것 같진 않다는 것이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임창용 직격 인터뷰
“새로운 도전 준비 중”
야쿠르트 스왈로스 임창용(36)은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2008년 삼성을 뛰쳐나와 일본 프로야구에 진출할 때만 해도 그의 연봉은 35만 달러였다. 외국인 선수 최하연봉에 해당하는 금액이었다. 별다른 보직도 없었다. 그저 불펜투수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본 진출 5년 만에 임창용은 리그 최고의 마무리 투수로 성장했다. 4년간 통산 229경기에서 11승13패128세이브 평균자책 2.15를 기록했다. 지난해도 28세이브를 기록하며 야쿠르트의 든든한 마무리로 활약했다. 달라진 위상은 몸값이 대변한다. 올 시즌 임창용의 연봉은 3억 6000만 엔(약 54억 원)이다.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를 통틀어 연봉 순위 6위다. 투수 중에선 이와세 히토키(주니치), 후지카와 규지(한신)에 이어 3위다. 외국인 선수 가운덴 최고 연봉자다. 특히나 임창용은 연봉을 엔화로 지급받는다. 요즘처럼 엔화가 폭등하면 수입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다.
하지만 올 시즌 임창용의 마음은 편치 않다. 우선 마무리 경쟁에서 밀렸다. 오른팔 통증으로 2군에 있는 사이 지난해까지 셋업맨이던 토니 바넷이 마무리 자릴 꿰찼다. 5월 말 1군에 복귀했지만 여전히 마무리는 바넷 차지다. 하지만 그보다 임창용 마음을 무겁게 하는 건 동기 부여다.
임창용은 일본에서 다 이뤘다. 돈과 명예를 한꺼번에 손에 쥐었다. 임창용만 좋다면 내년 시즌까지 야쿠르트에 남아 큰돈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임창용은 일본에서 야구해야 할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다. 6월 8일 일본 도쿄 메이지진구구장에서 만난 임창용은 “어쩌면 새로운 도전을 감행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새로운 도전이라, 그게 무슨 말인지 궁금했다.
임창용은 “야쿠르트와의 계약상 일본 내 다른 구단에서 뛰는 건 어렵다”며 “아직 한국으로 돌아갈 시기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랬다. 그가 말하는 새로운 도전지는 바로 미국이었다.
임창용도 부인하지 않았다. 임창용은 “일본에 올 때도 돈을 좇지 않았다. 새로운 무대에서 내 자신을 시험하고 싶었다. 만약 미국에 간다면 마찬가지일 거다.”
일본야구 관계자는 “임창용을 원하는 메이저리그 구단이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그러나 임창용은 “아직 시즌 중이라, 확언하기 어렵다”며 “남은 기간엔 야쿠르트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