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한길 바람을 누르고 제1 야당 당수가 된 이해찬 신임 대표. 명실상부한 킹메이커로서 민주진보진영의 ‘대선 3승’을 연출할 책임을 맡게 됐다. 사진은 6월 9일 민주통합당 전당대회 모습.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부제가 ‘객석의 김민석, 따뜻한 한마디’로 돼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올해 대선에서 김 전 의원은 무대 밖의 관객에 불과하다. 훈수는 둘 수 있을지언정 본인이 플레이어가 돼 참여할 수는 없다.
이런 그와 달리 제1야당의 당대표이자 명실상부한 킹메이커로서 민주진보 진영의 ‘3승’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지난 9일 민주통합당(민주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경선에서 천신만고 끝에 당대표로 선출된 이해찬이 그 주인공이다. 김민석 전 의원이 민주진보 진영의 첫 승을 거둘 때에만 무대 위에 서 있었던 것과 달리 이해찬 신임 대표는 첫 번째와 두 번째 승리를 모두 주인공과 함께했다. 이번 대선에서도 승리한다면 그 자신 역시 ‘3승’을 달성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도 여러 명의 스태프 중 한 명이었던 과거와 달리 이번엔 총연출자의 자리를 맡았다. 이 대표로서는 ‘3승’을 향한 여정이 이미 시작된 셈이다.
영광과 좌절의 숱한 역정을 겪은 ‘정치인 이해찬’에 대한 평가는 그야말로 극과 극을 달린다. 서슬 퍼런 송곳에 비유할 수 있을까. 목숨을 걸어야 할 때에도 당당했던 강단 있는 모습, 핵심을 찌르는 전략과 정책 능력 등이 영락없는 송곳을 닮았다. 하지만 송곳은 더할 나위 없이 모가 나 있다. 많은 사람을 찌르기도 하고 오만한 이미지로 인해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가려 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해찬 대표의 ‘강단 있는 정치인’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주는 사례는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유신 독재의 서슬이 퍼렇던 지난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옥고를 치른 데서 알 수 있듯 그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일에는 목숨을 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1980년 ‘김대중(DJ)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됐던 이 대표가 신군부가 장악한 비상군법회의에서 일갈한 최후 진술은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이 재판이 과연 정당한 재판이냐. 이 군사법정이 혁명 재판부인지 쿠테타 재판부인지를 분명히 밝혀라”는 호통으로 시작한 그의 진술에선 비타협적인 결기가 묻어났다.
“박정희가 18년 만에 비참한 종말을 고했듯이, 당신들 ‘전두환 일당’도 10년이 못가 망할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심판이다. (중략) 나는 이 목숨을 다 바쳐 이 땅이 민주화 될 때까지 싸워 나가겠다. ‘전두환 일당’인 당신들을 붙잡아 이 법정에 세우겠다. 나는 당신들이 저지르고 있는 역사적 범죄를 결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다.”
피고인이 재판관과 그 배후의 신군부에게 역으로 선전포고를 한 것이다. 실제로 이 대표는 1988년 13대 총선 때 36세의 나이로 국회의원이 됐고, 약속했던 대로 그해 ‘5·18 청문회’에서 신군부의 주역들을 단죄하는 데 앞장섰다. 1991년 30대의 초선의원 신분임에도 신한민주당의 ‘DJ 사당화’에 반발해 ‘탈당 파동’을 일으켰던 것도 강단 있는 그의 면모와 무관치 않다.
이와 함께 이 대표의 전략 능력과 정책 능력은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대목이다.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등 재야 민주화운동 단체에서부터 시작된 인정받았던 기획과 전략 능력은 1995년 조순 서울시장 당선, 1997년 ‘DJP 연합’에 의한 헌정사상 첫 수평적 정권교체, 2002년 행정수도 이전 공약과 ‘노무현–정몽준 단일화’에 의한 정권 연장 등에서 십분 활용됐다.
언론사의 국회의원 의정활동 평가가 처음 시작된 13대 국회에서 ‘의정평가 1위’에 오른 데서 알 수 있듯, 이 대표의 정책 능력 역시 높이 평가받는다. 특히 조순 서울시장 시절의 정무부시장 경험은 그의 정책적 식견을 확장하는 데 큰 도움을 줬다고 한다. 이 대표는 과거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정치인 이해찬’은 서울시 부시장 이전의 이해찬과 이후의 이해찬으로 나뉜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당시 “그냥 국회의원일 때에는 집권 전략 등 ‘큰 그림’을 그리는 데 관심을 쏟았었는데 부시장이 된 뒤로는 비가 오면 상습 침수지역인 망원동이 물에 잠기는 게 아닌지, 눈이 오면 교통대란이 벌어지는 건 아닌지 걱정해야 했다”며 “구름 위에 있던 내가 서민들이 사는 땅으로 내려왔다고 봐도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국민의 정부’ 초대 교육부 장관, 새천년민주당 정책위 의장을 지낸 것은 모두 이 같은 정책 능력에 힘입었다. 정책위 의장 시절 이 대표가 기자실에 내려와 담배를 한 대 피워 물면 그를 싫어하는 기자들도 취재수첩을 들고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그의 ‘정책 브리핑’을 무시했다간 여지없이 ‘물을 먹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참여정부’ 초반 ‘김혁규 총리 카드’가 무산되자 이 대표가 긴급히 대타로 투입된 것도 그의 정책 능력에 대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실제로 이 대표는 노 전 대통령의 기대에 부응하면서 전무후무한 ‘책임총리’로 활동했다.
▲ 이해찬 대표는 김대중(위), 노무현 두 대통령의 대선 승리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 일요신문DB |
이 대표의 측근 중 상당수는 그의 대중적 이미지가 나빠진 계기를 교육부 장관 시절에서 찾는다. 김영삼(YS) 정부가 입안한 제7차 교육과정을 이어받아 집행했을 뿐인데, 그로 인해 파생된 모든 문제점의 책임을 이 대표가 다 뒤집어 썼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억울하다는 얘기다. ‘이해찬 세대’라는 말만 나와도 이 대표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하지만 이번 당대표 경선이 철저하게 ‘이해찬 대 반 이해찬’의 구도로 치러진 것에서 알 수 있듯, 이 대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단지 오해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 이번 경선은 남들이 다 비판하고 욕을 해도 좀처럼 사과하거나 고개를 숙이지 않는 이 대표의 모습이 수많은 ‘안티’를 양산하고, 그 자신을 위기에 빠뜨린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보여줬다.
천신만고 끝에 당대표에 올랐지만 이 대표가 민주진보 진영과 자신의 ‘대선 3승’을 위해 헤쳐 나가야 할 길은 험하기만 하다. 무엇보다도 이번 경선 과정에서 발생한 갈등을 해소하고 당의 화합을 이끄는 게 급선무다. 경선 기간 내내 ‘이-박 연대’를 비판하며 부정경선 의혹을 제기해 온 김한길 최고위원은 이 대표에게 분패한 뒤 “당심과 민심이 왜곡된 결과를 우려한다”고 밝혔다. 털어내야 할 앙금이 만만찮음을 알 수 있다. 이 대표는 또 김 후보뿐 아니라 손학규·정세균·정동영 상임고문, 김두관 경남도지사 등 ‘이–박 연대’에 비판적이었던 대선주자들을 안심시키고 공정한 대선후보 경선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새누리당에 크게 뒤지고 있는 민주당의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연세대 사회학과 김호기 교수는 역대 대선을 분석, ‘대선후보 득표율 = 당 지지율 + 10%포인트’의 규칙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당내 대선주자들을 띄우면서 동시에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 통합진보당(진보당) 등과의 연대의 끈을 이어가야 하는 것도 이 대표가 풀어야 할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다. ‘본선에서 새누리당 후보만 이기면 된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지난해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처럼 민주당 후보가 당 밖의 후보에게 단일화 경선에서 패한다면 이 대표 역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박공헌 언론인
▲ 6월 3일 서울시당개편대회에서 인사하는 당권 후보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이해찬 vs 반 이해찬’ 막판 탈출
이해찬-김한길 후보의 치열한 접전 양상으로 치러진 민주통합당 당대표 및 최고위원 경선이 지난 9일 이 후보의 힘겨운 승리로 끝났다. 이해찬 신임 대표와 김한길 최고위원의 최종 득표율은 각각 24.3%와 23.8%. 득표율차가 불과 0.5%포인트에 불과했다. 이 대표가 당내 최대 계파인 친노(친노무현)그룹의 좌장격의 인물이고 이번 당대표 경선이 이른바 ‘이해찬 대세론’ 속에 시작됐음을 감안하면 이 정도 표차는 이 대표로선 민망한 수치다. 그나마도 당심의 척도인 대의원 투표에선 김 후보에 뒤졌으나 ‘모바일 투표’에서 이기는 바람에 대역전 드라마를 쓸 수 있었다.
당초 ‘이해찬과 일곱 난쟁이의 대결’로까지 여겨졌던 이번 경선에서 이해찬 대표가 이처럼 힘겨운 싸움을 벌일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뭘까. 무엇보다도 초반 경선 환경에 대한 오판과 ‘버럭 근성’이 이 대표 자신의 발등을 찍었다고 볼 수 있다.
전국 순회 대의원 현장 투표가 처음으로 열린 지난 5월 21일 울산. 이 후보를 제외한 7명의 후보들은 경선장 곳곳을 누비며 대의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지지를 호소했다. 특히 이번 경선 과정 내내 이 후보를 괴롭혔던 김한길 최고위원은 유명 배우인 부인 최명길 씨와 듀오로 나서서 표심을 공략하고 있었다. 최 씨와 기념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대의원들이 몰리면서 긴 줄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이해찬 대표는 예외였다. 경선장 내 다른 방에서 박지원 원내대표, 문재인 상임고문 등과 담소를 나누고 있었던 것이다. 이른바 ‘이해찬–박지원 연대’가 강한 역풍을 맞는 바람에 5월 4일 원내대표 경선에서 박지원 원내대표가 가까스로 당선되는 모습을 지켜봤음에도 이 대표는 이번 경선을 만만하게 보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 대표는 이날 울산 경선에서 4위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아들었고, 부산과 충남 등 일부 지역을 빼곤 이런 추세가 계속 이어졌다.
당심과 판세에 대한 오판은 이 대표의 ‘버럭 근성’과 맞물리면서 그 자신을 위기로 몰아넣었다. 김한길 최고위원이 ‘이–박 연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울산 경선 1위에 오르자 이 대표는 다음 날 부산 경선에서 김 후보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하지만 이는 김 후보에게 타격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일곱 난쟁이’의 일원이었던 그를 일약 ‘이해찬 대항마’로 키워주는 결과를 낳았다. 가뜩이나 손학규 상임고문, 김두관 경남도지사, 정세균 상임고문 등의 대선주자들은 ‘이–박 연대’가 ‘대선후보 문재인’을 염두에 둔 구상이라고 의심하며 이 대표를 떨어뜨리기 위해 골몰하고 있던 터였다. 이들이 누굴 지원해야 하는지 역설적이게도 이 대표가 가르쳐 준 것이다. 실제로 김한길 최고위원은 대구ㆍ경북ㆍ울산ㆍ경남 등 영남권에선 김두관 경남도지사, 광주ㆍ전남ㆍ전북에선 정세균ㆍ정동영 상임고문, 서울ㆍ인천ㆍ경기ㆍ충북ㆍ강원 등에선 손학규 상임고문의 도움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경선 과정을 지켜본 민주당의 많은 인사들은 “이해찬 대표가 경선 초기에 김한길 최고위원을 비난할 게 아니라 ‘이–박 연대’에 대해 당원과 지지층에게 공식적으로 사과했어야 했다”고 입을 모은다. 이 대표가 전국 순회 대의원 투표가 모두 끝난 6월 1일에야 기자회견을 열고 ‘이–박 연대’에 대해 공식 사과하자 한 당직자는 “애초에 사과하고 시작했다면 경선 판도가 전혀 달라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거듭된 자충수로 벼랑 끝까지 몰렸던 이 대표가 기사회생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위기감’ 때문으로 보인다. 우선 친노그룹의 위기감이 컸다. ‘이–박 연대’가 역풍을 맞으면서 친노그룹의 대선주자인 문재인 고문의 지지율도 동반 하락했다.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문 고문의 지지율이 지난 1월 이후 처음으로 한 자릿수 대로 떨어진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친노그룹으로선 이번 경선에서 패할 경우 단지 ‘이해찬의 패배’로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할 법하다.
이 같은 위기감은 막판 엄청난 결집으로 이어졌다. 대부분 ‘모바일 투표’로 진행된 당원·시민선거인단의 66%에 달하는 8만명 정도가 선거인단 접수 막판 이틀 동안 몰려들었다. 정봉주 전 의원의 팬클럽인 ‘정봉주와 미래권력들(미권스)’가 이 후보지지 의사를 밝히기도 했다.
또 하나의 위기감은 이른바 ‘종북주의 논란’에서 비롯됐다. 통합진보당 내분 사태에서 시작된 종북주의 논란이 탈북자를 상대로 한 임수경 의원의 ‘막말 파문’을 계기로 민주당으로까지 불똥이 튄 것이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가 “북한인권법은 내정간섭”이라는 이해찬 대표의 발언을 문제 삼아 이 대표와 임 의원에 대한 자격심사 필요성까지 제기하는 등 보수 진영의 총공세가 이어졌다.
민주당 지지층이 위기감을 느낄만한 이 즈음에 이해찬 대표가 승부수를 띄웠다. 경선 전 막판인 지난 7~8일 잇달아 기자회견을 열고 “새누리당과 수구언론이 ‘신매카시즘’을 불러일으켜 오는 12월 대선 때까지 끌고 가려 한다”고 역공에 나섰다. 대부분의 민주당 인사들이 목소리를 낮출 때 가장 강하고 선명하게 대여공세에 나선 것이다. 특히 이 대표는 8일 회견에선 “새누리당과 수구언론이 민주당 대표로 가장 싫어할 사람은 이해찬”이라며 자신이 대여투쟁을 이끌 적임자임을 부각시켰다. 그의 승부수는 통했고, 친노의 결집까지 겹치면서 결국 대역전의 드라마는 완성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 전대에서 민심과 당심의 괴리가 드러났다는 점은 문재인 고문의 향후 대권행보에 부담을 줄 수 있고 오히려 손학규 김두관 등의 대권주자들이 부상할 기회를 만들어줬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이는 결국 이해찬이 국지전에서는 이겼을지 몰라도 대선후보 경선이라는 본 전투에서 패할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해준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