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처럼 찾아온 찬스가 ‘대표작’으로…“한때는 조급했지만 앞으론 제 속도대로 쭉 갈래요”
“초반에는 정말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어요. 박준우 감독님(시즌1 연출)이 그동안 어떻게 촬영해 왔는지를 굉장히 많이 설명해주셨고, 최대한 편하게 해주려 노력도 많이 해주셨어요. 그리고 무지개운수 오빠들도 많이 도와주셨고요(웃음). 급하게 찍는 와중에도 ‘우리는 원래부터 이렇게, 오래오래 가족인 사이야. 편하게 해!’라고 말씀해주셔서 저한텐 정말 너무너무 힘이 되더라고요. 제게 있어서 ‘모범택시’는 정말 가족 같은 사람들이 또 생긴 것 같아서 너무나도 큰 의미가 있어요.”
4월 15일 종영한 ‘모범택시2’는 베일에 가려진 택시회사 무지개운수와 택시기사 김도기(이제훈 분)가 억울한 피해자를 대신해 복수를 완성하는 사적 복수 대행극을 그린 드라마다. 배우들의 열연과 복선까지 회수해 나가며 시원시원하게 뻗는 전개, 거기다 시청자들의 속을 뻥 뚫리게 만드는 사이다 결말까지 어느 하나 모자란 곳 없는 작품은 순조롭게 시즌2로 이어졌고 이제는 시즌3의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다. 시즌제의 긴 호흡을 타고 머지않아 곧 무지개운수의 경리 ‘안고은’으로 돌아올 표예진은 시즌2에 임하는 마음도 남들보다 더 굳건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본래 직업인) 경찰을 버리고 다시 무지개운수에 돌아올 때 고은이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많이 생각했어요. 이 일을 얼마나 진지하게 대할 수 있을지, 그리고 내 진짜 능력을 발휘할 곳은 여기라고 생각하고 들어왔기 때문에 시즌1에 비해 훨씬 프로답고 성숙해졌을 거예요. 김도기 기사에게 더욱 든든한 파트너가 되는 한편으로 외적으로도 성숙한 면을 보여줘야 했죠. 그래서 말투나 사람들을 대하는 것에 있어서도 더 이상 어린애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고민을 많이 했던 기억이 나요.”
‘모범택시2’에서는 도기와 고은의 ‘부 캐릭터’(부캐) 열연이 시청자들의 큰 호평을 이끌어내기도 했다. 각 복수대행 에피소드에 맞춰 그때마다 본 캐릭터(본캐)와는 백팔십도 다른 극 중 극의 연기 변신을 보여줘야 했기에 처음엔 막막했던 것도 사실이었다고. 그러나 하다 보니 점점 오기도 생기고, 탄력도 받으면서 나중엔 자신이 더 흥이 나서 부캐 플레이에 열중했다는 게 표예진의 이야기다.
“저는 부캐 플레이를 이번 작품에서 처음 해보는 거였거든요. 그 연기를 진짜 제대로 하고 싶단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저희 드라마 특색 중에 그런 부캐를 확확 변신하면서 보여주는 매력이 있으니까요. 특히 가수 부캐를 준비할 땐 아무리 연기라도 노래를 잘해야 할 것 같아서 레슨까지 따로 받았다니까요(웃음). 어르신들 앞에서 공연을 해야 하는 사람이다 보니 뻔뻔하게 애교도 한 번 부려 보고, 노래 부르면서 율동하는 것도 아이디어를 많이 냈던 기억이 나요(웃음).”
표예진이 보여준 부캐들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만 본캐인 고은이 도기와 함께 보여준 ‘도기고은’ 케미스트리(케미)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모범택시’ 시리즈가 시청자들의 애정을 한몸에 받을 수 있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이들의 동료 이상 연인 미만의 간질간질한 관계성이었다. 시즌2의 결말에서 자신의 마음을 깨닫는 듯한 모습을 보여준 고은을 보며 시즌3이 만들어진다면 이들의 관계가 더욱 깊어질 수 있을 것이란 데 기대가 모이기도 했다. 정작 표예진은 “나이 차가 너무 많이 나서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며 웃음을 터뜨렸지만 그럼에도 자신 역시 조심스럽게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처음엔 정말 많은 시청자 분들이 ‘도기고은’ 케미를 좋아해주신다는 데 놀랐어요. 사실 저는 기대하시는 것처럼 (고은이의) 짝사랑으로 연기하지 않았거든요. 제게 있어 도기는 서로의 아픔을 제일 잘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요. 업무에서 오는 깊은 신뢰와 동시에 죽은 언니를 대신할 수 있을 정도로 고은이가 처음으로 마음을 연 사람이라 너무 특별한 사람인 거죠. 연기를 하다 보니 그런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보인 것 같은데 마지막 화에선 고은이가 약간 자각하면서 끝나긴 해요(웃음). 하지만 엄청 담담하고 심플하게 깨닫죠. 그 둘의 다음이 있을까 그건 모르겠지만 그래도 열린 결말로 끝난 것 같아요.”
고은의 도기에 대한 신뢰는 곧 표예진의 이제훈에 대한 신뢰로 이어졌다. 작품 안팎에서 모두 리더로 활약했다는 이제훈은 다소 차갑게 느껴지는 겉모습과 달리 현장에선 무지개운수의 또 다른 ‘오빠들’과 함께 막내보다 더 한 애교를 부리는 재간둥이였다는 게 표예진의 이야기다. 자신을 ‘재미없는 막내’라고 소개한 표예진은 뒤늦게 합류한 그가 조금이라도 서먹해할까 먼저 나서 분위기 메이커를 자처한 선배들이 마냥 고마웠다고 덧붙였다.
“이제훈 오빠는 정말 멋있는 리더예요. 현장에 그냥 있는 것만으로도 모두에게 너무 든든한 존재인 것 같고요. 본인의 몫을 200%, 300%씩 하다 보니 제일 힘든 사람인데도 현장에선 제일 파이팅이 넘쳐요. 항상 장난도 많이 치고 저희끼리 모여 있을 땐 하루 종일 메이킹 카메라에 하트 남발을 하면서 먼저 애교도 부려요(웃음). 그러면서도 진중할 땐 정말 진중하죠. 팀을 이끌어가는 리더로서 그 모습이 정말 존경스러웠어요. 제훈 오빠와 함께 다른 오빠들도 처음부터 제게 먼저 다가와 주셔서 지금은 너무 편한 마음으로 서로를 가족 같이 느끼는 사이가 됐죠.”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가 될 ‘모범택시’와 함께 표예진은 비슷한 시기 tvN 월화 드라마 ‘청춘월담’에서도 주연을 맡아 열연하며 순조로운 2023년 상반기를 보냈다. 하반기에는 ENA 신작 드라마 ‘낮에 뜨는 달’의 출연이 예정돼 있고, ‘모범택시’의 시즌3 제작이 확정된 만큼 다시 안고은으로도 시청자들 앞에 설 준비가 돼 있다. 올해로 데뷔 10년 차. 연기자로서의 험난한 길을 선택했을 땐 상상하지도 못한 곳에 오른 지금의 자신을 돌아본다면 새삼 놀란다면서도 표예진은 ‘모범택시’ 이전과 이후의 그의 마음가짐이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당연히 한때는 저 역시 조급했던 시기가 있었어요. ‘나도 빨리, 좀 더 큰 역할로 올라서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었죠. 괜히 남들과 비교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속상해 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그런 시기에도 제가 하는 작품과 캐릭터를 다 좋아하며 연기하다 보니 조급한 마음이 금방 사라졌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정말 많이 여유로워졌고요. 하나하나씩 제가 해온 것들이 있기에 지금이 있단 생각이 들어요. 이제는 각자의 길이 있다는 것도 너무 잘 알고 있고, 제가 이제까지 밟아온 길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저는 그냥 앞으로도 제 속도대로 쭉 갈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요.”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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