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이어 이사보수 한도 20억 원 늘려…오너리스크 반복 속 적절성 논란
한국타이어가 지난 3월 29일 열린 정기 주주총회에서 이사 보수 한도 상향 안건을 의결하면서 이사 보수 한도가 50억 원에서 70억 원으로 증액됐다. 한국타이어는 지난해 주주총회에서도 이사 보수 한도를 30억 원에서 50억 원으로 상향한 바 있다. 현재 한국타이어 사내‧외이사는 조현범 회장을 포함해 7명이다. 이들이 지난해 받아 간 보수 총액은 한도에 가까운 49억 원이었다.
노동‧시민단체 등에서는 현재 조현범 회장이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구속된 상황에서 이사 보수 한도를 올리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회장은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횡령‧배임) 등 혐의로 지난 3월 구속 기소됐다. 조 회장은 2014년 2월~2017년 12월 한국타이어 계열사인 한국프리시전웍스(MKT)에서 타이어몰드를 다른 제조사보다 비싼 값에 사들이는 방식으로 계열사를 부당 지원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한국타이어가 131억 원의 손해를 입었다고 보고 있다.
또 2017~2022년 75억 5000만여 원의 회삿돈 횡령‧배임 혐의도 받는다. 조현범 회장은 외제차 구입‧리스, 법인카드 사적 사용, 개인 주거지 가구 구입, 계열사 자금 사적 대여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조현범 회장의 구속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 11월에도 협력업체에서 뒷돈을 받고 거액의 회삿돈을 빼돌린 혐의 등으로 구속된 바 있다. 당시 조 회장은 유죄를 인정받아 징역 3년,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조현범 회장이 구속돼 경영활동을 못하고 있고, 반복된 오너리스크로 회사에 피해를 끼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타이어는 이사 보수 한도를 늘린 것이다. 금속노조, 참여연대 등 단체들은 “한국에서 오너는 여전히 성역인가. 회사는 조 회장의 혐의에 대한 회사의 내부 감사 실시 여부 및 결과와 관련한 구체적 답변을 회피했다”며 “조 회장의 금전적 이익을 위해서라면 회사의 위신과 시장에 대한 책임감 따위는 저버려도 상관없다는 건가”라고 질타했다.
이태진 전국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 노동안전국장은 “지난달 주주총회에서 조현범 회장은 구속돼 업무를 할 수 없으니 보수를 우선 중지해야 한다고 사측에 요구했다”며 “그런데 회사에서는 형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보수 중지를 할 수 없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는 “만약 재판 결과 유죄가 확정되면 조 회장이 구속된 기간 동안 받았던 보수를 환수할 수 있냐고 물었더니 그럴 수도 없다고 했다”고 말했다.
구속돼 경영활동을 하지 못함에도 보수를 계속 받는 조현범 회장과 달리 지난 3월 발생한 한국타이어 대전공장 2공장 화재로 출근을 하지 못하는 한국타이어 소속 노동자들은 삭감된 임금을 받고 있다. 김용성 전국금속노조 한국타이어지부 지회장은 “최근 대전공장 화재로 출근을 하지 못하는 노동자들은 기본급의 70%를 받고 있다. 기존 월급의 50%도 안 되는 수준일 것”이라며 “회사 규정대로 조 회장이 구속됐는데도 임금을 지급할 수밖에 없다면 공장 화재로 피해를 본 노동자들에게도 임금을 다 지급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용성 지회장은 “노동자의 잘못으로 공장 화재가 발생한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노동자들 임금은 삭감되고, 횡령 배임 등 혐의로 구속된 조현범 회장의 임금은 계속 지급된다는 게 허탈하다”며 “공장 노동자와 기업 총수의 차별적 대우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한국타이어는 과거 조현범 회장의 횡령‧배임 판결과 관련해 공시를 통해 “당사는 향후 본건과 관련하여 진행되는 제반 과정이 있을 경우 적법한 절차에 따라 조치를 취할 계획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김 지회장에 따르면 과거 조 회장이 유죄 판결을 받았을 당시 회사 차원의 징계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최근 혐의와 관련된 재판에 대해 한국타이어는 재판 결과를 신중하게 지켜본다는 입장이지만 결과에 상관없이 전처럼 징계를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신동화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간사는 “한국타이어에서는 과거 조현범 회장 구속 당시 재발방지 대책을 냈다고 하지만 이번에 또 이런 일이 발생한 걸 보면 바뀐 게 있었는지 의문”이라며 “조 회장은 경영에서 손을 떼고, 이사회에서도 주주들을 생각해 경영진을 견제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부 교수는 “한국타이어의 영업이익이나 매출액 대비 다른 기업과 비교해 이사 보수 한도가 높은 것은 아니다”면서도 “그러나 회장이 200억 원대 횡령‧배임 혐의로 구속된 상황에서 보수 한도를 늘리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경영진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이사회인데 이사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이사회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는 장치가 국내 기업에 많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위기상황에서 더 긴축 경영을 해야 하는데 이사 보수 한도를 늘리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라며 “오너리스크가 되풀이될 때마다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일반 주주들이나 대외적으로 기업을 바라보는 시각이 좋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황 교수는 “그간 우리나라는 오너리스크에 너무 관대했다”며 “이런 문제들이 되풀이됐을 때 행동주의 펀드 등 사모펀드들의 먹잇감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타이어 관계자는 “보수 한도는 임원 인센티브제도 개선에 따라 단기(연 1회로 지급) 및 장기(3년에 1회 지급)로 나눠서 지급되던 인센티브를 통합해 매년 분할 지급하기로 했다”며 “성과에 따른 연 단위 보상을 통해 예측성 강화를 위해 진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현재 진행 중인 재판에 대한 내용은 답변이 어렵다”며 “징계 계획에 대해서도 재판 결과가 나오고 시간이 지나봐야 알 것 같다”고 답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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