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활동? WBC 보다 디테일한 야구 이야기 하고 싶어 시작…기독교로 개종하고 술도 끊었다”
인터뷰를 시작하면서 인사를 부탁하자 강정호는 ‘전 야구선수’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지난 4월 초 미국 LA에서 베이스볼 아카데미를 운영하며 지도자의 삶을 살고 있는 강정호를 만났다. 오랜만에 인터뷰를 통해 모습을 드러낸 강정호는 선수가 아닌 선수를 성장시키는 지도자와 신앙인으로 살아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담담하게 풀어냈다.
강정호는 음주운전으로 인해 유니폼을 벗을 수밖에 없었다. 이전의 음주운전 이력까지 공개되면서 한때 그를 아끼고 응원한 팬들은 배신감과 실망감에 엄청난 비난을 쏟아냈다. 강정호는 이후 두 차례에 걸쳐 KBO리그 복귀를 타진했지만 그때마다 여론의 반발에 부딪히는 바람에 선수 생활을 이어갈 수 없었다.
KBO리그에선 통산 902경기서 타율 0.298 139홈런 545타점 470득점을 기록했다. 2015년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입단 후 4년간 297경기 타율 0.254 46홈런 144타점 120득점을 올렸다. 부상과 수술, 사생활 문제만 아니었다면 강정호는 지금도 메이저리그에서 뛰고 있을 것이다.
강정호가 운영하고 있는 ‘킹캉 아카데미’에서 진행된 인터뷰를 정리한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LA에서 언제부터 아카데미를 운영하고 있는 건지도 궁금하다.
“여기서 아카데미를 시작한 건 6개월 정도 된 것 같다. 이전에는 홍보도 안했는데 지금은 홈페이지를 만들면서 조금씩 적극적으로 움직이려고 한다. 이전에는 텍사스주 댈러스에서 생활했다. 아카데미를 운영하려고 계획을 짜다 이왕 시작하는 거 큰 도시에 가서 해보자는 마음에 아내와 LA로 이사를 오게 됐다.”
―최근 유튜브를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나도 내가 유튜브를 하리라곤 상상조차 못했다. WBC를 보다 조금 더 디테일한 야구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채널을 만들었고, 한국대표팀 경기를 분석하다가 KBO리그 팀들 분석까지 이어지고 있다. 많은 팬들이 댓글을 통해 인사와 궁금한 질문들을 남겨주시는데 조금 더 좋은 정보, 야구를 보는 데 도움되는 정보를 알려드리려고 노력 중이다.”
―그동안 KBO리그 경기를 꾸준히 봤었나.
“당연히 챙겨봤다. 많이 봤다. 특히 소속팀이었던 히어로즈 경기 위주로 봤다. 홍원기 감독님이 내가 있을 땐 수비 코치를 맡으셨는데 지금 팀 색깔을 보면 기본기와 수비를 강조했던 감독님의 스타일이 많이 묻어 나온다.”
―강정호, 박병호, 김하성 등 히어로즈 출신의 메이저리거들이 꾸준히 나오는 이유가 궁금하다.
“다른 팀은 좋은 선수가 빠지게 되면 팀 전력에 손해를 본다고 생각하지만 히어로즈는 선수를 메이저리그에 보내는 게 팀한테도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많이 배출될수록 명문 팀으로 성장하는 거고, 그렇기 위해선 선수들이 미리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이전에는 히어로즈에 드래프트됐다고 하면 선수들이 별로 안 좋아했겠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다. 미국에 진출할 수 있는 기회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선수 강정호를 보고 성장한 김하성이 지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뛰고 있다는 사실이 묘한 기분을 느끼게 한다.
“내가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입단하기 전 히어로즈에서 보낸 마지막 시즌에 김하성이 신인으로 들어왔을 것이다. 지금의 김하성을 보면 신인일 때의 김하성이 잘 성장해서 메이저리거가 됐다는 걸 알 수 있게 한다. 신인 때부터 가능성이 보였고, 그 가능성에 부단한 노력을 보태 꿈을 키웠기 때문에 잘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런 부분이 히어로즈만이 갖고 있는 장점이 아닐까 싶다. 신인 때부터 선배들을 보며 꿈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었으니까 말이다.”
―개인 유튜브 채널을 통해 WBC 대표팀 경기력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밝혔다. 안타까움이 컸었나.
“많이 아쉽고 안타까웠다. 내가 대표팀에서 뛸 때는 82년생 선배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정)근우 형, (김)태균이 형, (이)대호 형, (추)신수 형 등 기가 세고 자존심이 강한 선배들이 대표팀을 이끌었다. 반면에 지금은 그런 점에서 다소 약한 면이 있는 것 같다. 바람이라면 우리가 이번 WBC에서 느낀 감정들을 잊지 말고 다음 WBC를 준비하는 데 좋은 영향을 미쳤으면 한다. 지금의 화남, 분함, 억울함이 다음 대회에 어떤 형태로 반영될 수 있을지가 궁금하다.”
강정호는 자신의 사례를 들어 설명을 이어갔다. 2009년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유격수 부문 유력한 수상 후보였던 강정호는 홈런 23개를 기록한 자신이 손시헌 등을 제치고 수상자가 될 것이라고 믿었다. 구단에서도 수상 소감을 준비하라고 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해 유격수 부문 수상자는 두산 손시헌이었다. 강정호는 당시의 아픔과 좌절을 가슴 깊이 새겨두었다고 한다. 다음 시즌에는 무조건 자신이 그 상을 받겠다는 다짐과 함께 말이다. 2010년 골든글러브 유격수 부문 수상자는 히어로즈 강정호였다.
―지금부터는 어려운 질문을 해야 할 것 같다. 이전에 몇 차례 인터뷰를 요청했는데 그때마다 정중히 거절했었다. 그러다 지금은 가능해진 이유가 무엇인가.
“그때는 마음의 문이 닫혀 있었다.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였다. 코로나19로 인해 쉬는 동안 야구 공부를 많이 했다. 더 이상 선수 생활은 하기 어려우니 지도자의 길로 들어선다면 내가 배워야 할 게 많을 것 같아 이것저것 찾아보며 야구 공부를 하다 아카데미를 준비했고, 유튜브까지 진행했다. 내가 갖고 있는 경험과 지식을 통해 야구를 세밀하게 분석해서 알려드리고 싶었다. 그런 마음가짐이 공개적인 인터뷰도 가능하게 만든 것 같다.”
―더 이상 선수 생활에 대한 미련은 없는 건가.
“솔직히 말하면 예전부터 마음이 떠나 있었다. 지난해 히어로즈로부터 요청을 받고 KBO리그 복귀를 시도했을 때도 갈등이 존재했다. 굳이 가서 욕먹으며 해야 할까 싶었다. 그럼에도 친정팀이었고, 팀에 도움이 된다면 시도해보자고 생각했던 건데….”
―음주운전으로 인해 많은 비난을 받았고, 결국엔 한국에서 선수 생활도 이어갈 수 없게 됐다. 강정호의 팬들 입장에선 기대가 컸던 만큼 엄청난 배신감과 실망감이 뒤따랐을 것이다. 그래서 더 수위 높은 비난이 가해졌으리라 본다.
“내가 잘못한 일이고, 잘못했으면 욕을 먹는 게 당연하다. 받아들여만 했다.”
―2019년 2년 만에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복귀했지만 성적이 뒷받침되지 못했다.
(2019시즌 빅리그 65경기 타율 0.169 10홈런 24타점, 트리플A 8경기 타율 0.444 1홈런 6타점)
“2년의 공백 끝에 좋은 기량을 발휘하는 게 쉽지만은 않더라. 성적이 좋진 않았지만 어느 때보다 열심히 뛰었고, 노력했다. 그래도 안됐기 때문에 마음을 접을 수 있었다.”
―이후 밀워키 브루어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었지만 비자 문제로 뛰지 못 하게 된 걸로 알고 있다.
“2019년 전반기 마치고 피츠버그에서 방출된 후 밀워키 구단과 접촉을 했다. 알려진 대로 비자가 발목을 잡았고, 결국 선수로 뛸 수 없었다. 이후 코로나19가 발생했다. 이 또한 야구하지 말라는 신의 뜻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6년 12월 음주운전 사고가 났던 당시의 강정호를 떠올리면 어떤 문제가 있었다고 생각하나.
“2015년 무릎 수술을 받고 귀국하지 않은 채 미국 플로리다에서 재활 훈련을 하는 동안 많이 외로웠다. 나중엔 향수병이 극심했다. 2016년 귀국 후 가족들, 지인들과 만나는 상황들이 정말 행복했다. 그 행복함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 선수 강정호를 좋아했던 팬들이 느꼈을 실망감, 배신감을 생각해본 적이 있었나.
“잘 알고 있다. 팬들이 많이 실망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 일은 영원히 사죄하고 싶은 일이지만 그 일들로 인해 배운 것도 많다. 인생도 배웠고, 더 좋은 사람이 되는 게 어떤 건지,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 건지를 알게 됐다. 그때의 강정호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달라지려고, 다른 사람이 되려고 부단히 애를 썼다. 그 배경엔 신앙이 존재한다.”
―‘야구로 보답하겠다’는 인터뷰로 인해 더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
“정말 어리석고 바보 같이 생각했다. 진정한 사과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 해 그런 말을 내뱉었던 것 같다.”
강정호는 2016년 음주운전 이후 미국에서 취업비자를 받지 못 해 2년을 선수로 뛸 수 없었다. 2017년 겨울 강정호는 도미니카 윈터리그에 참가했다. 당시 낯선 환경에 적응하지 못 해 저조한 성적을 보였던 강정호는 우연히 도미니카에서 만난 한국인 선교사를 통해 기독교로 개종했고 술도 끊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일부 메이저리그 팬들 중에는 선수 강정호를 그리워하기도 한다. 만약 음주운전 등의 사건 사고가 없었다면 더 많은 걸 이룰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잃은 것도 많았지만 하나님을 믿으면서 피츠버그 교회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고, 크리스찬으로의 삶을 살면서 작은 것에 감사할 줄 알게 됐다. 아내를 만났던 시기가 가장 힘들었던 시간들이었다. 아내 입장에선 나란 사람이 어려운 존재였을 텐데 옆에 남아 큰 힘이 돼줬다. 야구로 잃은 건 많지만 잃은 걸 아쉬워하기보단 이후 회개하고 얻게 된 감사함을 떠올리며 버틸 수 있었다.”
강정호는 인터뷰 말미에 자신을 응원해준 팬들에게 “내가 지은 죄가 많다. 많이 회개하고 있다”면서 “야구선수로 실망을 많이 드렸는데 언젠가는 한국 야구를 위해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조심스런 바람을 전했다.
미국 LA=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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