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의 지인 중 종일 노래를 흥얼거리는 친구가 있다. 음악을 계속 틀어 놓는 사람은 많은데 계속 흥얼거리는 사람은 드물기에 나는 그녀가 신기하다. 사진작가인 그녀는 사진 보정 작업 때는 물론 운전을 하거나, 화장실을 가면서, 하물며 커피원두를 갈 때도 흥얼거린다. 노래 선곡은 매번 다르다. 대부분 하루 한 곡에 꽂혀 같은 곡을 흥얼거리지만 어쩔 때는 매 순간 다른 선율이 등장한다.
음악을 직업으로 둔 내 입장에서 온종일 같이 있다 보면 그녀의 선곡 알고리즘이 참 기이하게 여겨진다. 그래서 물어봤다. 어떤 곡들을 흥얼거리는 거냐고, 특별히 좋아하거나 생각해서 하는 거냐고, 그녀는 내게 되묻는다. “언니 내가 또 노래했어?” 그녀는 삶의 순간순간을 이야기하고 싶을 때 그것을 옛 조상님들처럼 노래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일상의 크리에이터들
라디오를 듣고 자란 세대라면 MBC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구성진 목소리를 기억할 것이다.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라는 이 공익캠페인은 한국 토속민요를 집대성한 업적을 남겼고 지금도 전통음악과 전통문화 보존에 큰 자산이 되고 있다. 이 노래들은 주로 1920~1940년대 출생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기억에서 출발한다. 그중 농사가 주업이었던 옛 현실에 맞게 농사에 관한 노래가 제일 많이 남아 있다.
논농사 관련 노래만 간단히 나열하여도 논 가는 소리, 논 삶는 소리, 모심는 소리, 논매는 소리, 벼 베는 소리, 볏단 묶는 소리, 벼 터는 소리 등 작업 동선에 따라 세분화된 여러 노래들이 지역별로 무수히 존재한다. 노동을 하며 불렀던 민요이기에 작업의 효율을 높이는 목적도 있겠지만, 논농사와 상관없는 가사들도 많아서 ‘노래’ 그 자체의 흥을 즐겼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 외에도 시집살이 노래, 소 어르는 소리, 신세타령, 물레타령, 화전놀이 등 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노래를 불렀던 흔적이 기록으로 남아 있다.
민요는 크게 통속민요와 토속민요로 나뉜다. 지금으로 분류하면 통속민요는 전문가(가수)들이 불렀고 토속민요는 민중들이 생활 속에서 불렸던 노래를 말한다. 두 분류가 정확히 구분되지 않는 곡들도 있지만 확실한 건 토속민요의 가사는 삶의 일기장과 같았다. 일기장에는 다사다난했던 하루의 일상, 연인을 그리는 마음, 노년의 헛헛함이 적혀 있었고 그 마음을 함께 부르며 서로를 위로했던 것이 선조들의 일기장-토속민요다.
두 곡의 민요 가사를 살펴보자. ‘전라남도 완도의 도리깨질(보리타작)소리’ 가사 일부분이다. ‘어매 어매 우리 어매 울 아부지랑 잠잘 적에 깊은 잠이나 잘 것이지 뭣 할러고 나를 낳아 남방유월 뙤약볕에 이 보리를 치라는가~’. 이 노래는 보리타작의 고단함을 노래의 해학으로 이끌어 낸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농가에서는 춘궁기가 심한 이 시기에 보리타작이 끝나면 일단 배를 곯는 일은 면할 수 있어 보리타작 노래에 해학의 가사가 더 남아 있으리라 짐작된다.
다음은 강원도 정선의 아라리 가사 일부분이다. ‘호박은 늙으면 단맛이나 나지 사람은 늙어지면 단맛도 없네’라고 노년의 설움을 비유하며 서글피 노래한다. 이 얼마나 멋진 풍자인가. 조상님들은 지금 시대로 보면 개개인이 뛰어난 크리에이터였나 보다(토속민요 음원과 가사는 한국민요대전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들을 수 있다).
멜로디 또한 가사를 잘 전달할 수 있는 훌륭한 구조다. 아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기다리 고기다리),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신다(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신다). 이 문장들은 대표적으로 우리말의 띄어쓰기와 띄어 읽기의 중요성에 대한 예시로 노래를 만듦에 있어서도 중요한 포인트다. 노래의 리듬이 아버지~~가방에 들어가신다. 하면 잘못된 작곡이 되는 것이고 ‘하늘에 구름이 떠 있다’라는 가사의 음정을 너무 낮게 만들면 가사의 이미지를 잘 표현하지 못한 곡이 된다.
우리네 민요는 그러한 일이 없다. 누가 곡을 썼는지 알 수 없는 이 민요들은 악보도 없고 문자도 잘 알지 못 할 때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음에도, 어쩌면 그렇게 가사가 입에 잘 붙고 음정이 스토리를 전달하기에 적절하게 구성되었는지 들으면 들을수록 감탄이 절로 나온다.
#나는 당신의 노래일기를 응원합니다
돌아가 앞서 이야기한 친구 이야기를 다시 해본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노래를 흥얼거린다지만 사실 그녀의 선곡 속에는 하고픈 말이 담겨 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녀가 가장 많이 흥얼거리는 노래는 적재라는 가수의 ‘별 보러 가자’다. 여행 사진작가의 특성상 밤에 별을 찍으러 나가거나 별이 많이 뜨는 곳에 가겠다고 갑자기 짐을 꾸리는 일이 빈번한 그녀는 아마도 ‘별 보러 가자’가 본인 이야기일 것이고 홀로 밤에 별을 보러 가는 것보다 누군가와 같이 가고픈 마음도 담겨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녀가 옛날에 태어났다면 마을에서 노래 한 자락 잘 뽑는 여인이든지, 문인이 되었을 것이라 상상한다.
현대인들은 마음을 위로받거나 자신의 스토리와 닮은 음악들을 선곡하여 플레이리스트에 저장한다. 요즘은 유튜브나 스트리밍 서비스에 키워드를 입력해 연곡 된 음악을 틀어 놓는 사람들도 많다. 우리는 과연 자신의 마음을 직접 부르며 삶의 이야기를 녹여내었던 옛 어르신들만큼 내가 선곡한 노래에 나를 투영할 수 있을까. 그 노래로 위로받고 있을까.
나이가 들면 말에 선율이 붙는다 한다. 사람들은 씁쓸히 웃으며 그게 나이 먹는 증거라 한다. 필자는 그것이 각자의 노래 일기장이고 선조 때부터 내려온 우리의 강점이라 여긴다. 또 모를 일 아닌가? 가까운 미래에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2’가 기획된다면 그 시절 유행했던 대중가요와 더불어 당신이 설거지하면서 흥얼거렸던 노래 ‘‘왜 이리 매번 새 컵으로 물을 먹어 날 고생시키는지”라는 노래가 기록으로 남을 수도 있다.
전문분야가 나눠지면서 놓쳐버린 창작의 본능, 우리의 노래 일기장이 언젠가 이곳저곳에서 다시 만들어지길 바라며 “우리의 소리를 찾아서. 이 소리는 서울 종로구에 살던 1973년생 꽃분이님이 설거지하며 불렀던 노래입니다”라고 소개될 당신의 노래 일기를 응원한다.
민소윤 ‘음악공장 노올량’ 대표는 영화 ‘워낭소리’, 연극 ‘소리극 옥이’, 무용 ‘시집가는 날’ 등 다양한 예술장르에서 작곡가 및 음악감독으로 활동 중이다. 그의 음악은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을 넘나들며 국악과 서양음악의 조화를 이뤄낸다.
민소윤 음악공장 노올량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