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에이치닥 선보였으나 외연 확대 주춤…관련 사업 이어가지만 법인회생 신청 등 적극 투자 어려워
#블록체인, 정대선 사장의 승부수였나
HN은 2017년 6월 계열사 현대페이(현 HN핀코어)를 설립해 핀테크 사업에 진출한다고 밝혔다. HN은 현대페이 플랫폼을 차세대 디지털화폐 금융수단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현대페이 플랫폼을 각종 은행, 증권, 보험사 등의 결제 지불 수단으로 이용하고,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등 여러 분야에 다양하게 응용시키겠다는 것이었다. HN은 더블체인, 한국디지털거래소 등과 파트너십을 맺으면서 사업을 본격화했다. 김병철 당시 현대페이 대표는 “HN의 IT 서비스 경험과 더블체인의 블록체인 코어 기술력, 한국디지털거래소와 긴밀 협업을 통해 글로벌 핀테크 서비스로 도약할 계획”이라고 포부를 드러냈다.
비슷한 시기 스위스에 ‘HDAC 테크놀로지’라는 법인이 설립됐다. HDAC 테크놀로지는 정대선 사장의 주도로 설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사장의 구상은 HDAC 테크놀로지가 개발한 암호화폐 ‘에이치닥’을 현대페이 플랫폼에서 사용하는 화폐로 적용시키는 것이었다. 에이치닥은 2017년 말 ICO(암호화폐 공개)에 성공했다. 에이치닥은 국내 투자자들 사이에서 몇 안 되는 ‘토종화폐’로 관심을 끌었다. 정 사장이 스위스에 법인을 설립한 이유는 현행법상 국내 기업의 ICO가 금지돼 있으므로 해외 법인을 통해 우회적으로 ICO를 진행하기 위해서였다.
IT 기업들은 2010년대 후반 너 나 할 것 없이 블록체인 및 암호화폐 관련 사업에 뛰어들었다. 대표적인 사례로 카카오는 두나무에 지분을 투자했고, NXC는 코빗을 인수했다. KT도 자회사 KT DS를 통해 블록체인 사업을 본격적으로 확장했다. 이 때문에 IT 업체들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적극적으로 관련 기술력 확보에 나섰다.
HN은 IT 벤처기업으로 시작한 회사지만 다른 업체와 비교해 눈에 띄는 기술력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평가다. 오히려 아파트 브랜드 ‘헤리엇’이 나름대로 인기를 끄는 등 건설업계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HN의 파트너사였던 더블체인도 연매출 100억 원 수준의 회사로 규모가 크지 않았다. HN이 카카오나 NXC 등과 기술 경쟁을 하기에는 자본이나 인력 면에서 불리했던 셈이다.
더욱이 에이치닥은 크고 작은 사고에도 휩싸였다. 에이치닥은 비트코인처럼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채굴할 수 있는 채굴형 암호화폐다. 채굴이 진행될수록 채굴 난이도가 높아진다. 이에 투자자들은 채굴 효율을 높이기 위해 일종의 채굴 네트워크인 ‘마이닝풀’에 모여 함께 채굴을 진행하곤 한다. 그런데 한 사설 마이닝풀이 2018년 해킹을 당하면서 해당 마이닝풀이 채굴한 에이치닥 화폐가 대량으로 무단 인출된 바 있다. 현대페이 측은 “(사설 마이닝풀이므로) 우리와 직접 연관된 부분은 없다”고 해명했지만 에이치닥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를 말끔히 해소하진 못했다.
HN은 ‘현대페이’라는 이름을 쓰기는 했지만 범 현대가의 지원을 받지는 않았다. 오히려 현대자동차그룹은 HN에 ‘현대’ 브랜드 사용 금지를 요구하는 소송을 제기했다. 소송에서 패한 HN은 2021년 사명을 현대BS&C에서 HN으로 변경해야만 했고, 현대페이 역시 HN핀코어로 사명을 바꿨다. 대기업의 지원을 기대했던 에이치닥 투자자들은 하나둘 발길을 돌렸다.
실적면에서도 큰 기여를 하지 못했다. HN은 HN핀코어를 설립한 2017년 2637억 원의 매출을 거뒀지만 2021년 매출은 2601억 원으로 오히려 줄었다. HN핀코어의 매출은 10억 원도 채 되지 않는다. 실적은 제자리걸음이지만 투자는 지속하면서 HN의 부담이 됐다. 이에 HN은 지난해 12월 IT 부문을 HNiX로 물적분할했다. HNiX 지분 일부를 외부 투자자에게 매각해 재무 건전성을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인터넷 보급 초기 당시 여러 포털 사이트가 있었지만 결국 살아남은 곳은 네이버나 다음 정도였기 때문에 블록체인 업체가 소수만 살아남는 것도 어느 정도 예상됐다”며 “수많은 업체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한 핀테크에 뛰어들었지만 실생활에서 성공한 모델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마이데이터 사업 본허가 획득했으나…
HN은 기대했던 성과를 이루지 못했지만 블록체인 관련 사업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에이치닥은 2021년 라이즌으로 이름을 바꾸는 리브랜딩을 진행하면서 이미지 개선에 나섰다. HN핀코어는 지난해 4월 금융위원회로부터 마이데이터(본인신용정보관리업) 사업 본허가도 획득했다. 마이데이터 사업은 은행·증권·보험·카드 등 여러 기관에 흩어진 개인신용정보를 고객의 동의를 받아 모은 후 빅데이터 형태로 분석해 개인별 맞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업이다. HN핀코어는 이어 P2P(온라인투자연계금융) 금융서비스 ‘펀딩웨이’를 출시했다. 지난 4월 4일 HNiX는 HDAC 테크놀로지의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된 홈IoT 플랫폼 ‘HN 스마트홈 2.0’을 출시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나 최근 건설업계가 불황을 겪으면서 HN이 블록체인에 적극적인 투자를 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였다. HN의 건설부문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 부실화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IT 부문 역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결국 HN은 올해 3월 서울회생법원에 법인회생을 신청했다. 법인회생은 재정적 어려움을 겪는 기업에 대해 채권자, 주주 등 이해관계자의 법률관계를 조정한 후 효율적인 회생을 도모하는 제도를 뜻한다. 서울회생법원은 오는 8월 24일까지 HN의 회생계획안을 제출받을 계획이다.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은 보고서를 통해 “(신규·소형 업체의 경우) 블록체인 기술 솔루션 제공 인프라를 보유하고 있는 IBM이나 아마존과 같은 공급 업체와의 경쟁은 어렵다”며 “시장도 세분화돼있으며 시장 주도권 확보를 위해 시장 경쟁도 심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요신문은 이와 관련한 입장을 듣기 위해 HN에 수차례 연락을 취했으나 닿지 않았다.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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