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은은 독자적인 방법으로 한국적 아름다움을 찾아가는 작가다. 그는 전통 옻칠 기법을 바탕으로 나전, 계란 껍질 등으로 이미지를 만들어낸다. 흔히 나전칠기라 부르는 전통 공예 기법을 활용하는 독창적 회화 작업이다. 이를 위해 전통 옻칠 제작 기법을 2년여간 공부했다.
그의 작품에 주조를 이루는 색채는 채도가 낮은 중간색 계열이다. 갈색, 검정색이나 붉은색, 푸른색, 그리고 흰색도 있는데 전반적인 색채는 가라앉은 느낌이다. 그러나 탁하지 않고 맑은 기운이 감돈다. 은근한 조화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색채 운용이 가장 큰 장점이다. 자연 염료를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화면에서는 깊은 울림이 배어 나온다.
박지은의 그림은 첫눈에 단박 들어오지는 않지만, 보면 볼수록 깊게 빠져 들어가는 매력을 지닌다. 그리고 친숙함과 편안함을 느끼게 된다. 흡사 속 깊은 오랜 친구를 보는 듯한 그런 기분이 든다.
이게 바로 고졸한 아름다움이다. 작가가 그토록 많은 공력을 들여 힘들게 전통 칠기 기법을 터득한 이유나 한국적 소재주의의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한옥 등 전통 이미지를 차용하는 까닭은 고졸한 미감을 얻기 위한 노력인 셈이다. 이를 통해 그가 궁극적으로 다가서려는 것은 한국적 미감의 현대화다.
박지은 작업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한국적 미감에 접근하는 방식이 매우 구체적이라는 사실이다. 그가 선택한 한국적 미감이 고졸한 아름다움이라는 것, 이를 구현하기 위한 방법으로 전통 미술 기법을 터득했다는 것, 그리고 이를 사람들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방편으로 친숙한 소재를 차용한다는 점이 그렇다.
작가의 이러한 태도는 매우 과학적인 문제 해결 방식이다. 진단과 처방이 정확하고도 현실성이 있다. 이 점은 그가 작품 내용으로 삼은 주제가 자신의 구체적 일상과 경험에서 나온다는 사실에서도 입증이 된다.
박지은 작품의 주제는 어머니 품처럼 안정되고 포근한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 느낌은 우선 전통 옻칠 기법에서 우려낸 고졸함에서 찾을 수 있다. 그다음으로는 한옥과 같은 전통 가옥의 편안한 구조와 색감을 담은 ‘집으로’ 시리즈다. 한옥은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거기에 살지 않더라도 고향과도 같은 편안한 정서를 느낀다. 최근에는 표범과 같은 맹수가 나무에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는 소재인 ‘동물의 집’ 시리즈를 통해 자신의 생각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내용을 직설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은유와 상징으로 다룬다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은유와 상징이 고졸한 미감으로 번안되어 나타나기 때문에 어렵지 않게 다가온다. 이를테면 생활의 손때가 묻어 오래된 것처럼 보이는 그의 화면 연출 솜씨가 이를 말해준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박지은을 주목하는 이유는 그의 성실한 작업 태도다. 그는 장인처럼 작업을 한다. 그만큼 공력을 쏟아 만든 작품이기에 감동의 울림이 오래 가는 것이다. 두고두고 오래 봐도 싫증나지 않는 그림이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