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대면 진료 의향 87% 등 직장인·육아 부모 중심 찬성…의사들 “약물 오남용‧오진 가능성”
비대면 진료 플랫폼업계는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가 가능하도록 제도화해달라고 하는 반면 의약계는 재진부터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비자나 일반 환자들은 편리성‧접근성 등을 들어 도입 자체를 바라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2020년 12월 감염병 국가위기 경보 수준이 ‘심각’ 단계면 비대면 진료를 허용하기로 했다. 현재 우리나라의 국가 감염병 경보 수준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내내 최고 수준인 ‘심각’ 단계를 유지하고 있다. 감염병예방법 제49조의 3이 신설되면서 감염의 위험에서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유선, 무선, 화상통신, 컴퓨터 등을 활용해 의료기관 외부에 있는 환자에게 진료와 처방이 가능하다.
방역당국은 이르면 오는 5월 ‘심각’에서 ‘경계’로 국가 감염병 경보 수준을 한 단계 하향 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되면 비대면 진료는 불법이다. 정부는 5월 전에 관련법을 정비할 계획이었으나 비대면 진료 허용 범위를 두고 플랫폼 업계와 마찰을 빚었다. 정부와 의료계는 재진부터 허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플랫폼업계는 초진 허용을 요구하고 있다.
지난 14일부터 ‘비대면 진료 지키기 대국민 서명운동’을 벌인 코리아스타트업포럼은 11만 명 이상의 서명이 담긴 결과를 지난 21일 대통령실에 전달했다. 15일에는 비대면진료 서비스 운영 업체들의 협의체인 원격의료산업협의회가 기자간담회를 열고 “국민 누구나 초진부터 비대면 진료를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며 “재진 환자 중심의 비대면 진료는 시대를 역행하는 규제이고 증명된 안전성과 편익, 의사‧환자‧약사 간 형성된 신뢰 자본을 철저히 외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난해 10월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만 19세 이상 1707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비대면 진료에 만족한다’는 응답이 62.3%, ‘향후 비대면 진료 활용 의향이 있다’는 응답이 87.9%로 나타났다. 환자‧소비자들은 기본적으로 비대면 진료에 찬성한다.
초진‧재진 허용 여부에 대해서는 입장이 나뉜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 25일 입장문을 통해 “국회는 산업계, 의료계, 약사계의 이해가 아니라 비대면 진료가 꼭 필요한 환자의 의료서비스 접근권 확대 관점에서 신속하게 법적 근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비대면 진료는 재진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해야 한다”며 “초진 환자도 비대면 진료 대상으로 포함해야 한다는 플랫폼 산업계의 주장은 국회에서의 신속한 입법화를 방해하는 행태”라고 유감을 표했다.
한국소비자연맹은 지난 13일 “3700만 건의 비대면 진료 사례에서 의료사고에 대한 법적 책임, 대형 병원 쏠림 현상 등의 문제는 거의 발생하지 않았다”며 “국민권익위 조사에 따르면 비대면 진료 지속 허용 의견이 76.1%로 높게 나타났다”고 전했다. 한국소비자연맹은 “시장에서 제품과 서비스 필요성은 곧 소비자가 결정하는 것”이라며 “3700만 건의 진료 수와 1400만 명에 가까운 이용자 수는 비대면 진료에 대한 소비자의 선호와 만족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특히 병원에 갈 시간이 부족한 직장인, 영유아를 키우는 부모들을 중심으로 비대면 진료에 찬성하는 입장을 보인다. 신생아를 키우는 김소연 씨(31)는 “아이를 챙겨서 번번이 병원에 데리고 가기 어려운 점이 많은데 화상 프로그램을 통해 비대면 진료를 보면 편리할 것 같다”며 “요즘처럼 여러 가지 전염성 질환이 유행할 때는 비대면 진료로 예방할 수 있으니 계속 시행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자 서울시내 종합병원에서 근무하는 간호사 박지영 씨(가명)는 “‘소아과 오픈런’이란 말까지 나온 시대에 부모 입장에선 비대면 진료가 절실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그러나 의료진 입장에서는 대면진료가 아니면 놓칠 수 있는 부분도 있고 아무래도 환자 설명에만 의존하기 쉬운 비대면 진료는 잘못된 판단으로 다른 치료를 하게 될 수 있어서 걱정되는 면도 있다”고 전했다.
일부 의사‧약사들이 비대면 진료에 찬성 입장을 내기도 했다. 임지연 의원의 임지연 의사와 종로3가 약국의 허진 약사 등 138인은 “비대면 진료는 의료 소외 계층에 큰 힘이 됐다. 노인‧장애인 등 이동 약자는 물론 의료기관 운영 시간 내 내원이 어려운 직장인, 자영업자, 소상공인, 맞벌이 부부 등이 대표적인 수요층”이라 주장했다. 이들은 “비대면 진료를 제도화한다는 명분 아래 사실상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초진을 금지하겠다는 법안이 발의돼 있다”며 “G7 국가 중 6개 국가가 초진을 허용하고 있는데, 비대면 진료를 제한하고 국민 편익을 떨어뜨리는 것은 역주행”이라고 강조했다.
의약업계에서는 대체적으로 비대면 진료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한의사협회‧대한약사회는 지난 21일 공동 성명을 내고 “비대면 진료는 대면 진료와 동등한 수준의 효과와 안전성을 담보할 수 없다”며 “대면진료가 원칙이며, 보조적 방식으로 (비대면 진료를) 사용해야 한다”고 밝혔다.
임현택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 회장은 “코로나19 때 비대면 진료로 사망한 케이스를 제가 아는 것만 9명이고 그중 4명이 소아청소년이었다”며 “코로나19처럼 일정한 패턴이 있는 질병도 이렇게 사망사고가 발생했는데 전체 질환으로 넓혀 생각해보면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임현택 회장은 “산업 관점에서 볼 게 아니라 사람 목숨과 관계 있는 일이니 굉장히 보수적으로 접근해야 하며, 검증에 검증을 거쳐 도입해야 하는 것”이라며 “단 한 명이라도 비대면 진료로 희생된 사례가 있다면 편리하다는 이유로 도입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전문의는 “지금도 제한적으로 대면 진료가 어려운 경우 환자 본인 대신 보호자 진료가 제한적으로 허용돼 있는데 그런 경우도 반드시 초진이나 일정 횟수 이상은 환자가 직접 오도록 한다”며 “제한 없이 비대면 진료가 이뤄질 경우 약 부작용 관리도 잘 안 될 수 있고 항생제 이상의 처방이 이뤄질 경우 오남용도 걱정된다”고 전했다.
의료계의 이 같은 우려에 비대면 진료를 위한 의료법 개정안에 대한 국회 법 심사는 불발됐다. 2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는 비대면 진료 제도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안’ 5건을 논의하지 않았다. 비대면진료 수가, 약 배송 등 내용이 정리가 안됐고, 여러 지적에 대해 정부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로 인해 사실상 한시적으로 허용된 비대면진료 사업 종료가 불가피해졌다. 다만 보건복지부는 시범사업 연장안을 검토 중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은 24일 보건복지위 전체회의에서 “보건의료기본법에 따라 격오지나 노인, 장애인 등을 위해 비대면진료 시범사업을 실시하려고 한다”며 “감염병 단계가 내려가기 전 법제화가 되면 시범사업을 할 필요가 없는 만큼 입법이 조속히 이뤄졌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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