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 건강·행복 고용주에 이득 사례 보고…일론 머스크 등 ‘워커홀릭’ CEO들은 반대…보다 유연한 접근 필요
목요일 오후 6시. 독일 에겐슈타트의 중소기업인 ‘데코-테크닉’의 파비안 클라우스만 대표가 컴퓨터 전원을 끈다. 내일부터는 황금 같은 주말이 시작된다. 직원들 역시 ‘주말 잘 보내세요’라는 인사를 나누면서 퇴근길에 오른다.
자동차 엠블럼 제조업체인 이 회사가 주 4일제를 도입한 지는 벌써 1년이 다 되어 간다. 그렇다고 급여를 삭감한 것도 아니다. 근무시간이 줄어 자유시간은 더 많아졌는데 심지어 급여는 그대로니 직원들의 만족도는 높을 수밖에 없다. 클라우스만 대표는 “직원들 모두 재충전할 수 있는 시간이 많아졌고, 편안한 마음으로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병가는 줄어들었고 동기부여는 높아졌다”며 만족해했다.
클라우스만 대표가 주 4일제 도입을 추진한 이유는 개인 경험에 따른 것이었다. 지인들 가운데 번아웃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늘기 시작하자 그는 자신의 회사 직원들도 별반 다르지 않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주 4일제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니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바꿔야 할지 고민이 많았다. 영리를 추구해야 하는 회사다 보니 효율성도 따져야 했다.
이에 그는 주 4일만 근무하도록 하되 몇 가지 회사 시스템을 손봤다. 예를 들어 불필요한 관습과 시간 낭비가 되는 요소들은 과감하게 없앴다. 회의는 반드시 필요한 직원들만 참석하도록 했고, 회의 시간은 20분으로 제한했다. 20분이 지나면 알람시계가 울리기 때문에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야 한다. 시간이 제한적이니 불필요한 잡담을 하는 대신 중요한 사항에 대해서만 언급하게 됐다. 다만 물류팀은 예외로 두었다. 금요일에도 물건을 배송해야 하기 때문에 팀원들이 돌아가면서 금요일에 근무를 하도록 조치했다.
결과는 놀라웠다. 회사 매출은 오히려 증대됐고, 에너지는 절약됐으며, 통근시간, 사무실 난방비, 생산비는 감소했다.
이런 효과는 이 회사에서만 나타나는 특별한 경우는 아니다. 주 4일제 관련 연구에 따르면, 일주일에 3일 쉬는 노동자들은 2일 쉬는 노동자들보다 더 건강하고, 더 행복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결과적으로는 고용주에게 훨씬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는 것으로도 분석됐다.
이런 까닭에 근래 들어 주 4일제를 둘러싼 논쟁은 전 세계적으로 확대되고 있는 모양새다. 실제 많은 사람들이 ‘반드시 일주일에 5일씩 일을 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는 마크 타카노 캘리포니아주 하원의원의 주도하에 주 32시간 근무법이 공동발의됐는가 하면, 아이슬란드와 벨기에에 이어 스코틀랜드와 웨일스도 주 4일 근무제를 실험해보기로 했다. 심지어 사우디아라비아의 정책 입안자들도 이 프로젝트를 논의하고 있다.
한편 미국 뉴욕의 한 스타트업 회사는 2022년 실험 단계를 거친 후 현재 전 세계 900명 이상의 직원을 대상으로 주 4일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그 결과 생산성이 눈에 띄게 향상됐다고 보고했다. 영국 런던 말리본 지구에 위치한 ‘랜드마크 런던’ 호텔의 경우도 지난해 직원들을 대상으로 주 4일제 전환을 시도했다. 물론 급여 삭감도 이뤄지지 않았다.
주 4일제와 관련된 가장 큰 실험은 영국에서 실시된 바 있다. 2022년 6월부터 12월까지 보험사, 자산운용사, 소프트웨어 개발회사, 회계법인 등 61개 기업들은 직원들에게 근무시간은 20% 줄이고, 급여는 100% 그대로 지급하는 주 4일제를 실시했다. 직원들이 맡은 업무 범위는 그대로였다.
결과는 어땠을까. 실험에 참가한 2900명의 노동자들은 “과도하게 부담을 느끼지는 않았다”며 만족감을 드러냈다. 오히려 더 행복감을 느낀다고 말하는 이들도 많았다. 실제 이 기간 동안 질병 발생 건수는 줄었고, 번아웃이나 수면 장애, 불안을 호소하는 직원도 줄었다.
실험이 끝난 후에도 거의 모든 회사들이 이런 근무 형태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눈여겨볼 만하다. 무엇보다 늘어난 휴무일에 익숙해진 직원들이 예전으로 돌아가길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진행된 유사한 실험에서도 직원들은 25~50%의 임금 인상이 이뤄진다는 조건하에서만 다시 주 5일제로 복귀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
물론 코로나19 팬데믹(대유행)이 이런 변화를 가속화시킨 점도 있다. 이미 직장에서 과중한 부담을 느끼거나 일상에서 과도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던 사람들이 이를 계기로 다른 무엇보다 건강 문제를 최우선으로 꼽게 됐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다.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하는가, 아니면 일하기 위해 사는가.’
노동자들뿐만 아니라 고용주들도 워라밸의 중요성을 십분 이해하고 있다. 높은 급여 하나만으로는 더 이상 숙련된 노동자들을 끌어모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실제 주 4일제를 채택한 기업들에 입사하길 희망하는 사람들은 점점 늘고 있는 추세다. 일례로 더럼에 있는 영국 최초의 인터넷은행인 ‘아톰뱅크’는 전 직원을 대상으로 급여 삭감 없이 주 4일제를 도입해 호응을 얻었다.
다만 주 4일제를 실시한다고 해도 획일적으로 통일된 근무 형태가 있는 건 아니다. 기업들이 저마다 맞는 규율을 만들어나갈 뿐이다. 미국의 전자상거래 그룹인 ‘소피파이’의 경우에는 주 4일제를 도입했지만 여름에만 한정적으로 실시하고 있으며, 일본 ‘도시바’의 공장 노동자들은 금요일에 쉬기 위해서는 평일 근무시간을 늘려서 일해야 한다.
이런 인식 변화에도 불구하고 주 4일제에 반대하는 기업들도 많다. 오히려 빅테크 기업들 가운데 주 5일제를 고집하고 있는 곳이 많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메타’의 CEO(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는 공개적으로 주 4일제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따라서 현재 캘리포니아 멘로파크에 있는 ‘메타’ 사무실에서는 직원들이 초과근무를 하는 모습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테슬라’의 일론 머스크 CEO도 마찬가지다. 그는 “성공하려면 일주일에 80~100시간씩 일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직원들에게 헌신과 근면을 강조한다. ‘트위터’를 인수한 직후 머스크는 직원들에게 두 가지 선택권을 주었다. ‘맹렬히 업무에 매진하거나, 아니면 그만두거나.’ 이는 실제 머스크 본인이 워커홀릭 때문이기도 하다. 그는 일주일에 100시간씩 일하고 잠은 사무실에서 자는 생활을 고수하고 있다.
독일고용주협회(BDA)의 슈테판 캄페터 회장 역시 마찬가지다. 그는 “나는 쉬는 것보다 일에 대한 열정이 더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면서 보다 긴 근무시간을 지향하고 있다. 그는 다른 한편으로는 인구통계학적 변화가 초래할 노동 시장의 변화를 두려워한다. 실제 올해에만 25만 명이 조기 은퇴할 예정인데, 이런 추세라면 2035년까지 1100만 명의 사람들이 직장을 떠나게 된다. 문제는 그 빈자리를 메울 젊은층 노동자들의 수가 절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 초래될 경제적 재앙을 두려워하는 전문가들은 이런 경우 주 4일제가 무슨 의미가 있냐고 반문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주 4일제, 주 5일제를 논의하기보다는 차라리 근무시간 유연제를 도입하는 게 낫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독일경제연구소(DIW)의 마르셀 프라쳐 회장은 “길든 짧든 노동시간에 제한을 두는 것에 반대한다. 물론 주 4일 근무제를 법으로 지정하는 것에도 반대한다”는 입장이다.
무턱대고 근무시간을 줄일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자유시간을 더 보장해주면 되지 않겠냐는 것이다. 그는 “과학적 연구에 따르면 근무시간의 유연성이 높아질수록 직원들의 생산성과 만족도 역시 향상된다”고 말했다. 요컨대 직원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그 동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이 더 바람직하며, 개개인의 사정에 따라 근무시간을 맞춤화하면 된다는 의미다.
주 4일제를 모든 산업에 적용할 수 없다는 점도 상기해야 한다. 맞지 않는 산업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한 요양보호업체는 2년간 주 4일 근무제를 도입했지만 지금은 중단한 상태다. 직업 특성상 24시간 내내 환자를 돌보아야 했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직원 수를 대폭 증원해야 했고, 그에 따른 인건비를 감당하는 게 현실적으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미국 LA에 본사를 둔 시장조사기관인 ‘알터 에이전트’ 역시 다시 주 5일제로 복귀한 경우다. 복지 향상을 위해 23명의 직원들에게 금요일 휴무를 제공했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다. 오히려 부작용도 있었다. 일부 직원들은 업무 특성상 쉬는 날에도 여전히 이메일을 작성하거나 고객과 연락을 취해야 했다. 쉬고 있는 직원들에게 이런 업무는 되레 압박감으로 작용했다. 일과 휴식의 경계가 너무 모호해졌고, 이로 인해 좌절감과 스트레스만 쌓여갔다. 따라서 현재 회사 측은 절충안으로 한 달에 하루는 반드시 회사 전 직원이 쉬도록 강요하고 있다.
클라우스만도 이에 동의한다. 그는 기업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범하는 강요된 주 4일제 법안에 대해서는 반대한다. 그는 “우리 회사는 단순히 근무 시간을 단축해서가 아니라, 유연하고 효율적인 근무제를 도입해서 성공했다”고 주장했다.
‘포쿠스’ 역시 “주말에도 나와서 일하는 사람이 일을 가장 잘한다는 편견은 분명 잘못됐다”고 말하면서 보다 유연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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