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온 전두환은 몇몇 참모들과 속 깊은 의논을 했다. 미국 몰래 핵 개발을 계속할 수는 없을 것인가였다. 결론은 미국의 감시를 벗어나기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럴 바엔 핵 개발을 포기하고 경제를 살리자는 방향으로 가자는 결론이 났다. 전두환의 심복이었던 이학봉 민정수석에게서 직접 들었던 얘기다.
세계 2차 대전 당시 군사 대국이었던 일본이 원자폭탄 두 방에 끝이 났다. 핵의 위력이다. 6·25 전쟁이 발발했을 때였다. 맥아더는 그 기회에 중국에 빼앗긴 패권을 회복할 생각이었다. 그는 북한과 중국에 핵폭탄을 열 개쯤 투하할 계획을 세웠다. 핵폭탄이 터질 것이라는 흉흉한 소문이 북한에 퍼졌다. 사람들은 너도 나도 보따리를 싸들고 남쪽으로 피난을 가기 시작했다. 김일성은 그걸 막으면서 핵의 위력을 실감했다고 한다.
북한 주민들이 자유를 찾아 남쪽으로 왔다고 하지만 핵에 대한 공포가 원인이라는 기록을 본 적이 있다. 모택동 역시 미국의 핵이 중국의 해안 도시에 떨어질 것에 대해 공포감을 느꼈다. 이왕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면 중국보다 조선을 전쟁터로 삼기로 했다. 그때 압록강을 건너왔던 중공군이 쓴 수기에서 읽은 내용이었다.
핵의 위력을 실감한 김일성은 그때 김일성대학 물리학부 학생 30명을 소련으로 보내 핵을 공부하게 했다. 그리고 아들 손자 대까지 결사적으로 핵 개발에 매진했다. 결국 북은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는 대륙간 탄도미사일을 비롯해서 남한을 초토화시킬 수 있는 전술핵까지 가지게 됐다. 북의 핵 앞에 있는 우리는 얇은 유리 어항 안에서 평화를 누리는 안보불감증의 금붕어 같다.
6·25 전쟁 당시 중공군이 평택까지 내려왔을 때였다. 백악관은 미국이 망신당하지 않고 한국전쟁에서 발을 빼는 방법을 강구했다. 미국은 평택을 경계로 휴전할 것을 제의했다. 모택동은 그걸 거부했었다. 비밀이 해제된 백악관 회의록의 내용이다. 미국은 남베트남을 어느 날 갑자기 버렸다. 그리고 동맹을 맺은 다른 약한 나라들에게 자기 나라는 스스로 지키라고 선언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그 무렵 빠져나가는 미2사단과 7사단 병력들을 보면서 자주국방의 깃발을 들었다. 강한 짐승들 사이에 웅크리고 있는 고슴도치가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날카로운 침이듯 우리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서 핵을 개발해야 한다고 했다. 박 전 대통령은 프랑스, 캐나다와 원자로와 핵 재처리기술에 관한 계약을 맺었다. 미국은 뒤에서 그 계약을 파기하는 공작을 했다. 이후 미국의 한국에 대한 외교 전략은 박정희의 핵개발을 막는 것이었다. 핵은 역대 대통령들의 말 못할 고뇌인 것 같다.
나라도 지켜야 하고 백성도 먹여 살려야 한다. 미국에도 잘 보여야 하지만 중국에도 물건을 팔아야 하고 에너지원인 러시아도 잘 다독여야 한다. 그래서 대통령의 외교가 중요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미국을 방문해서 미국은 참 고마운 친구 같은 나라라고 했다. 그리고 귀국해서는 우리가 언제까지 미국의 바짓가랑이만 붙들고 형님 살려 주세요 하고 살 것인지를 한탄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을 당할 무렵 한 인터뷰에서였다. 박 전 대통령은 몇 번인가 화두처럼 ‘주권’이란 단어를 언급했었다. 이미 일본은 핵폭탄 수십 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을 확보하고 있다. 마음만 먹으면 몇 달 내에 바로 제조할 수 있다고 한다.
미국의 군사역사학자이자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인 맥스부트는 한국은 독자적으로 핵무장을 해야 한다고 했다. 미국이 한국 핵무장에 더 이상 압력을 넣어서는 안 된다는 말이었다. 그는 트럼프가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올리라고 하고 그게 안 되면 주한미군을 철수시키겠다고 한 행동들이 미국에 대한 신뢰를 잃게 했다고 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을 국빈 방문해 바이든 대통령을 만났다. 양국 정상은 북한 핵 억제력을 높이고 안보 동맹을 강화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워싱턴 선언’을 도출해냈다. 대통령실은 미국과 핵을 공유하는 안보효과를 누리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이 들고 온 정상외교 보따리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이뤄질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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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