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축은행 비리 수사 1라운드가 경영진 개인 비리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2라운드는 이들이 빼돌린 돈의 용처에 수사가 집중될 것으로 보인다. ‘최종 타깃’으로 거론되고 있는 이상득 전 의원도 이번엔 사법처리를 피하지 못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검찰의 1차 수사 초점은 대주주 경영진의 횡령·불법대출 등 개인 비리에 맞춰져 있었다. 하지만 검찰은 2차 수사에서는 이들이 빼돌린 돈에 대한 사용처와 금융당국과 정·관계 인사를 상대로 한 로비 여부를 집중 규명한다는 방침이다. 사정당국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검찰의 2차 수사 최종 타깃으로 이명박 대통령의 형 이상득 전 새누리당 의원이 거론되고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 일각에선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가 이 전 의원의 사법처리 시기 및 수위를 놓고 물밑 조율에 들어갔다는 얘기도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과연 예선전을 끝내고 본선전에 돌입한 검찰의 서슬 퍼런 사정 칼날이 이번에는 ‘상왕’을 옥죌 수 있을까.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가 SD(이상득 전 의원)에 대한 사법처리 시기 및 수위를 놓고 물밑 조율에 들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최근 기자와 만난 대검의 한 고위관계자가 비보도를 전제로 귀띔한 말이다. 이 관계자는 “현 정권 최고 실세로 통했던 SD와 관련된 각종 비리 사건이 수면 위로 부상한 이상 어떤 식으로든 사법처리가 불가피할 것”이라고 전제한 뒤 “저축은행비리 1차 수사가 마무리된 만큼 지금부터는 SD를 사법처리하는 데 검찰 수사력이 집중될 것이다”라고 전했다.
특히 사법처리 시기 및 수위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이 관계자는 “온 국민의 관심이 집중될 것으로 보이는 런던올림픽 개막(7월 27일) 직후가 사법처리 ‘D-데이’로 잡힌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금까지 드러난 SD의 비리 혐의 등을 감안할 때 사법처리 수위는 ‘구속’ 쪽으로 가닥이 잡힌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고 답했다.
검찰 또한 저축은행비리 2차 수사 칼날이 이 전 의원을 비롯한 정관계 로비 의혹을 겨냥할 것임을 암시한 바 있다. 실제로 6월 20일 저축은행비리 1차 수사결과를 발표한 최운식 합수단장은 “이제까지 예선전을 치르기 위해 수사했다면 앞으로는 그쪽 부분에 주력해서 향후 수사를 계속해 나갈 예정”이라며 정관계 로비 수사를 본격화할 것임을 예고했다. 최 단장은 또 이 전 의원에 대한 수사 진행 상황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뚜벅뚜벅 계속 수사를 해나가고 있다”고 답해 그에 대한 수사가 계속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했다.
검찰의 수사 초점이 대주주 경영진들의 개인 비리를 넘어 금융당국 및 정·관계 비호 의혹 규명으로 맞춰지면서 이 전 의원 또한 사정 가시권에 진입해 있는 형국이다. 합수단은 그동안 4개 저축은행 대주주에 대한 횡령·배임·불법대출 등 회사 운영상 가려진 개인 비리를 파헤치는 데 주력해 왔다. 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구속된 4개 저축은행 대주주들이 퇴출을 막기 위해 금융감독원과 국세청 등 사정당국 관계자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로비’를 전개하고 전·현직 국회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과도 자주 접촉한 정황을 잡고 수사를 확대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 대주주들은 합수단의 수사 과정에서 금융당국 및 정관계 로비 사실을 구체적으로 진술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찰은 특히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56·구속기소)이 특정 지역 정관계 인사와 각별한 사이인 임석 솔로몬저축은행 회장(50·구속기소)에게 퇴출 저지 로비 명목으로 25억 원가량을 건넨 사실을 포착하고 이에 대한 수사를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검찰은 임 회장이 로비 목적으로 사용한 고가의 그림과 금괴 등 관련 증거물을 확보하고 실제 정관계에 로비를 벌였는지를 집중 수사하고 있다. 임 회장이 소망교회 금융인 모임인 ‘소금회’ 멤버이고 정관계 유력인사들과 두터운 친분을 유지해 온 만큼 이들을 상대로 전방위 로비가 있었을 것으로 검찰은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또 김 회장이 김 아무개 전 청와대 선임행정관의 부탁으로 그의 형 빚을 100억 원이나 탕감해 준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김 전 행정관은 김승유 전 하나금융그룹 회장을 김 회장에게 소개시켜 준 당사자로 지목받고 있다. 김 회장은 김승유 전 회장을 만나 지난해 미래저축은행 유상증자에 하나금융그룹이 참여해줄 것을 부탁했고, 하나캐피탈이 145억 원을 투자한 사실도 확인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정관계 인사의 개입 및 금품제공 등 불법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파헤치고 있다.
윤현수 한국저축은행 회장(59·구속)은 지난해 전세기까지 동원해 지역구 출신 국회의원과 금융당국 인사 등을 차명으로 소유한 일본 아오모리 리조트로 초청, 퇴출 저지를 위한 로비활동을 전개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벌써부터 여야를 망라한 전·현 정권 실세들을 비롯한 정치인과 금융당국 관계자들의 실명이 거론되는 등 이른바 ‘저축은행 리스트’가 나돌고 있는 형국이다.
이처럼 검찰의 2차 사정드라이브가 정관계를 겨냥하면서 현 정권 최고 실세로 군림해 온 이 전 의원에 대한 수사 여부에 정치권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영업정지 위기에 놓인 모 저축은행에서 구명 청탁과 함께 4억 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또 지난해 이 전 의원의 보좌관 박배수 씨(구속)의 10억 원대 금품수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이 전 의원 계좌에 출처 불명의 자금 7억 원의 현금이 오간 사실도 포착했다. 그러자 이 전 의원은 “7억 원은 안방 장롱 속에 보관하던 개인자금의 일부”라는 소명서를 검찰에 제출했다. 합수단은 지난 3월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가 수사해온 ‘장롱 속 7억 원’에 대한 수사 자료를 넘겨받아 보강조사를 펼쳐 왔으나 3개월 넘게 별다른 수사 진척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전 의원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비리 건은 저축은행 비리만이 아니다. 그는 김학인(구속기소) 한국방송예술교육진흥원 이사장으로부터 공천헌금 2억 원을 수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김 이사장 사건을 담당했던 대검 중수부는 “이 전 의원에게 공천헌금 2억 원을 건넸다”는 김 이사장의 진술을 이미 확보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검찰 주변에서는 김 이사장이 횡령한 천문학적인 자금을 감안하면 드러난 것 외에 이 전 의원이 관련된 또 다른 비리건이 존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가 설득력 있게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유동천 제일저축은행 회장(구속기소)의 정관계 로비의혹 사건에는 이 전 의원의 측근인 박배수 씨와 이 대통령의 사촌처남인 김재홍 KT&G복지재단 이사장이 연루된 혐의를 받고 있다. 김 이사장과 박 씨는 유 회장으로부터 각각 4억 2000만 원과 1억 5000만 원을 수수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상태다. 검찰은 유 회장이 5억 원이 넘는 돈을 로비자금으로 뿌리면서 이 전 의원의 측근과 이 대통령의 친인척에게까지 손을 뻗쳤다는 점에서 이 전 의원을 비롯한 정권 실세들의 개입 여부를 파헤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 전 의원은 또 포스코 계열인 학교법인 포스텍이 2010년 6월 부산저축은행에 500억 원을 투자하는 과정에 개입했다는 의혹도 불거진 상태다. 여기에 파이시티 인허가 로비 의혹 사건에도 이 전 의원의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형국이다. 서울 양재동 복합유통센터 ㈜파이시티의 인허가 비리 사건을 수사 중인 대검 중수부는 이미 현 정권 핵심실세로 통했던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 등을 구속기소한 상태다. 이 전 의원은 이 사건의 또 다른 ‘키맨’으로 지목받고 있는 이동조 제이엔테크 회장의 중국 도피를 도운 배후자로 지목되는 등 파이시티 사건에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의혹을 받고 있다.
이처럼 이 전 의원은 저축은행비리 사건을 비롯해 각종 비리에 노출돼 있는 형국이다. 따라서 본 궤도에 진입한 저축은행비리 2차 수사는 물론 검찰 수사의 최종 타깃은 이 전 의원이 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사정당국 일각에선 검찰이 저축은행 사건을 포함한 이 전 의원이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들을 병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검찰은 특히 내곡동 사저 문제, BBK 가짜편지 논란, 민간인 불법사찰 수사 등을 마무리하면서 대통령 일가족과 측근들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물을 내놓으면서 ‘권력의 시녀’라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와중에 일부 혐의가 드러난 이 전 의원마저 면죄부를 줄 경우 검찰의 위상은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 자명하다.
9월 정기국회와 본격적인 대선정국을 앞두고 있는 청와대와 여권 또한 이 전 의원을 둘러싼 각종 비리건을 해결하지 못할 경우 두고두고 골칫거리일 수밖에 없다. 야권과 시민사회단체 등의 융단폭격이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민주통합당은 이 전 의원을 ‘국정농단의 몸통’으로 지목하고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가 이미 이 전 의원의 사법처리 시기 및 수위를 놓고 물밑 조율작업에 돌입했다는 대검 고위관계자의 전언에 힘이 실리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
▲ 지난 6월 20일 저축은행 비리 합수단이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사진은 임석 회장이 금감원 검사 무마 명목으로 김찬경 회장으로부터 수수한 도상봉 화백의 ‘라일락’. 연합뉴스 |
횡령은 기본 로비는 옵션
저축은행들의 비리백태는 고객들의 혀를 내두르게 하기에 충분했다. 김찬경 미래저축은행 회장은 미술품을 매개로 횡령과 배임, 청탁 등의 범죄를 일삼은 것으로 드러났다. 미래저축은행 서초지점에 따로 수장고를 만들어 작품을 보관할 정도로 ‘그림사랑’이 남달랐던 김 회장은 구입가 기준 94억 7635만 원어치의 미술품 12점을 이용해 쌈짓돈을 챙겼다. 거래가 쉬울 뿐 아니라 세금부담이 없고 유통경로도 잘 드러나지 않는 점을 노린 것이다.
저축은행비리 합동수사단은 6월 20일 은행 소유 미술품을 팔아 100억 원 상당을 빼돌리고 담보물로 맡긴 미술품을 임의로 해지해 은행에 83억 원 상당의 손해를 끼친 혐의로 김 회장을 추가기소했다. 김 회장은 지난해 9월 서울옥션에 20억 원을 대출하면서 은행이 소유한 앤디 워홀의 ‘플라워(25억 원 상당)’와 게르하르트 리히터의 ‘추상(21억 원 상당)’을 담보로 제공하는 등 2006년부터 미술품 5점을 개인적으로 처분해 은행 돈 46억여 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지난해 유상증자에 145억 원을 투자한 하나캐피탈에는 투자금에 대한 담보로 박수근의 ‘노상의 여인들(5억 9000만 원 상당)’을 제공했다.
임석 솔로몬 저축은행 회장에게는 로비 명목으로 시가 3억 2000만 원이 넘는 도상봉의 ‘라일락’, 이중섭의 ‘가족’을 건네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은행의 증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김 회장은 루이스 부르주아의 ‘더 렉토리(15억 원)’ 등 홍송원 서미갤러리 대표가 대출 담보로 맡긴 그림 11점을 솔로몬저축은행 등에 개인 담보로 맡겼다.
관봉 형태의 돈다발과 금괴도 등장했다. 김 회장이 밀항 직전에 인출한 200억 원대의 회사 돈은 5만 원권 1000장 묶음다발로 검찰에 압수됐다. 또 ‘금감원 검사 무마 청탁’ 대가로 임석 회장에게 시가 3억 6000만 원 상당의 금괴 6개를 건네기도 했다.
김 회장의 기상천외한 비리백태는 이것이 끝이 아니다. 그는 충청 일대 골프장 인수과정에서도 20여 개의 차명회사를 동원해 4000억 원을 불법대출했다. 또 중국도피 시도 전 지인 명의로 편법소유해 온 130억 원 규모의 카지노를 처분하는가 하면 아내가 소유한 외식업체에 100억 원을 불법대출해 재산을 현금화시킨 정황도 포착됐다.
김 회장으로부터 현금과 금괴, 그림 등 20억 6000만 원 상당을 받은 임석 회장은 은행 공사비와 물품구입비를 부풀린 뒤 이를 되돌려 받는 방법으로만 137억 원 상당을 빼돌렸다.
김임순 한주저축은행 대표는 지난 2월~5월 예금주 통장에만 입금 표시가 되고 은행 전산망에는 입금기록이 남지 않는 가짜 통장으로 예금 180억 원을 횡령하는가 하면 비자금 조성을 목적으로 위조한 감정평가서를 근거로 불법대출을 감행했다.
윤현수 한국저축은행 회장은 대한전선에 500억 원을 부실대출해 주고 그 계열사에 초과 대출을 해주는가 하면 2003년 자금난에 빠진 인터넷 기업에 돈을 빌려주고 대출을 대가로 9억 원이 넘는 돈을 받아 챙겼다. 또 2006년 5월부터 올해 4월까지 아내의 고문료 명목으로 씨앤씨캐피탈에서 자금 10억 8000만 원을 횡령한 윤 회장은 캐피탈 측에 아내의 벤츠 승용차(2억 6600만 원)의 매월 리스료 655만 9000원을 부담케 하고 법인카드를 제공하게 하는 등 8억 원 상당의 피해를 끼쳤다. 52억 원 상당의 청담동 호화빌라 구입자금을 대신 부담케 하기도 했다. 또 고가매수, 허수매수 등으로 계열사인 진흥저축은행 주가를 끌어올려 부당이득을 챙기기도 했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