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는 지난주 비상장 벤처기업이 창업주에게 예외적으로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벤처기업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윤석열 정부 들어 여당과 제1야당이 공조해서 쟁점 법안을 가결시키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제1야당 내에서 소수의 반대 의견이 제기됐지만 가결을 막을 순 없었다.
국회에서 그간 찾아볼 수 없었던 여야 협력과 활발한 토론이 이루어진 것 자체는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그 반가운 일이 지배주주나 창업주에게 특혜를 부여하기 위해 이루어졌다는 사실이 안타까울 따름이다.
이번에 도입된 복수의결권의 주요 내용은 비상장 벤처기업에서 창업주 지분율이 30% 미만으로 낮아질 경우, 1주당 10개 이하의 복수의결권을 지닌 주식을 창업주에게 발행할 수 있게 한 것이다. 다만 75% 이상 주주의 동의를 거쳐 정관상 발행 근거를 마련해야 하고, 역시 75% 주주의 동의로 복수의결권 주식을 발행할 수 있다.
복수의결권 도입을 지지하는 쪽은 회사를 성장시킬 수 있는 능력과 철학 그리고 의지를 지니고 있는 창업주의 지배권을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추가적인 투자 유치로 창업주의 소유 지분과 지배권이 낮아지면 이른바 ‘창업정신’이 훼손될 수 있으므로 복수의결권을 통해 이를 보호하겠다는 것이다.
복수의결권의 부작용을 이야기하기 전에, 창업주의 지배권이 보장돼야만 회사가 창업정신이나 경영철학을 지킬 수 있는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한 인식은 신화에 가깝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창업주의 소유 지분이 30% 미만으로 낮아졌다면 그만큼 다른 투자자가 회사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했음을 의미한다. 창업주 못지않게 또는 그보다 더 많은 자금을 투입한 투자자라면 기업이 성장하고 발전하기를 창업주만큼 바랄 것이다. 대규모 투자자라도 창업주가 아니면 창업정신이나 경영철학이 훼손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제하는 것 자체가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복수의결권이 창업정신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도입해야 할 만큼 유일무이한 제도라고 보기도 어렵다. 이미 상환우선주 등이 벤처기업법도 아닌 상법을 통해 보장돼 있기 때문이다.
지배주주가 적은 지분으로 개별회사나 기업집단 전체에 지배권을 행사하는 것은 사익편취나 주주가치 침해를 야기하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나아가 국내 자본시장의 주요 저평가 요인으로도 지적되고 있다. 그런데 복수의결권은 의도적으로 적은 소유지분으로 회사를 지배할 수 있도록 장려하는 제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결국 복수의결권에는 ‘선량한 창업주는 회사와 모든 주주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반면 기관투자자 등 주주들은 단기적인 차익을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안이한 인식이 깔려 있는 것과 다름없다. 또는 전횡이나 사익편취가 일어나더라도 창업주에 의해 회사의 성패가 좌우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것일 테다. 이 경우 복수의결권을 허용한 정책결정자보다는 기대를 저버린 창업주에게 비난이 쏠리기 마련이다.
입법 과정에서도 복수의결권의 폐해에 대해 많은 지적이 있었다. 이에 따라 국회는 복수의결권 존속기간을 10년 이내로 제한했고, 특히 상장 시에는 상장 후 3년까지만 존속할 수 있도록 했다. 그나마 다행이지만 개정안이 통과되자마자 보수 경제지 등은 상장회사에도 복수의결권이 필요하다고 나서고 있다.
이번 개정안을 적극적으로 주도한 여야 의원들은 입을 모아 복수의결권의 부작용을 막기 위해 ‘발행 조건’이나 ‘보통주 전환’과 같은 통제장치를 두었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이들은 언제든 말을 바꿀 수 있음을 경험적으로 알 수 있다. 비록 복수의결권은 도입됐지만 적어도 관련 통제장치까지 완화되는 일은 없도록 입법 과정에서 있었던 논의를 기억해두어야 할 것이다.
노종화는 회계사이자 변호사다. 현재(2017년 5월~) 경제개혁연대 정책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2020년 3월부터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상근)으로도 재직 중이다.
노종화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