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에 공연·외식업 쪼들리고 걸그룹 비용 막대해…지인 “그에게 흔쾌히 투자한 라 대표를 ‘구세주’이라 여긴 듯”
최근 일요신문과 만난 임창정 지인 A 씨의 말이다. 그는 임창정을 다년간 지켜보면서 이런 사태가 일어나리라는 예상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임창정이 이런 투자에 뛰어든 배경을 ‘욕심’이란 한 단어로 정리했다.
SG(소시에테제네랄)증권 창구 매도 폭탄으로 발생한 무더기 하한가 사태 ‘얼굴마담’으로 임창정이 지목되고 있다. SG증권발 매도 폭탄이 나오면서 대성홀딩스, 서울도시가스, 삼천리, 다우데이타, 하림지주 등 8개 종목이 하한가를 기록했고, 특히 4개 종목은 며칠 동안 하한가를 기록하면서 약 8조 원이 증발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 폭락 사태와 연관이 있는 주가조작 세력과 임창정 사이의 관련성이 지속해 나오고 있다. 임창정은 주가조작 총책으로 지목된 라덕연 H 투자자문사 대표가 운용자금 1조 원 돌파를 기념해 진행한 ‘조조파티’와 투자자 행사 등에 참석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의혹이 계속되고 있다.
이번 주가 하락과 관련한 피해자들 소송 대리를 맡은 한상준 법무법인 대건 변호사는 “전체 피해자 숫자는 대략 1000명 정도 되는 것으로 보인다. 피해 금액은 총 8000억 원에서 1조 원 정도 되는 것으로 추산한다”고 설명했다.
조 단위 손실이 난 만큼 검찰과 금융당국이 합동수사팀을 꾸려서 수사에 돌입했다. 이번 사건은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로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건 연루자 10명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가 이미 이뤄졌다. 라 대표는 피의자로 입건된 것으로 전해진다.
엄청난 사건에 얽혀 들면서 임창정 이미지는 말 그대로 산산조각이 났다. 2023년 초 임창정이 자신의 연예기획사 지분 일부를 라 대표 측에 매각하면서 50억 원을 받고, 그중 30억 원을 다시 라 대표에게 맡겼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임창정 자신과 아내 각각 15억 원씩 개인 계좌로 만들었고 자신과 아내의 신분증을 맡겨 해당 세력들이 이들 부부의 명의로 대리 투자할 수 있게 했다고 한다.
왜 임창정은 이런 위험한 주식 사건에 연루된 걸까. 지인들 얘기에 따르면 임창정은 평소 주식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임창정 지인 B 씨는 주가조작 관련된 뉴스를 보고 의아함을 느꼈다고 한다. B 씨는 “초기 해명 인터뷰에서 임창정이 ‘주식을 잘 몰라서 당했다’는 식으로 얘기했는데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임창정도 주식에 관심이 많고 잘 안다. 과거에 만났을 때 주식 계좌를 들여다보는 걸 여러 번 봤다”고 설명했다.
B 씨는 “임창정이 주식투자도 직접하고 귀가 얇아 작전주 정보로 상폐 당해서 돈을 날린 적도 있다고 한다. 임창정은 법인만 5개 이상 갖고 있고 유상증자와 지분투자까지 다 손수하는 사람이 주식을 아예 몰랐다는 건 말도 안된다”면서 “다만 그렇다고 차액결제거래(CFD)나 주가 조작을 잘 알 정도로 지식이 있는 건 아니다. 귀동냥으로 주식투자를 하는 정도였지 전문가 수준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A 씨는 이번 사건이 임창정이 평소 사람을 잘 믿는 성격 때문에 벌어지지 않았을까 추측했다. 그는 “라 대표를 만난 게 2022년 10월 초라는데 논란이 되는 투자 모임에 참석한 게 연말이고 30억 원을 맡긴 게 2023년 연초라고 한다. 사실상 만나자마자 믿고, ‘아주 종교야’ 같은 말을 한 것”이라면서 “평소 임창정이 사기를 자주 당한다. 귀가 얇아서 사람 말에 혹해서 주식으로 돈을 날린 적도 많다고 알고 있다. 이번에는 그런 성향이 크게 돌아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B 씨는 임창정이 노래에만 집중하는 게 나았다고 생각했다. 그는 “임창정은 2010년대 중후반부터 발라드가 큰 인기를 끌었다. 콘서트를 통해 1년에 50억 원 이상 되는 돈을 벌 수 있었다. 다만 나쁘게 말하면 욕심이고, 좋게 말하면 목표가 높았다. 그는 콘서트만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벌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업으로도 성공하고 싶어 했다. 이런저런 프랜차이즈에 이름을 올리거나 걸그룹(미미로즈)을 추진한 것도 그런 배경”이라고 말했다.
B 씨 말처럼 임창정은 여러 프랜차이즈와 계약을 맺거나 맺었었다. 개인 이름을 걸고 여러 식당 프랜차이즈 등과 계약했다. 기획사가 한 가상자산 회사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지인들에 따르면 임창정은 여러 프랜차이즈와 계약 관계지만 실속은 딱히 없었다고 한다. 수익 일부를 정산 받는 조건의 식음료 비즈니스가 많았는데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매출이 떨어지면서 정산받는 돈도 크지 않았다고 한다.
이어 B 씨는 “임창정 이름을 달기 위해서 별별 프랜차이즈가 다 달려들었다. 그런데 임창정 이름이 필요한 업체는 대체로 경쟁력 없는 업체인 경우가 많았다”면서 “그중에서 고르다 보니 생각만큼 돈 되는 사업은 많지 않았다고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A 씨는 코로나19 사태가 임창정이 결국 라 대표에게 덥석 돈을 맡기게 된 배경 중 하나라고 지목했다. A 씨는 “걸그룹 론칭 비용이 상상 이상으로 많이 든다. 판은 벌였는데 코로나19로 콘서트도 예전만큼 못하는 데다, 임창정이 운영하거나 계약한 업체가 대부분 음식 프랜차이즈라 타격이 두 배 이상 됐다. 욕심 때문에 사업을 키웠는데 한순간에 망가지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 JTBC는 라 대표가 주최한 행사에서 임창정이 투자자들 앞에서 라 대표를 향해 ‘아주 종교야’라며 강한 신뢰를 보이는 발언 모습을 공개했다. 이에 대해 임창정 측은 “당시 모임 분위기를 위해 일부 오해될 만한 발언을 한 건 사실이지만 투자를 부추기진 않았다”고 해명했다. 이 모습에 관해서도 지인들은 ‘얇은 귀와 욕심 때문에 빚어진 일’로 생각했다.
B 씨는 임창정이 통정매매 방식이나 사기를 알고 부추겼다고는 보긴 어렵다고 했다. 그는 “임창정이 자세한 구조를 알고 권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 정도 사람은 아니”라면서 “다만 걸그룹이나 기획사 운영비 등 돈 나갈 일이 많아 투자를 받길 원했는데 주변 부자 중에서도 투자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적극 투자해주는 사람을 만난 건 라 대표가 처음일 것이다. 그래서 신나서 말한 것 같다”고 얘기했다.
A 씨도 비슷한 얘기를 했다. 그는 “임창정은 자기애가 강한 사람이다. 회사 곳곳이나 심지어 ‘임창정 가구’에도 자신의 얼굴을 넣었다”면서 “그런 임창정은 기획사 사업을 쉽게 생각했다. 임창정은 ‘자신은 가수와 연기자 양 쪽 모두로 대상을 받은 국내 유일의 사람이다’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래서 당연히 잘될 줄 았았는데 힘들어지면서 ‘멘붕’ 상태가 됐다. 그때 드디어 자신을 알아봐주는 ‘구세주’가 나타났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어찌됐든 사기 사건은 절실하거나 욕심을 부릴 때 찾아오는데 그게 딱 맞는 상황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임창정 측에 따르면 2022년 10월 초 임창정은 라 대표와 한 골프장에서 처음 만났다. 이후 11월 28일 라 대표가 임창정 회사에 투자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다고 한다. 임창정이 ‘내가 어떻게 믿겠냐’고 검증을 요구하자 라 대표는 불과 10분 만에 25억 원을 송금했다고 한다. 임창정은 이 돈을 곧 반환하고 곧 제대로 된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B 씨 말은 과감한 투자를 보여준 게 라 대표가 처음이라 홍보에도 거부감이 없었던 것 아니냐는 추측이었다.
또 다른 지인 C 씨는 ‘골프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C 씨는 “임창정이 골프를 너무 좋아한다. 광적으로 좋아해서 골프 치면서 사기꾼을 많이 만났다. 이번 사건도 골프장에서 만나면서 시작됐다는 걸 안다. 골프장에서 홀딱 넘어가는 경우를 여러 번 봤다. 라 대표라는 사람도 골프장을 몇 개 갖고 있던 게 역할이 크지 않았을까 싶다”고 설명했다.
다만 피해자 측 소송을 대리하는 한상준 변호사는 임창정의 제대로 된 해명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한 변호사는 “임창정의 해당 발언이 투자를 독려하고 라 대표를 추켜세웠다는 것 자체만 가지고는 통정매매에 대해서 명확한 인식이나 미필적 고의가 있었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럼에도 라 대표와 관계가 깊다고 볼 때 매매 방식이나 내용 자체를 전혀 몰랐다고 보기는 힘들 수 있다. 임창정 스스로 결백을 입증하려면 통정매매를 통한 주가 조작이 있었는지 몰랐다는 걸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임창정은 이번 사건과 관련해 자신도 피해자라는 입장이다. 소속사 측은 “임창정도 투자를 잘못해 큰돈을 잃은 것은 자신의 실책으로 인정한다. 그러나 계속된 오보로 연예인으로서 명예가 훼손되는 등 피해를 보고 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한편 임창정은 투자를 넘어서 주가조작 세력과 사업을 진행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임창정과 라덕연 대표가 함께 엔터테인먼트사를 세웠는데, 회사 사내이사에 임창정의 아내 서하얀과 주가 조작 일당들의 이름이 올라와 있다는 것이다. 또한 JTBC는 “임창정이 ‘수수료 지급 방식을 저작인접권 등으로 정산을 받는 게 좋겠다’고 제안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임창정 측은 “라 회장 측이 임창정 기획사에 추가 투자를 하기로 했으나 논의가 길어지자, 임창정이 ‘저작인접권을 사주면 그 돈으로 사업을 먼저 시작하겠다’고 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소속사 관계자는 “결국 저작인접권 거래는 성사되지 않았고, 그 대안으로 신규 법인을 설립했다. 그래서 임창정 아내가 사내이사로 등재된 것”이라고 말했다.
임창정이 왜 이들과 한 배를 탔는지 여부와는 별개로 임창정이 이들과 어디까지 연루됐는지는 검찰, 금융당국 합동수사팀을 통해 밝혀질 예정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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